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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진

[스크랩] 산 로렌초 교회, 메디치가 예배당 (이탈리아 피렌체)

작성자김의천|작성시간06.10.05|조회수316 목록 댓글 0

산 로렌초교회와 메디치가 예배당(큰 돔)    카페 > 키아로스 / hidy72

 

미완성의 산 로렌초교회와 메디치가 예배당

 

출처-  블로그 > 21세기 보헤미안..

 

출처- 블로그 > Travels of critichs

 

산 로렌초교회   

 

산 로렌초 교회    블로그 > syk0510님의 블로그

 

산 로렌초교회

 

산 로렌초교회와 메디치가 에배당 (오른쪽 큰 돔)

 

메디치가 에배당 (큰 돔)

 

성당 내부    출처 블로그 > B.파스칼과 G.W.라이프니츠


돔 아래의 팔각형 공간이 카펠라 데이 프린치피인데 온갖 색깔의 대리석과 준보석들로 상감세공된 화려한 내부는 가히 압도적이다.  벽감마다 대공들의 무덤이 있고 그 위에는 메디치 문장이 있다. 공 모양 장식이 들어간 것이 메디치 문장의 특징인데 그 수는 일정치 않아서 여섯 개일 때도 있고 여덟개, 혹은 일곱이나 다섯일 때도 있다

 

내부

 

 

산로렌초 성당 왼쪽 복도에 있는 프레스코화.  성로렌초의 순교를 그린 이 벽화는 마니에리스모 화가인 브론치노가 1569년에 그린 것이다  

출처 블로그 >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유럽

 

구 제의실   출처 블로그 > himammo님의 블로그

 

메디치 가문을 위해 일한 미켈란젤로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 있는 곳은 피렌체의 구 제의실(Sacrestia Vecchia)이다. 이곳은 성 로렌초 교회를 미켈란젤로가 손수 증축한 곳이다. 그래서 이름도 신 제의실에 이어 구 제의실이라 붙였다. 많은 미술품들 가운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구 제의실(Old Sacrestia)이라 불리는 곳이다. 제의실은 사제가 미사 전후 옷을 갈아입거나 제의를 보관하는 방이다. 성 로렌초 교회의 구 제의실이 특별한 이유는 그곳이 바로 도나텔로와 브루넬레스키가 공동작업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장식을 위해 르네상스의 두 거장이 머리를 맞대고 일을 했다니 이 작은 방에서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도나텔로는 채색한 테라코타로 벽면을 장식했다. 테라코타란 흙을 구워서 만드는 기법이다. 이전까지 교회의 장식품은 대부분 돌로 만들어졌는데 도나텔로는 제작기법이 용이하고 제작 기간도 단축할 수 있는 테라코타로 조각을 만들었고 이를 대중화 했다. 중세에는 일반 시민들이 미술품을 소장하거나 장식하는 것이 거의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주택을 미술작품으로 장식하길 원했는데 이 때 값이 싸고 제작이 용이한 테라코타가 크게 인기가 있었다. 이 교회에는 또한 도나텔로가 만든 청동 설교대가 있다. 작가가 죽기 직전까지 매달렸던 것으로 노 대가의 예술 혼과 청동 부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피렌체 예술가들의 뒤에는 늘 이렇게 메디치가문이 있었다

 

로렌조 디 메디치의 무덤, 1526-33,  남성(황혼), 여성상(새벽), 미켈란젤로

 출처 블로그 > B.파스칼과 G.W.라이프니츠

 

쥴리아노의 석관위에는 밤과 낮이라고 불리우는 한쌍의 남녀좌상이 좌우에 기대어 누워, 그 위 감실속에 쥴리아노의 좌상이 고상한 품위를 지닌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맞은편에 위치한 로렌쵸의 석관위에는 '새벽'을 의미하는 여성상과 '황혼'을 의미하는 남성상이 불편한 자세로 기대어 있고 그위에 로렌초공의 좌상이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앉아있다. 쥴리아노 무덤의 밤과낮, 로렌쪼 무덤의 새벽과 황혼은 하루사시의 상징일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의 강 신과도 비슷한 것을 보면 저승의 네 개의 강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로렌초와 쥴리아노는 지켜보는 사람들과 더불어 죽음과 영원한 생명의 중간에서 영혼의 운명에 대해 생각있는 것이다

 

줄리아노 디 메디치의 무덤, 1526-33, 밤과 낮의 남,여성상, 미켈란젤로  

 

줄리아노, 미켈란젤로

 

 

산로렌초 성당의 메디치가 예배당에 있는 우의상 (밤을 상징- 남성상은 낮을 상징) 미켈란젤로가 만든 이 걸작은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돌널을 장식하고 있다

출처 블로그 >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유럽

 

로렌초 일 마니피코 – 소년시절(1449-1492)

 

위대한 로렌초 흉상플로렌스(피렌체) 군주

 

출처 블로그 > himammo님의 블로그


 

