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4:22-30 무시당하시는 예수님
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세상은 구조적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개도 자기 영역이 있듯이 인간 세계도 자기만의 영역을 따로 갖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사람 대접 받으려면 일단 그 영역의 원칙과 법칙을 존중하고 따라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도리어 그 인간 세계의 구조를 모독하면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출신을 가지고 예수님 분석에 나섭니다. 즉 그들은 나름대로 예수님에 대해서 익히 안다고 자부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는 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점점 제대로 예수님 아는 자리에게 멀어집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불필요한 인물로 간주했습니다. 예수님이 있어도 없어도 자신들에게는 달라질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고향이 예수님에게 보여 준 처우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나름대로 나를 안다고 무시하니 마치 옛날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때, 엘리야, 엘리사가 당했던 수모처럼 나도 너희들 때문에 수모를 당한다. 하지만 엘리야가 전적으로 그 대적하는 동네를 배척하신 것이 아니라 그 중에 한 사람, 사렙다의 한 과부와 나아만 장군이 병고침의 혜택을 입은 것처럼 그런 특별히 선택받은 자에게만 나의 은혜를 베풀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분노의 극치였습니다. 아예 예수님을 죽이고자 절벽까지 데려가서 밀어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거부의 발언만 하시고 그들의 힘에 붙잡히지 않고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나고 맙니다. 이처럼 이 악하고 어두움의 세상에서 예수님이 받은 처우란, 대중들로부터 쏟아지는 미움과 격분 뿐입니다. 이들은 결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안 들은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들었고 접수했습니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예수님을 배척하게 됩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어떤 내용이 사람들을 화나게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