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다시 산행을 안내하는 터라 다소 들뜬 기분에 걸음이 가볍다. 다짐한 마음을 비웃듯 발이 빠르게 가라고 떠민다. 한 달여 산티아고 순례에서 당한 혹사를 되갚으려고 벼른 듯하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이 자존심을 버리고 간절히 애원하는데도 안하무인이다. 원망스럽지만 자초한 인과응보라 포기하고 끌려간다.
정시에 11명의 벗들의 얼굴을 보자 무척 반갑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 만나는 것처럼 기쁘다. 멋쩍어 하며 횡포를 부리던 발도 숙연해진다. 곧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대학교 경내로 들어서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한다. 곳곳이 공사 중에 있어 지름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건물로 들어가 빠져나간다. 학생들로 가득 찬 강의실을 지나며 방해를 하는 것 같아 무척 미안하게 느끼며 막무가내인 발을 세차게 밀어붙인다.
상상을 초월한 선거작태의 불의를 보고 마침내 일어선 젊은이들이 떠올라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 중 적지 않은 학생들이 매일 수업을 끝내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깊은 늪으로 빠져가고 있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투쟁에 참여하는 걸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눈에 이슬이 끊임없이 맺힌다. 지난 10여년 자랑스러운 모국의 추락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과 무능함을 한탄하며 눈물로 지새운 밤이 얼마나 셀 수 없이 많았는가! 젊은이들 모두가 찬란하게 빛날 우리의 미래이고 영웅들이다.
가슴 벅찬 희망이 용솟음 쳐 오르자 무심코 발을 더욱 채찍질 한다. 대학교를 벗어나 깊은 신록에 감싸인 포근한 남산 길을 걸어 나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 처진 몇몇 벗들이 너무 빠르게 간다고 아우성이란다. 예전보다 현저히 속도가 준 걸 생각하며 야속한 심정이 울컥 솟아오른다. 곧 냉정을 찾고 이해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체력이 약해진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러니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더욱이 산티아고 카미노를 하면서 체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확신하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너무 부끄럽다. 앞으로는 벗들의 건강을 생각해 걷는 속도와 거리를 줄이고 편안한 길을 택하겠다고 다시 한 번 굳게 다진다. 마침내 예약해둔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가 뷔페를 우아하게 느끼며 든다. 모두가 칭찬하니 기분이 무척 좋다.
정의와 용기가 넘쳐흐르는 젊은이들이 물꼬를 터 놓은 밝은 미래가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2시경 길로 나선다.
함께한 벗들: 김세진, 김승열, 김영후, 김종하, 김희택, 박재진, 방건영, 서규석, 이승권, 이원식, 정한성, 조시행, 최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