* 누가복음 3:7 -9 회 개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고 자부했을 때, 과연 그 공로는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회개라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던 시절이 세례요한 때의 시절이었습니다. 심판의 때가 다가온다고 세례요한은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심판의 기준은 세례요한이 정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단지 심판의 날이 접근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뿐입니다. 세례요한이 소개하는 바에 의하면 장래는 축복의 날이 아니라 진노 받을 날이라는 겁니다. 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받아야 하는지, 무슨 기준에 의해서 진노 받을 지에 대해서는 세례요한은 아무 것도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는 울퉁불퉁한 사람들의 마음을 평탄케 하는 시도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분수에 넘쳐나 있는지를 자기에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각자 종사하는 자들에게 있어 분에 넘치는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직업 군인들이 행사하고 있는 과한 처신에 대해서 세례요한은 말해줄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탐욕스러움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오실 분을 보다 명확하게 바라보기 위한 마음 준비차원이었습니다. 마치 임금님이 행차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운집했을 때, 앞의 사람들의 키를 낮추기를 유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키를 낮추는 행위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정작 봐야 할 분을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요한이 일관되게 하는 일은 이 일입니다. 마음 낮추기입니다. 이것을 그는 회개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마음 낮추기는 심판주되시는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보다 더 깊이 있는 낮아짐이 요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