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작년(2002년), 월간지 '교육연구'에 실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경음화 현상의 환경적 요인을 정리했었다고 생각되어
이 곳에 다시 싣습니다.
* * * * *
‘김빱’과 ‘꽈대표’ 그리고 ‘장마삐’
-경음현상과 국어의 오염-
성신여자고등학교 교사 오 경 자
언제부턴가 방송이, 된소리를 모두 배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효과(効果)’와 ‘불법(不法)’이 귀에 거슬리더니 이제는 ‘일괄적’, ‘법률적’, ‘개별적’, ‘획일적’, ‘일률적’, ‘현실적’은 물론 심지어는 ‘북한제’, ‘물지개’, ‘흠집내기’, ‘좀도둑’, ‘불법’, ‘이번 주’, ‘수술대’, ‘출발점’, ‘한강다리’, ‘담배값’, ‘산자락’까지도 예사소리로 발음하고 있다. 마치 된소리는 다 틀린 발음이고, 그래서 무조건 예사소리로 바꿔야 국어순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금년 여름에는 평생 들어보지 못한 ‘장맛비’라는 소리까지 만들어서 자꾸 귀를 괴롭혔다. 근데 그건 나, 국어 선생에게만 이상하게 들린 것이 아니었다.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장마삐’가 맞는 발음이냐는 똑같은 질문을 받은 것이다. 비슷한 사례들을 들고 ‘장마비’라고 발음해야 하는 이유를 전통적인 발음으로 확인시키면서 방송이 틀린 이유를 말했지만, 그게 방송사 자체만의 일방적 규정일 수 없지 않느냐는 반론 앞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어쩌면 국어교사가 오히려 국가의 규범을 어기고 무시했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경음현상은 대단히 복잡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이 유성음(모음과 자음 ㄴ,ㄹ,ㅁ,ㅇ) 아래에 오는 예사소리 자음의 발음 문제이다. 지금 방송이 혼란을 빚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경우이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 경음으로 발음되기도 하고 예사소리로 발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교무실에서 김밥 얘기를 하다가 동료 선생한테 크게 핀잔을 들은 일이 있다. “국어 선생님이 김밥이 뭐얘요, 김빱이지.”
기가 막혔지만 워낙 잘못 발음하는 세력이 막강한지라 침을 한번 삼키고는, ‘김빱’이 틀린 것이고 원래는 ‘김밥’이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맞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은 주변의 여러 선생님들에게 발음을 해보라면서 내가 틀리게 발음하고 있다는 것을 열심히 증명까지 하려 했다.
참 막막했다. 주변 선생님들의 발음도 하나같이 ‘김빱’이었다. 할 수 없이 난, 교무실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께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께서는 틀림없이 ‘김밥’이라고 발음하셨다.
이 지경이다. 정작 무엇이 잘못 발음되는 것인지, 왜 잘못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무조건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인 줄 아는 방송은 더욱 그렇다. 대중매체로서의 전파력은 그만두고라도, 방송언어는 적어도 바르고 정확해야 한다는 기본적 책임 하나만을 생각하더라도 언제까지 구경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돼 한 마디 한다.
그러면 국어에서 경음(된소리)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말 국어를 오염시키는 잘못된 현상일 뿐인가?
우리 국어는 예부터 된소리와 예사소리의 구별이 있어서 그에 따라 뜻을 분화했었다. 이를테면 ‘연줄’이 된소리로 발음될 경우는 ‘연(鳶)의 줄’을 말하고, 예사소리로 발음하면 ‘혈연․지연․학연․정분 등의 특별한 관계’를 뜻한다. 이런 현상은 간기(짠氣 : 肝氣), 정적(靜的 : 靜寂․政敵), 잠자리(寢牀 : 昆蟲), 볼거리(볼만한 것들 : 病名), 전적(全的 : 戰績․轉籍), 경기(驚氣 : 競技․景氣), 장기(長技 : 將棋․臟器․長期), 신장(신을 넣는 장 : 身長․新裝․腎臟․伸張)…등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정적(靜寂)’과 ‘잠자리(곤충)’는 예사소리로 발음해야 하고, ‘정적(靜的)’, ‘잠자리(寢牀)’는 된소리로 발음해야 하며, 전염병인 ‘볼거리’를 ‘볼꺼리’로 발음하면 절대로 안 되고, ‘발병(發病)’은 예사소리로 해야 하고 ‘발병(발에 나는 병)’은 반드시 된소리로 발음해야 한다. ‘불기둥’은 된소리지만 ‘돌기둥’을 된소리로 발음해서는 안 되고.
