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부처님은 활등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걸림 없는 법을 말씀하셔서 한맛에 돌아가게 하셨다.
이 한맛의 자취마저 떨쳐버려야 비로소 조사가 보인 한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뜰 앞의 잣나무’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註解}
활등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구부러졌다는 뜻이고,
활줄같이 말했다는 것은 곧다는 뜻이다.
용궁의 장경이란 용궁에 모셔둔 대장경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조주스님이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이것이 이른바 격식 밖의 선지이다.
[頌]
고기가 나아가니 물이 흐려지고 새가 날아가니 깃털이 떨어지는구나.
부처님께서는 완곡하고 자세하게 표현하셨지만, 조사들의 가르침은
직설적이다 못해 때론 파격적이다.
이와 같은 격식 밖의 선지는 달마조사가 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달마조사가 서쪽,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뜻이 무엇일까?
결국 중생의 고통을 덜어 안심케 하여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苦(고)가 어떻고, 윤회가 어떻고, 해탈이 어떠한 것이니,
고통에서 벗어나 안심을 얻으려면 이러쿵저러쿵 해야 한다는 식의
설명은 활등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달마조사의 방식은 활줄처럼 팽팽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호소하는 혜가에게,
“괴롭다고 하는 네 마음을 내놓아 보거라.”
하고 직설적으로 추궁한다. 그런 점에서 조주스님도 마찬가지이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묻는 제자에게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고 답한다.
왜 ‘뜰 앞의 잣나무’라 했을까?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그만두고, 네 마음자리나 돌이켜보라는 말인가?
아니면 바로 지금 뜰 앞의 잣나무가 진리를 설하고 있다는 말인가?
어째서 뜰 앞의 잣나무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