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회 사진

[스크랩]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예수성당 (독일 하이델베르크)

작성자김의천|작성시간06.10.03|조회수850 목록 댓글 0

하이델베르크 전경과 성령교회         출처   블로그명 :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본 성령교회 첨탑, 대학 건물은 두 채 정도다

 

 성령교회 (Heiliggeistkeriche) 개신교회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바실리카가 있던 자리에 1400~1401년 사이에 지어진 대학 부속 교회로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고 한다. 바로크 양식의 돔이 특징인 성령 교회는 하이델베르크성에서 내려다 보는 하이델베르크 경관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성령교회 (Heiliggeistkeriche)   블로그명 : 기유니의 일상 얘기

 

성령교회 (Heiliggeistkeriche) 첨탑

 

성령교회 (Heiliggeistkeriche) 내부

 

성령교회 오른쪽 스테인글라스

 

성령교회 왼쪽 스테인글라스    블로그명 : Walk In The Silvery Forest

 

일본인들은 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바로 이 스테인드 글라스가 히로시마 원폭후 그곳에서 나온 잔재를 가지고 만든, 히로시마 원폭사태를 위로하고 기억하고자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교회 (Heiliggeistkeriche) 제대          블로그 > 나는 나...!

 

성령교회의 제대는 십자가와 감실 등이 없어 왠지 밋밋했지만 한쪽에 마련된 기도처가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다. 기도를 적은 쪽지들이 많이 꽃혀있고 간구의 마음을 밝힐 초가 마련되어 있었다. 간절한 기도들이 적힌 수많은 쪽지가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성령교회 (Heiliggeistkeriche) 초와 촛대

 

 

 

 

하이델베르크 예수성당, 예수회 성당    블로그 > 나는 나...!

 

1700년대에 지어진 예수 성당은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큰 성령교회를 개신교에게 넘긴 후 하이델베르크 가톨릭의 중심 성당이 되었다

 

하이델베르크 예수성당 내부

 

하이델베르크 예수성당 제대

 

흰색과 황금색으로 깔끔하게 꾸며진 제단. 흰대리석의 제대와 독서대와 줄줄이 한 송이씩 놓인 해바라기 화병이 인테리어 잡지 사진 같은 느낌이다. 오래된 성당과 현대적인 내부의 조화가 아름답다

 

하이델베르크 예수성당 교황 요한바오로2세 그림

 

하이델베르크 예수성당 지하 경당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도시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약 75km 떨어진 대학도시이다.  하이델베르크는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독일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 역학을 담당해 왔다. 짙은 녹색의 숲을 배경으로 한 고풍스러운 옛 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도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이기도 하다.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오덴발트 구릉지대에서 운하화된 네카어 강이 빠져나와 라인 평야로 흘러드는 지점에 있다. 1196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 이 도시는 1720년까지 라인팔츠의 중심지로서 선제후인 팔츠 백작가의 거주지였다. 30년전쟁(1632) 때 폐허가 되었고, 1689, 1693년에는 프랑스인의 침략으로 거의 파괴되어 지금 남아 있는 주요건물들은 대부분 중세의 고딕 양식이 아닌 바로크 건축 양식(18세기 후반까지 유행함)으로 되어 있다. 이 도시는 1802년 바덴에 양도되었고, 20세기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1693년에 파괴되지 않고 남은 건물은 성령교회(1400~36)·마르슈탈(1590, 옛날의 왕실 마구간)·기사회관(1592)뿐이었다. 그밖에 중요한 건축물로는 알테 다리(1786~88, 재건 1945 이후)와 시청(1701~03), 예수회 교회(1712)가 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은 건물은 하이델베르크 성이다. 이 성은 1689, 1693년에 프랑스인들에게 파괴되었고 1764년에는 벼락을 맞았지만, 강에서 100m 높이에 웅장하게 서 있는 붉은 사암 건물은 아직도 시가지를 압도하고 있다. 또한 이 성은 13세기에 짓기 시작했지만 가장 유명한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고, 성의 익면(중심 건물에서 옆으로 날개처럼 뻗은 부분)에는 오토-하인리히 관과 프리드리히 관이 있다. 프리드리히 관의 지하실에는 용량이 18만 5,500ℓ나 되는 거대한 포도주 통인 하이델베르크 술통(1751)이 있다. 시내에서 쾨니히스슈툴 산(단층 지괴) 꼭대기까지 왕복 운행하는 케이블 철도를 이용하면 이 성에 닿을 수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대학교(루프레히트카를대학교)는 루페르트 1세가 세웠고, 1386년에 교황 우르바누스 6세의 인가를 받았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는 프라하대학교와 빈대학교의 뒤를 이어 독일어권에서는 가장 오래 된 대학으로 16세기에 종교개혁의 보루가 되었다. 30년전쟁(1618∼1648) 이후 쇠퇴하였다가 프랑스혁명 전쟁 이후 옛 명성을 회복하여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대학이 되었다. 이 대학교의 지질-고생물학 연구소에는 턱뼈 화석인 '하이델베르크인의 하악골'이 전시되어 있는데, 학자들은 이 화석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분류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대학도시이자 주거도시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공장의 수효가 많이 늘어났다. 기계·정밀기기·가죽·담배·나무 제품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가장 중요한 산업은 관광업이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하이델베르크 성을 찾아온다. 인구 141,509(2002)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Heidelberg Katechismus]


독일의 파르츠 선거후(選擧侯) 프리드리히(3세)가 루터파(派)가 우세하던 자기 영내에 칼뱅계의 개혁운동을 완성시키기 위한 4대 계획의 하나로 C.올레비아누스, Z.우르지누스 등의 교회인(敎會人), 하이델베르크 대학인 등의 그룹에게 명하여, 루터파와도 타협할 수 있도록 작성한 문답체의 교리서이다. 1563년 파르츠의 교회회의를 거쳐 공포된 이 교리문답은 <인간의 범죄와 참상><구원><감사>의 3부로 나누어,사도신경, 성례전, 십계명, 주기도문 등에 나타난 기본교리를 정리한 것으로서, 칼뱅주의이면서도 조화와 포용의 입장을 취하여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교리문답은  총론(1-2문), 1부(3-11문), 2부(12-85문), 3부(86-129문) 로 구성되어 있다.

제1문을 예로 보면

<제 1 문> 생사간에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 임시 위로, 거짓 위로

▣ 임시 위로   당장은 위로 같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것

▣ 거짓 위로   우선은 위로 같으나 단지 속임수에 불과한 것

☞ 생사간에  나의 유일한 위로는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나의 모든 죄를 위하여 자기의 보배로운 피로 온전히 대속하셨으며,

  ▣ 나를 사탄의 모든 힘으로부터 구속해주셨으며,

  ▣ 보호하십니다.

◎ 보호하심

-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내 머리에서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하시며,

- 모든 것이 내게 복이 되도록 하신다.

◎ 그 때문에

  ▣ 그는 나에게 성령으로 영생을 보증하시며,

  ▣ 그를 향하여 자원하는 마음과 준비된 마음으로 살도록 하십니다.

요점

 ▣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유일한 위로입니다.

 ▣ 이 위로를 가슴에 품고 우리의 남은 생애를 성도로 살아가십시다

 

코블렌츠 도이체스에크에 있는 이름모를 성당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성화사랑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