다시 말해서 우리 국어에서 된소리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발음구조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어를 순화한다는 목적으로 무조건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거나, 또는 아무런 원칙도 없이 아무렇게나 바꾸어서는 오히려 국어 발음의 엄청난 혼란만을 만들어낼 것이다. 요는 된소리가 나는 환경요인, 즉 된소리를 만드는 음운적 환경을 고찰함으로써 일정한 원리를 찾아내고, 그 원리를 현재의 국어 발음에 적용하면 대개는 통일성을 이룰 수 있게 될 터이고, 설령 규칙 밖의 단어가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다른 문법 현상의 처리와 같이 예외 경우로 정리한다면, 적어도 경음으로 인한 발음의 혼란은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국어에서 유성음 아래에서의 된소리는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첫째, 앞 음절의 모음이 장모음일 경우에는 대체로 뒤에 오는 자음을 유성음으로 발음하여 예사소리와 같이 소리 냈고, 단모음일 경우에는 그대로 된소리로 발음을 했다. 이는 단순구조에서나 복합구조에서나 거의 같이 적용됐었다. 이를테면 ‘효과’나 대가(代價) 같은 단어는 ‘효’와 ‘대’가 단모음이기 때문에 ‘효꽈’, ‘대까’라고 발음했으며, ‘윤기(潤氣)’의 경우는 ‘윤’이 장모음이기 때문에 ‘윤기’라고 했지 ‘윤끼’이라고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김밥’도 ‘김’이 장모음이기 때문에 ‘김밥’이라고 했고, ‘문법(文法)’을 ‘문뻡’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문’이 단모음인 환경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기둥’을 된소리 ‘불끼둥’으로 발음했던 것, ‘돌기둥’을 예사소리 ‘돌기둥’으로 발음한 것도 다 ‘불’과 ‘돌’이 각각 단모음과 장모음이라는 차이에서 온 발음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앞 음절이 모음이나 유성자음으로 끝날 경우에도 모음이 단모음일 경우에는 그게 단일구조거나 복합구조거나 간에 된소리로 되는 경향이 컸다는 말이다. 그래서 ‘효과, 대가, 시가(時價), 초점(焦點)…’같은 단어와 ‘간국(짠 국물), 공돈, 공술, 궁기(궁핍한 기운)’, 길가(路邊), 날줄(經線), 논점(論點), 단적(端的), 등불, 물결, 발등, 봄비, 산불, 손길, 손등, 길바닥, 문지방, 물방울, 발길질, 발바닥, 손바닥, 솔방울, 담벼락, 땅바닥…같은 단어들을 모두 된소리로 발음했던 것이다.
