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나무 그늘 아래, 정독도서관
서울 종로구 화동 22번지 정독도서관은 길을 걷다 잠시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도서관 마당에는 편안하게 앉아 쉬거나 책을 읽기 좋은 벤치가 많다.
이를 감싸 안은 듯 자란 등나무는 햇살을 촘촘히 막아준다.
벚나무, 버찌가 열리는 왕벚나무, 꽃사과나무 등 여러 나무가 어우러져 큰 정원을 이룬다.
수령 300년이 넘은 아름드리 회화나무는 기품이 있다.
연못과 물레방아, 작은 오두막도 있다.
강남으로 옮겨 간 경기고등학교의 옛 교정이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서울공예박물관을 끼고 우회전해 10분 정도 걷는다.
서울공예박물관 역시 옛 풍문여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곳이다.
정독도서관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감고당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만나는 첫 번째 네거리 오른쪽 언덕에 있다.
조선시대 이 일대에는 붉은 흙이 많아 이 고개에 홍현(紅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정독도서관은 1977년 문을 열었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대 강남을 개발하면서 경기고를 비롯해 강북 주요 명문고의 강남 이전을 강하게 추진했다.
경기고 전신인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출신인 민관식 문교부 장관은 이전을 반대하는 동문들에게 경기고 건물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해 보존하겠다고 설득했다.
경기고는 1976년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겼고, 기존 건물은 도서관이 됐다.
건물은 1938년에 지어졌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스팀 난방 방식이 도입됐고, 최고급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건립됐다.
무엇보다 건물 입구의 포치형 현관이 눈길을 끈다.
1930년대 자동차라는 신문물을 타고 건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가 여기에도 적용됐다.
정면과 측면의 세 개 아치 기둥은 사진 촬영 명소로 사랑받는다.
정독도서관의 ‘정독’은 정독(精讀)이 아니라 정독(正讀)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 가운데 정(正) 자를 붙였다.
도서관 입구의 ‘정독도서관’ 글씨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졌다.
도서관 한쪽에는 ‘겸재인왕제색도비’가 세워져 있다.
겸재 정선이 이 자리에서 본 인왕산을 토대로 걸작 《인왕제색도》를 남겼다고 한다.
이 땅에는 갑신정변(1884년)의 주역 김옥균의 집(현재의 교육박물관 쪽)이 있었다.
갑신정변이 3일 만에 실패로 끝나면서 김옥균의 집은 불탔고, 집터는 몰수됐다.
1900년 이곳에는 최초의 중등학교인 관립한성중학교가 세워졌고, 1921년 관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경기공립중학교를 거쳐 광복 후인 1951년 경기중·고교가 됐다.
6·25전쟁 때는 미군 통신부대로 쓰이다가 1956년 다시 학교가 됐다.
조선 전기에는 ‘단종 복위’를 도모한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의 집도 이곳에 있었다(현재의 도서관 주차장 쪽).
거사가 실패하면서 성삼문은 거열형을 당하는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1456년 6월의 일이다.
성삼문의 처와 딸은 노비로 팔려가는 등 가문은 멸문의 화를 겪었다.
세조 12년(1466년) 성삼문의 집이 있던 곳에는 궁중의 꽃과 나무를 키우던 장원서(掌苑署)가 들어섰다.
화동(花洞)이라는 지명은 궁중의 꽃과 나무를 관리하던 장원서가 있어 ‘꽃이 피는 동네’(花開洞)를 거쳐 ‘꽃동네’(花洞)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동은 동쪽으로는 가회동, 남서쪽으로는 소격동, 남쪽으로는 안국동, 북쪽으로는 삼청동, 북서쪽으로는 팔판동과 붙어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한 곳으로, ‘북촌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광해군 때는 화기도감이 들어섰다.
한때 정독도서관 안에는 종친부 건물들도 있었다.
종친부 건물들은 원래 경복궁 동쪽 소격동에 있었는데, 12ㆍ12 군사 반란을 통해 권력을 잡은 신군부의 국군보안사령부(이후 기무사령부를 거쳐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들어서면서 1981년 정독도서관 안으로 강제 이전됐다.
이후 기무사와 국군통합병원이 2008년 과천으로 이전하고, 2013년 기무사 건물 일부를 리모델링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서면서 종친부 건물도 정독도서관 경내에서 현재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독도서관 내 서울교육박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국민학교 시절의 운동회 모습이 디오라마로 전시돼 있다.
교복, 얼룩무늬 교련복, 그 시대의 교실과 교과서, 책가방과 도시락 등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각 학교 배지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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