산 로렌초 교회와 메디치 가 예배당


산 로렌초 교회는 메디치가의 예배당과 나란히 서 있으며, 15세기의 순수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교회에 인접하여 도서관이 있는데, 이 건물은 1444년에 코시모 데 메디치의 저택으로 세운 것이다. 1만권이 넘는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고 귀중한 역사적 자료도 많다. 메디치가의 예배당은 산 로렌초 교회 뒤쪽에 입구가 있는데 역대 메디치가 사람들의 묘가 있으며, 묘역은 구묘와 신묘로 나뉘어 있다. 구묘지역은 대리석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신묘지역은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이다. 오른쪽의 묘는 로렌초 2세의 묘인데 로렌초 상, 서광을 상징하는 여성상, 그리고 황혼을 상징하는 남성상 등 3개의 입상이 있다. 또 왼쪽의 묘는 줄리아노의 묘인데 이곳에도 미켈란젤로가 만든 3개의 조각이 있다. 줄리아노의 상은 힘과 지구력을 누워있는 남성상은 '낮'의 행동을, 여성상은 '밤'의 잠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예배당은 메디치가 대대의 사원이며 시대와 양식이 다른 33개의 묘지 공간, 즉 브루넬레스키의 구 성물실, 미켈란젤로의 신 성물실, 17세기의 군주의 예배당으로 되었다. 구 성물실은 잡다한 장식이 없고 우아하고 맑고 깨끗한 분위기로 가득차 있으며 도나텔로작의 흉상이 있어서 한번 쯤은 볼만하다. 아름다움 정원에서 이어지는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계단을 오르면 2층에도 그가 설계했다는 라우렌치아노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의 열람실의 천장과 의자 등 모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이다. 교회 내부는 브루넬레스키가 착공하였다. 이곳에 줄리아노의 동상이 있는데 줄리아노가 메디치나 로렌초는 아니다. 메디치는 가문의 이름, 즉 姓 을 말한다. 쥴리아노가 이름이고 메디치는 성이다. 쥴리앙은 프랑스식 발음이며 실제는 쥴리아노 디 메디치, 로렌쪼 디 메디치이다. 그리고 쥴리아노와 그 앞의 로렌초는 엄연히 다른 인물이다. 쥴리아노는 로렌초의 후손이다. 쥴리아노의 동상은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는데 사진도 초상화도 없다. 쥴리아노는 젊은 나이에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했는데, 그의 무덤은 피렌체의 산 로렌초 교회 안의 메디치가 무덤에 있다. 메디치가의 무덤은 6개인데 구묘에 4기 신묘에 2기가 있다. 신묘에 쥴리아노 와 로렌초가 있다. 서로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쥴리아노는 인체 구조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구조로 깎여져 있다. 그 이유는, 신묘의 공간이 좁고, 또한 꽃을 관에 바치기 위해 조문객이 가까이 다가가서 위로 올려다 볼 때 생기는 원근감을 고려해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로렌초는 맞은편에 앉아서 쥴리아노를 응시하고 있고 쥴리아노는 그 시선을 부드럽게 회피하듯 좌측을 바라보고 있는 구조이다. 대리석은 카라라 대리석을 이용하였고 오후의 채광을 고려해 약간 안으로 들어가 있는 구조이며 대리석 관 위에 앉아있으며 두명의 여인이 보필하고 있는 모습이다. 쥴리아노는 너무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인물 자체에 대한 기록이나 역사적인 업적 같은 건 거의 없는 편이다. 단지, 그의 동상을 미켈란젤로가 너무나 잘 만들어서 알려진 것이다. 쥴리아노 라는 인물보다는, 그 인물을 조각한 미켈란제로의 위대함이 더 크게 보여진다

 

메디치 가와 피렌체

 

메디치 가의 국부 코지모 (1389-1464)


메디치가(家) 없는 피렌체란 생각하기 어렵다. 피렌체가 역사상 빛나는 주역이 되었던 시기는 1400년쯤부터 1600년쯤까지 약 2세기 동안이다. 이 시기는 또한 메디치 가문의 영광의 시기와도 일치한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초였으며 은행업을 했던 이 가문이 교황청의 재정후원을 담당하게 되면서 일약 유럽의 갑부로 도약하게 되었다. 메디치가 은행은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는 물론이려니와 멀리 네델란드에까지 지점이 있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 사람들 중에서 역사적 조명을 받은 첫 인물은 코시모 일 베키오이다. 그는 ‘피렌체의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당시 피렌체 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코시모는 무엇보다도 건축물 건립에 신경을 썼다. 성 로렌초 교회, 성 마르코 수도원, 메디치 궁(Palazzo Medici)이 대표작이다. 세 건물 모두 초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대표하며 오늘날에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성 로렌초 교회는 최초의 르네상스 식 교회다. 이 교회는 특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데 이유는 교회의 광장을 중심으로 피렌체에서 가장 큰 시장이 서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각종 가죽제품과 실크 제품을 여기서는 비교적 싼 값으로 살 수 있으며, 수다스러운 이탈리아 상인들과 흥정을 하는 재미를 맛볼 수도 있다. 성 로렌초 교회는 메디치가의 가족 교회이다. 한 가문의 교회라 하기엔 그 규모가 대단히 크지만 무엇보다도 소장 예술품의 질을 보면 메디치가 왜 예술 후원자의 대명사처럼 불리는지 그 이유를 말해준다 (출처 블로그 > himammo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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