둘째, 앞 음절의 끝소리가 'ㄹ'일 경우인데, 이는 발음 경제의 원칙을 적용해서 설명이 되는 현상이다. 복합구조의 경우, 모음과 ‘ㄴ,ㅁ,ㅇ’의 다음에 오면 예사소리로 발음되던 자음도 같은 유성음인 ‘ㄹ’ 아래서는 된소리로 발음이 된다. ‘교과서, 간단, 윤기, 창고(倉庫), 창구(窓口), 참고서, 정신적, 사랑방’을 교꽈서, 간딴, 윤끼, 창꼬, 창꾸, 참꼬서, 정신쩍, 사랑빵’으로 발음하지 않는데 비해, ‘ㄹ’이 끝소리일 경우는 이와 달리 ‘물껼, 길빠닥, 물쩍(物的), 효율쩍, 일률쩍, 포괄쩍, 고질쩍…’들과 같이 다 된소리로 발음을 하는 것이다. 이는 두 형태소를 분리시킴으로써 의미를 정확하게 만드는 기능과 함께 발음 경제 원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단순히 ‘물품’을 뜻하는 ‘물건(物件)’은 예사소리이지만, ‘매매나 거래의 대상’을 나타내는 ‘물건(物件)’은 된소리다. 그런데 여기서 ‘물’과 ‘건’이 두 형태소라는 걸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소리에 간격을 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는 된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경우(두 개의 형태소로 의식하고 발음할 경우), ‘ㄹ’ 아래서 연한 발음(예사소리)을 할 경우의 발음과정을 유의해서 관찰하면 ‘ㄹ’을 발음한 뒤, 잠시 조음기관이 원 위치로 돌아가 다음 발음을 준비하는, 아주 짧지만 긴장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두 개의 형태소로 된 단어에서 앞의 형태소의 끝소리 ‘ㄹ’을 발음하고 바로 이어서 다음 형태소의 첫소리인 예사소리를 발음할 때는 발음하기가 꽤 부담된다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음에 오는 예사소리를 모두 된소리로 발음하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결국 앞의 모음이 단모음이 되면서 뒤의 자음이 된소리로 되는 것이다. 마치 혀끝소리 ‘ㄷ’이나 ‘ㅌ’을 발음하고 고모음인 ‘ㅣ’모음을 발음하는 것이 힘들어서 ‘ㄷ’과 ‘ㅌ’을 아예 입천장소리 ‘ㅈ’과 ‘ㅊ’으로 바꿔서 소리 냈던 구개음화 현상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
이 이외에도 국어의 경음현상은 복잡한 편이어서, 위의 이론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단어들도 간혹 있다. 이를테면 ‘말발(말의 힘), 움집, 들길, 맘보(마음을 쓴 본새),…’ 등의 단어를 ‘말빨, 움찝, 들낄, 맘뽀’와 같이 된소리로 발음한 경우다. 이 단어들은 앞의 모음이 다 장모음임에도 불구하고 된소리로 발음을 했던 것이다. 아마도 두 개의 형태소로 이루어진 단어라는 의식과 함께 앞의 형태소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처방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국어에는 이렇게 장모음 아래에서도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된소리가 꼭 필요한 음운현상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어순화의 차원에서 경음화 문제를 푸는 방법은 무조건 예사소리 일변도가 아니라 발음 환경, 발음 조건에 따라 잘못된 발음을 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음 경제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고 일관성 있게 된소리로 발음하던 것까지를 예사소리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국어를 오염시키는 일이다. ‘개괄적, 고질적, 법률적, 무차별적, 본질적, 포괄적, 현실적…’과 같은 경우는 마땅히 된소리로 발음해야 하고, ‘일관된, 일기장, 개인기, 꿈자리, 정신적, 인간적, 자연적…’과 같은 경우는 반드시 예사소리로 발음해야 한다.
이를테면 앞의 ‘김밥’이라든지 ‘창고(倉庫)’, ‘교과서(敎科書)’, ‘참고서(參考書)…’ 같은 것은 본래 예사소리였던 것이 된소리로 바뀐 것들이니, 이렇게 이유 없이(뜻의 분화와 관계없이) 된소리로 바뀐 것들을 순화의 대상으로 해야지 무조건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김밥’을 이유 없이 ‘김빱’이라고 하는 것이라든가 ‘과대표(科代表)’를 ‘꽈대표’로, ‘뜸북새’를 ‘뜸뿍새’로, ‘세련’을 ‘쎄련’으로, ‘생방(生放)’을 ‘쌩방’으로, ‘간단히’를 ‘간딴히’로 발음하고 있는 것들이야말로 반드시 순화시켜야 할 대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눈덩이, 산불, 개괄적, 법률적, 전적(全的), 단적(端的), 산등, 산등성이…’같은 단어들을 예사소리로 발음하는 것은 오히려 국어를 오염시키는 처사이고, 예부터 된소리로 발음했던 ‘효과’, ‘문법’, ‘일괄적’, ‘법률적’, ‘개별적’, ‘기술적’, ‘획일적’, ‘일률적’, ‘현실적’, ‘북한제’, ‘물지개’, ‘흠집내기’, ‘좀도둑’, ‘불법’, ‘수술대’, ‘출발점’, ‘한강다리’, ‘담배값’, ‘산자락’ ‘이번 주’나 ‘손바닥’, ‘길바닥’, ‘손등’, ‘등살’, ‘산등성이’, ‘물동이’ 들을 예사소리로 발음하고, ‘잔불(남아 있는 불)’을 ‘잔뿔’이라고 하거나 ‘유가증권(有價證券)’을 예사소리로 발음하는 것은 모두 국어의 발음을 오염시키는 잘못된 발음이다. 따라서 무조건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는 것이 국어순화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은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부언하면 금년에 갑자기 등장한 ‘장마삐’―
