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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Morning Billiard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작성자붉은가을|작성시간11.12.10|조회수483 목록 댓글 2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6. 허슬러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기껏 삼백 달러 한판인 나야 거리낄 게 없지만 제임스로 인해 은근히 부담스러워졌다. 외팔이타법만 지켜보았지 그가 양 손으로 게임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게임에 거액을 배팅하는 건 도박이 아니라 바보짓일 수도 있다. 제임스가 줄기차게 배팅하는 것은 한편으로 끈질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딴에는 흐뭇하기도 하지만 점점 액수가 커져갈수록 부담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상천이의 등장이후로 기라성과도 같은 타짜와 당구선수와 클럽을 오락가락하는 고수들은 서서히 뉴욕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이태리언 타짜와 같은 허슬러들은 여전히 암암리에 건재하고 있었다. 상천이가 상대했던 고수들은 미국당구계에 이미 정평이 나있던 선수들이 대부분이지 언더그라운드에서 명성을 떨쳤거나 이리저리 떠도는 이름 모를 타짜들은 아니었다.   

 이태리언 타짜는 지난번 부랄 두 쪽 한쪽 식으로 약을 올렸기 때문에 그게 무슨 큰 치욕을 당한 것처럼 나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려보는 눈초리가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런 게 오히려 자신을 딜레마에 빠뜨리게 될 것이란 것을 말이다.


 한 게임만 지게 되면 더 이상 게임을 치를 돈도 없어 그만두어야한다. 어차피 인생자체가 꽐라가 되어 버린 지금 나는 이겨도 그만이지만 져도 안타까울 것이나 아쉬울 것도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뱅킹을 했다. 그의 뱅킹이 만만치 않았지만 거의 단축레일에 붙은 내가 선구가 되었다. 초구는 적구두께를 언제나 반 정도를 겨냥해야한다. 누구든지 초구를 망설이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쳐야한다. 흔들리지 않는 스트로크로 키스를 피해야 하며 다음 포지션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그는 애초에 뱅킹에서부터 나와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초구로부터 연거푸 일곱 점을 만들었다. 나는 이 당구장의 모든 테이블을 나름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일번 테이블은 오른쪽코너가 약간 튀어 오르는 경향이 있다. 대개 큰 게임은 일번 테이블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이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게임에서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쓰리쿠션은 테이블에 익숙해져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당할 수 없다.

 따라서 뒤돌려 치기포지션에서는 파이브 쿠션보다 될 수 있는 대로 짧은 각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한 테이블이었다. 따라서 장축은 더욱 길게 늘어지는 테이블인 것이다.

 테이블이 늘어지거나 짧아지는 것은 코너레일 네 군데 중 어디에선가 틈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결국 네 귀퉁이 중 어느 곳이 짧아지면 다른 쪽은 늘어지거나 불규칙한 쿠션반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테이블의 특성만을 믿다가는 큰 코를 다치게 된다. 분명하게 확신을 갖고 게임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특히 플러스 투로 꺾어지거나 늘어지는 것에 대비하여 스피드를 조절해가면서 조심스럽게 쳐야한다.    

 십팔 대 십이 점으로 내가 앞선 상태에서 앞 돌리기가 되었다. 앞 돌리기는 짧게 칠 것인가 길게 칠 것인가를 확실하게 결정해야한다. 대충 코너로만 보내면 적당하게 맞겠거니 했다간 빠뜨리거나 투 쿠션으로 맞추기가 십중팔구다. 물론 디펜스를 생각해 스피드를 조절해야한다.


 상대디펜스에 따라 뒷공이 예측불허하게 난구로 잡힐 때가 많다. 하지만 덩달아 디펜스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결코 내 점수를 순조롭게 만들어 나갈 수 없다. 게임운영에서 수비형의 경기태도냐 아니면 디펜스에 치중하지 않는 공격적인 게임이냐를 놓고 따졌을 때 나는 나중을 택한다. 쓰리쿠션경기는 공격적이지 않고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떠도는 미국타짜들은 대부분 디펜스에 치중하는 경향이 많다.


 이태리언 타짜역시 확실한 포지션이 아니면 디펜스에 치중하고 있었다. 큐볼이 멀리 떨어져 왕복쿠션으로도 힘든 상황이 되면 맞추기보다는 적당한 스피드로 내공을 멀리 단축레일ㅇ[다 갖다 붙이는 식의 디펜스플레이였다. 이미 그런 단계에서 벗어난 나는 난구를 헤쳐 나가는 공격적인 플레이만이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난구포지션도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스트로크로 확률이 있는 플레이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반드시 있어야한다. 그런 각오아래 최선의 실력을 공격적으로 발휘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자기스트로크에 믿음을 갖고 의심을 버려야한다. 때로는 질 수도 있지만 그럴 때면 분명히 자신의 스트로크에 자신감을 잃었을 경우다. 이태리언 타짜가 디펜스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스트로크에 믿음을 잃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윌리엄과 같은 그런 일이 생길 지도 몰라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한손으로 핸디캡 쓰리쿠션으로 당구장을 초토화시켰던 그는 두 손으로 치면서도 이십 점을 놓고 치는 게임에서 나를 당할 수가 없었다. 한 큐에 여덟 점을 거침없이 날려버린 내가 불과 이십 분도 안 되어 이십 대 십이로 게임을 끝내버렸다.