정말 어처구니없는 난센스다. 같은 경우로 ‘고래기름(고래의 기름)’이 있다. 이는 분명히 합성어인데도 사잇소리가 들어가지 않고, 그래서 ‘고래끼름’이 아니라 ‘고래기름’으로 발음한다. ‘장맛비’의 경우, 전통적으로 우리 부모님들은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가리켜 ‘장마비’라고 발음했지, 절대로 ‘장마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굳이 사잇소리를 넣어서 ‘장맛비’로 만들고 ‘장마삐’라고 발음해서 사람들의 귀를 거슬리게 한 이유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느 누가, 왜 그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어 국어를 순화시키겠다는 노선하고도 정면으로 상치되는 일이 아닌가?
국어연구기관에서는 경음현상에 대해 하루속히 어떤 원칙으로라도 일정한 방향을 잡음으로써 발음의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짜장면’이 어느 연예인의 주장에 의해 ‘자장면’으로 됐다던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국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자존심을 떠나서 이거야말로 어불성설 아니냐? 중국 사람들의 발음을 이렇게 저렇게 주의해서 들어도 ‘짜장면’에 가깝고, 또 그게 그렇게 오랜 세월 그렇게 막강한 세력으로 이미 뿌리를 내렸던 외래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자장면’으로 고치도록 내버려두었는지 말이다. 주변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만일 그것도 국어순화의 일환이었다면 외래어 처리에도 경음을 피하겠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국어를 향한 애정이 새삼 외롭고 쓸쓸해진다.
(2002. 12)
나름대로 경음화 현상의 환경적 요인을 정리했었다고 생각되어
이 곳에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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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빱’과 ‘꽈대표’ 그리고 ‘장마삐’
-경음현상과 국어의 오염-
성신여자고등학교 교사 오 경 자
언제부턴가 방송이, 된소리를 모두 배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효과(効果)’와 ‘불법(不法)’이 귀에 거슬리더니 이제는 ‘일괄적’, ‘법률적’, ‘개별적’, ‘획일적’, ‘일률적’, ‘현실적’은 물론 심지어는 ‘북한제’, ‘물지개’, ‘흠집내기’, ‘좀도둑’, ‘불법’, ‘이번 주’, ‘수술대’, ‘출발점’, ‘한강다리’, ‘담배값’, ‘산자락’까지도 예사소리로 발음하고 있다. 마치 된소리는 다 틀린 발음이고, 그래서 무조건 예사소리로 바꿔야 국어순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금년 여름에는 평생 들어보지 못한 ‘장맛비’라는 소리까지 만들어서 자꾸 귀를 괴롭혔다. 근데 그건 나, 국어 선생에게만 이상하게 들린 것이 아니었다.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장마삐’가 맞는 발음이냐는 똑같은 질문을 받은 것이다. 비슷한 사례들을 들고 ‘장마비’라고 발음해야 하는 이유를 전통적인 발음으로 확인시키면서 방송이 틀린 이유를 말했지만, 그게 방송사 자체만의 일방적 규정일 수 없지 않느냐는 반론 앞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어쩌면 국어교사가 오히려 국가의 규범을 어기고 무시했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경음현상은 대단히 복잡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이 유성음(모음과 자음 ㄴ,ㄹ,ㅁ,ㅇ) 아래에 오는 예사소리 자음의 발음 문제이다. 지금 방송이 혼란을 빚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경우이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 경음으로 발음되기도 하고 예사소리로 발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교무실에서 김밥 얘기를 하다가 동료 선생한테 크게 핀잔을 들은 일이 있다. “국어 선생님이 김밥이 뭐얘요, 김빱이지.”
기가 막혔지만 워낙 잘못 발음하는 세력이 막강한지라 침을 한번 삼키고는, ‘김빱’이 틀린 것이고 원래는 ‘김밥’이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맞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은 주변의 여러 선생님들에게 발음을 해보라면서 내가 틀리게 발음하고 있다는 것을 열심히 증명까지 하려 했다.
참 막막했다. 주변 선생님들의 발음도 하나같이 ‘김빱’이었다. 할 수 없이 난, 교무실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께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께서는 틀림없이 ‘김밥’이라고 발음하셨다.
이 지경이다. 정작 무엇이 잘못 발음되는 것인지, 왜 잘못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무조건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인 줄 아는 방송은 더욱 그렇다. 대중매체로서의 전파력은 그만두고라도, 방송언어는 적어도 바르고 정확해야 한다는 기본적 책임 하나만을 생각하더라도 언제까지 구경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돼 한 마디 한다.
그러면 국어에서 경음(된소리)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말 국어를 오염시키는 잘못된 현상일 뿐인가?
우리 국어는 예부터 된소리와 예사소리의 구별이 있어서 그에 따라 뜻을 분화했었다. 이를테면 ‘연줄’이 된소리로 발음될 경우는 ‘연(鳶)의 줄’을 말하고, 예사소리로 발음하면 ‘혈연․지연․학연․정분 등의 특별한 관계’를 뜻한다. 이런 현상은 간기(짠氣 : 肝氣), 정적(靜的 : 靜寂․政敵), 잠자리(寢牀 : 昆蟲), 볼거리(볼만한 것들 : 病名), 전적(全的 : 戰績․轉籍), 경기(驚氣 : 競技․景氣), 장기(長技 : 將棋․臟器․長期), 신장(신을 넣는 장 : 身長․新裝․腎臟․伸張)…등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정적(靜寂)’과 ‘잠자리(곤충)’는 예사소리로 발음해야 하고, ‘정적(靜的)’, ‘잠자리(寢牀)’는 된소리로 발음해야 하며, 전염병인 ‘볼거리’를 ‘볼꺼리’로 발음하면 절대로 안 되고, ‘발병(發病)’은 예사소리로 해야 하고 ‘발병(발에 나는 병)’은 반드시 된소리로 발음해야 한다. ‘불기둥’은 된소리지만 ‘돌기둥’을 된소리로 발음해서는 안 되고.
다시 말해서 우리 국어에서 된소리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발음구조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어를 순화한다는 목적으로 무조건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거나, 또는 아무런 원칙도 없이 아무렇게나 바꾸어서는 오히려 국어 발음의 엄청난 혼란만을 만들어낼 것이다. 요는 된소리가 나는 환경요인, 즉 된소리를 만드는 음운적 환경을 고찰함으로써 일정한 원리를 찾아내고, 그 원리를 현재의 국어 발음에 적용하면 대개는 통일성을 이룰 수 있게 될 터이고, 설령 규칙 밖의 단어가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다른 문법 현상의 처리와 같이 예외 경우로 정리한다면, 적어도 경음으로 인한 발음의 혼란은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국어에서 유성음 아래에서의 된소리는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첫째, 앞 음절의 모음이 장모음일 경우에는 대체로 뒤에 오는 자음을 유성음으로 발음하여 예사소리와 같이 소리 냈고, 단모음일 경우에는 그대로 된소리로 발음을 했다. 이는 단순구조에서나 복합구조에서나 거의 같이 적용됐었다. 이를테면 ‘효과’나 대가(代價) 같은 단어는 ‘효’와 ‘대’가 단모음이기 때문에 ‘효꽈’, ‘대까’라고 발음했으며, ‘윤기(潤氣)’의 경우는 ‘윤’이 장모음이기 때문에 ‘윤기’라고 했지 ‘윤끼’이라고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김밥’도 ‘김’이 장모음이기 때문에 ‘김밥’이라고 했고, ‘문법(文法)’을 ‘문뻡’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문’이 단모음인 환경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기둥’을 된소리 ‘불끼둥’으로 발음했던 것, ‘돌기둥’을 예사소리 ‘돌기둥’으로 발음한 것도 다 ‘불’과 ‘돌’이 각각 단모음과 장모음이라는 차이에서 온 발음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앞 음절이 모음이나 유성자음으로 끝날 경우에도 모음이 단모음일 경우에는 그게 단일구조거나 복합구조거나 간에 된소리로 되는 경향이 컸다는 말이다. 그래서 ‘효과, 대가, 시가(時價), 초점(焦點)…’같은 단어와 ‘간국(짠 국물), 공돈, 공술, 궁기(궁핍한 기운)’, 길가(路邊), 날줄(經線), 논점(論點), 단적(端的), 등불, 물결, 발등, 봄비, 산불, 손길, 손등, 길바닥, 문지방, 물방울, 발길질, 발바닥, 손바닥, 솔방울, 담벼락, 땅바닥…같은 단어들을 모두 된소리로 발음했던 것이다.