 이태리언 타짜는 계속 칠 것으로 알았는지 주위를 향해 썩소를 날리고는 뱅킹위치에 공을 가져다 놓았다.


“노 모어! 뎃츠 잇! 아이 엠 타이어드!”(No more! that's it! I'm tired!)

 나는 그는 아랑곳 않고 스낵코너로 가서 캔 콜라를 따서 시원하게 들이킨 다음 한마디 외치고는 큐대를 풀었다. 이 당구장 첫날 쌘디와 프레디가 나에게 써 먹었던 말이었다. 사실 더 이상 치고 싶은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커피보다 콜라가 시원하고 좋네!”

 약을 올리듯 하며 박기서와 상준이를 쳐다보자 어이없다는 듯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아마 서너 판쯤은 벌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바깥으로 나왔다. 힐끗 쳐다보니 이태리언 타짜가 나를 향해 미친놈처럼 주절거리고 있었다.     


 배팅한 오천 달러를 한 방에 챙긴 제임스가 오백 달러를 주었지만 괜스레 그들과 연결되는 것 같아 받지 않았다.

 당구장을 나서면서 문득 정희생각이 났다. 하지만 육백달러를 가지고는 그녀를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 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누군가 길가에서 빵빵거렸다. 즉석에서 몇 차례 마주쳤던 사내가 루즈벨트 애비뉴에 새로 당구장을 차린다며 개업일에 와 달라며 신신당부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당구장이 대박이라도 나는 것 같아 그도 덩달아 당구장을 차린 모양이었다. 내가 나타나면 내기당구꾼들이 꼬일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7. 에스 엘 빌리어드를 오픈한 이상천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그래픽서적을 뒤적거려가며 에스엘 빌리어드(SL Billiard) 로고마크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상천이가 당구장을 오픈한다는데 간판이나 실내장식은 못해주더라도 최소한 로고는 만들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에스와 엘자 이니셜이 쓰리쿠션당구공 세 개가 크라운에 접목된 약간 구태스럽기도 한 클래식스타일이었다. 최근에는 도형이거나 제도규격이 잡힌 딱딱한 로고마크보다는 로고타이프와 같은 자유스러운 흘림체가 상징적으로 그려지는 추세였다. 하지만 나는 구태의연하게 보이면서도 클래식한 전통을 살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의미를 풀어볼 수 있는 로고마크를 만들었다. 크라운을 바탕으로 그린 것도 세계대회챔피언이 되기를 기원하는 발전적인 의미에다 초점을 맞추었다.


 잭슨하이츠에 차려진 당구장에는 여덟 대의 벌호벤 테이블과 서른 두 대의 포켓볼테이블이 만 오천여 스퀘어피트에 멋지게 설치되어있었다. 동업이어서 그런지 신 까시의 부인과 상천이의 부인까지 나와 일을 돕고 있었다. 


“이건 네가 챔피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거니까 꼭 그렇게 될 거야!”

 그가 언젠가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챔피언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멋있긴 한데 약간 구닥다리 냄새가 난다!”

 한번 훑어본 그는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야! 로고마크가 상품이나 마찬가지라 디자인에 고전적인 바탕이 깔려있어야 비즈니스가 망하지 않는 거야!”

 한국에서 몇 차례나 당구장을 팔곤 했던 그가 이번에는 뉴욕에서 번듯한 당구장으로서 터를 잡아나가기만을 기원했다. 며칠 동안 공들여 만든 로고마크를 건네 준 나는 터덜거리며 다시 집으로 왔다.


주말저녁나절 새로 오픈하는 당구장으로 향했다. 개업일이라 몰려온 당구꾼들끼리 자연히 즉석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가 차린 당구장은 두 대의 국제식대대까지 갖추어 놓았다. 대대에서 쳐 본 사람들까지 노린 한국식당구장이다. 새로 설치한 테이블이라 공이 길게 떨어지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돈을 따먹기 위해 악착같은 마음이 없었다. 개업일이라 그저 재미삼아 대충대충 치고 있던 중이었다.


 열한시쯤 되었을 즈음에 갑자기 당구장 안으로 한인갱단인지 모를 권총강도가 십여 명이 들이닥쳤다. 모두의 손에 시커멓고도 커다란 총신의 권총이 들려있었다. 그들은 모두 운동모자를 쓴 채 아무런 말도 없이 총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엎드리라고 했다. 


 “에이 씨팔!”

 카운터에 있던 당구장주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그 말을 듣자 녀석들 중 누군가가 권총으로 주인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중국계인지 한국아이들인지 모를 그들은 모두가 이십대 초반처럼 보였다. 모두가 카펫바닥에 엎드려있는 사이 그들은 주머니를 샅샅이 뒤져 지갑에서부터 소지품과 벽에다 걸어놓은 옷가지들까지 몽땅 걷어가 버렸다.

 새로 오픈하는 것을 알고 노름당구 판이 벌어지는 야밤을 틈타 계획적으로 쳐들어 온 것이었다. 아니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려준 게 틀림없었다. 이런 사건이 생긴 것은 분명 나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지고 있던 육백달러에다 이백 달러정도 딴 돈까지 몽땅 그들에게 털리고 말았다. 내 가죽재킷에는 신분증까지 들어있어 돈보다 옷까지 가져간 녀석들이 더욱 괘씸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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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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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lotto | 작성시간 11.12.10 붉은가을님....무고하셨느지요?
    궁금했습니다
  • 작성자산인 | 작성시간 11.12.11 오랜만입니다.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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