둘째, 앞 음절의 끝소리가 'ㄹ'일 경우인데, 이는 발음 경제의 원칙을 적용해서 설명이 되는 현상이다. 복합구조의 경우, 모음과 ‘ㄴ,ㅁ,ㅇ’의 다음에 오면 예사소리로 발음되던 자음도 같은 유성음인 ‘ㄹ’ 아래서는 된소리로 발음이 된다. ‘교과서, 간단, 윤기, 창고(倉庫), 창구(窓口), 참고서, 정신적, 사랑방’을 교꽈서, 간딴, 윤끼, 창꼬, 창꾸, 참꼬서, 정신쩍, 사랑빵’으로 발음하지 않는데 비해, ‘ㄹ’이 끝소리일 경우는 이와 달리 ‘물껼, 길빠닥, 물쩍(物的), 효율쩍, 일률쩍, 포괄쩍, 고질쩍…’들과 같이 다 된소리로 발음을 하는 것이다. 이는 두 형태소를 분리시킴으로써 의미를 정확하게 만드는 기능과 함께 발음 경제 원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단순히 ‘물품’을 뜻하는 ‘물건(物件)’은 예사소리이지만, ‘매매나 거래의 대상’을 나타내는 ‘물건(物件)’은 된소리다. 그런데 여기서 ‘물’과 ‘건’이 두 형태소라는 걸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소리에 간격을 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는 된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경우(두 개의 형태소로 의식하고 발음할 경우), ‘ㄹ’ 아래서 연한 발음(예사소리)을 할 경우의 발음과정을 유의해서 관찰하면 ‘ㄹ’을 발음한 뒤, 잠시 조음기관이 원 위치로 돌아가 다음 발음을 준비하는, 아주 짧지만 긴장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두 개의 형태소로 된 단어에서 앞의 형태소의 끝소리 ‘ㄹ’을 발음하고 바로 이어서 다음 형태소의 첫소리인 예사소리를 발음할 때는 발음하기가 꽤 부담된다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음에 오는 예사소리를 모두 된소리로 발음하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결국 앞의 모음이 단모음이 되면서 뒤의 자음이 된소리로 되는 것이다. 마치 혀끝소리 ‘ㄷ’이나 ‘ㅌ’을 발음하고 고모음인 ‘ㅣ’모음을 발음하는 것이 힘들어서 ‘ㄷ’과 ‘ㅌ’을 아예 입천장소리 ‘ㅈ’과 ‘ㅊ’으로 바꿔서 소리 냈던 구개음화 현상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
이 이외에도 국어의 경음현상은 복잡한 편이어서, 위의 이론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단어들도 간혹 있다. 이를테면 ‘말발(말의 힘), 움집, 들길, 맘보(마음을 쓴 본새),…’ 등의 단어를 ‘말빨, 움찝, 들낄, 맘뽀’와 같이 된소리로 발음한 경우다. 이 단어들은 앞의 모음이 다 장모음임에도 불구하고 된소리로 발음을 했던 것이다. 아마도 두 개의 형태소로 이루어진 단어라는 의식과 함께 앞의 형태소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처방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국어에는 이렇게 장모음 아래에서도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된소리가 꼭 필요한 음운현상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어순화의 차원에서 경음화 문제를 푸는 방법은 무조건 예사소리 일변도가 아니라 발음 환경, 발음 조건에 따라 잘못된 발음을 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음 경제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고 일관성 있게 된소리로 발음하던 것까지를 예사소리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국어를 오염시키는 일이다. ‘개괄적, 고질적, 법률적, 무차별적, 본질적, 포괄적, 현실적…’과 같은 경우는 마땅히 된소리로 발음해야 하고, ‘일관된, 일기장, 개인기, 꿈자리, 정신적, 인간적, 자연적…’과 같은 경우는 반드시 예사소리로 발음해야 한다.
이를테면 앞의 ‘김밥’이라든지 ‘창고(倉庫)’, ‘교과서(敎科書)’, ‘참고서(參考書)…’ 같은 것은 본래 예사소리였던 것이 된소리로 바뀐 것들이니, 이렇게 이유 없이(뜻의 분화와 관계없이) 된소리로 바뀐 것들을 순화의 대상으로 해야지 무조건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김밥’을 이유 없이 ‘김빱’이라고 하는 것이라든가 ‘과대표(科代表)’를 ‘꽈대표’로, ‘뜸북새’를 ‘뜸뿍새’로, ‘세련’을 ‘쎄련’으로, ‘생방(生放)’을 ‘쌩방’으로, ‘간단히’를 ‘간딴히’로 발음하고 있는 것들이야말로 반드시 순화시켜야 할 대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눈덩이, 산불, 개괄적, 법률적, 전적(全的), 단적(端的), 산등, 산등성이…’같은 단어들을 예사소리로 발음하는 것은 오히려 국어를 오염시키는 처사이고, 예부터 된소리로 발음했던 ‘효과’, ‘문법’, ‘일괄적’, ‘법률적’, ‘개별적’, ‘기술적’, ‘획일적’, ‘일률적’, ‘현실적’, ‘북한제’, ‘물지개’, ‘흠집내기’, ‘좀도둑’, ‘불법’, ‘수술대’, ‘출발점’, ‘한강다리’, ‘담배값’, ‘산자락’ ‘이번 주’나 ‘손바닥’, ‘길바닥’, ‘손등’, ‘등살’, ‘산등성이’, ‘물동이’ 들을 예사소리로 발음하고, ‘잔불(남아 있는 불)’을 ‘잔뿔’이라고 하거나 ‘유가증권(有價證券)’을 예사소리로 발음하는 것은 모두 국어의 발음을 오염시키는 잘못된 발음이다. 따라서 무조건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는 것이 국어순화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은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부언하면 금년에 갑자기 등장한 ‘장마삐’―
정말 어처구니없는 난센스다. 같은 경우로 ‘고래기름(고래의 기름)’이 있다. 이는 분명히 합성어인데도 사잇소리가 들어가지 않고, 그래서 ‘고래끼름’이 아니라 ‘고래기름’으로 발음한다. ‘장맛비’의 경우, 전통적으로 우리 부모님들은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가리켜 ‘장마비’라고 발음했지, 절대로 ‘장마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굳이 사잇소리를 넣어서 ‘장맛비’로 만들고 ‘장마삐’라고 발음해서 사람들의 귀를 거슬리게 한 이유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느 누가, 왜 그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어 국어를 순화시키겠다는 노선하고도 정면으로 상치되는 일이 아닌가?
국어연구기관에서는 경음현상에 대해 하루속히 어떤 원칙으로라도 일정한 방향을 잡음으로써 발음의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짜장면’이 어느 연예인의 주장에 의해 ‘자장면’으로 됐다던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국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자존심을 떠나서 이거야말로 어불성설 아니냐? 중국 사람들의 발음을 이렇게 저렇게 주의해서 들어도 ‘짜장면’에 가깝고, 또 그게 그렇게 오랜 세월 그렇게 막강한 세력으로 이미 뿌리를 내렸던 외래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자장면’으로 고치도록 내버려두었는지 말이다. 주변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만일 그것도 국어순화의 일환이었다면 외래어 처리에도 경음을 피하겠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국어를 향한 애정이 새삼 외롭고 쓸쓸해진다.
(20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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