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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비너스 니케, 3대 소장품을 만나다

작성자김의천|작성시간11.09.07|조회수1,606 목록 댓글 0

가로 53cm, 세로 77cm.

이 자그마한 그림이 오랜 시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온 신비로운 걸작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많은 것이 베일에 싸인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바라봅니다.

 


 

고전 걸작의 아름다움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밀로의 비너스에서 목격합니다.



드농관 회화작품들에서는 '나폴레옹의 대관식'처럼

대작들에 다양하게 숨어 있는 재미난 얘깃거리와 굴곡 진 민중의 역사를 만납니다.

 

 

지난주 제주도에 다녀오느라 유럽 여행기를 한참 쉬어서 조금 생소하지만

그래도 마저 유럽 포스팅을 해야겠지요. ^^;;

서 유럽여행 열흘째 날 6월6일 파리 개선문을 둘러본 뒤

세느강변 루브르궁의 동쪽 입구로 옵니다.

들어서기 앞서 이곳 공터에서 한국어 서비스 단말기를 받구요.

 

루브르 박물관은 12세기 필립 2세가 앵글로색슨족을 막기 위해 요새를 세웠던 곳에

14세기 후반 샤를 4세가 짓기 시작한 왕궁입니다.

그러다 16세기 프랑스의 문예부흥을 이끈 프랑수아 1세가 건축가,

조각가들을 동원해 화려하게 증개축을 하지요.

17세기 말 루이14세가 베르사유궁을 지어 옮겨가면서 왕실 미술품을 보관하는 공간이 됐구요

프랑스혁명 후 국민회의가 일반에 공개하면서 미술관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길을 건너 들어갑니다.

 

 



 

루브르박물관은 소장 미술품으로 따져 세계 최대 미술관으로 꼽힙니다.

고대 이집트 유물부터 근대 회화 걸작까지 38만점을 소장하고 있고

하루 평균 1만5천명이 관람하지요.

렘브란트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삼성전자 협찬으로 만든 한글 브로셔입니다.

사진 상태가 안 좋지만^^;;

오른쪽 동쪽에서 역 ㄷ 자 형 건물을 들어서면

나폴레옹 궁정으로 불리는 중앙 정원이 나옵니다.

 



 

거기에 루브르를 상징하는 현대적 구조물 유리 피라미드가 서 있지요.

1980년대 미테랑 대통령은 21세기를 대비해 루브르를 새로운 감각으로 레노베이션 하는

'그랑 루브르(La Grand Louvre-위대한 루브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이때 중국계 미국 건축가 I M 페이에게 의뢰해 지은 게 유리 피라미드입니다.

얼마 전 파리의 K팝 팬들이 한류스타들의 공연일을

하루 더 늘려달라고 시위 겸 댄스를 췄던 곳이지요.^^



 

유리 피라미드는 장식적 측면만 아니라 이처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나폴레옹홀로 내려가

거기서부터 방대한 전시관을 사방으로 드나드는 효울적이고 실용적인 진입공간 구실을 합니다.

 

 



 


 

우리가 들어온 반대편, 서쪽 카루젤광장 지하 아케이드의 루브르 입구엔

역시 I M 페이가 나폴레옹 궁정 피라미드의 3분의 1 크기로 만든

역 피라미드가 거꾸로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겐 영화 '다빈치 코드'로 잘 알려졌지요.

 

 


 

나폴레옹홀 동쪽에 있는 쉴리관 0층(우리 식 1층)의 고대 그리스관부터 봅니다.

멋진 고대 조각상들로 꾸민 계단 옆 공간이 마치 로마 궁전이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이군요.

 

 



 

전시관 입구 양쪽 벽에 부조상이 서 있습니다.

고대 작품이 아니라 전시실 입구 장식으로 새겨놓은 건데요

그 의미가 자못 깊습니다.

오른쪽엔 자기 눈을 찔러 장님이 되는 오이디푸스상이 있습니다.

길 가는 노인을 죽였다가 나중에 그 노인이 아버지였다는 걸 알고 울부짖지요.

 

 



 

 

왼쪽엔 오이디푸스가 어머니의 젖을 먹는 부조상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그리스신화에서 프로이트가 따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묘사하고 있는 겁니다.

예술이란 그렇게 인간의 모순된 운명과 욕망,갈등과 고통을 그리는 것이라는 뜻에서

두 부조작품을 만들어 놓은 거라고 하네요.

루브르다운 격조가 느껴지는 입구 장식입니다.

 

 



 

 

고대그리스관은 입구에 여신상들을 기둥으로 세워 전시실 성격을 표현했군요.

 



 

가이드가 맨 먼저 엎드려 잠이 든 여인상부터 설명해줍니다.(오른쪽에 손이 보이지요?^^)

조각품이 보는 이의 위치와 시각에 따라 얼마나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겁니다.

 

 


 

가이드는 나이 지긋한 미술학도(아니면 화가?)였는데 짧은 관람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면서 쉽고 재미나게 미술 감상 요령을 설명하더군요.
일단 이 작품의 가장 좋은 관람 각도는 여인상을 등쪽에서 바라보는 것이구요.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몸의 선이 덜 느껴지는 시선입니다.



 

그런데 몸 앞쪽으로 와서 보면 놀랍게도 이 여인은 양성을 지닌 반남반녀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_+

신들의 전령 헤르메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이

사랑하는 요정을 껴안고 한몸이 되게 해 달라고 빌어

양성의 헤르마프로디테(또는 헤르마프로디토스)가 됩니다.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를 합친 이 이름은 암수한몸을 뜻하는 단어가 됐고

의학용어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정말 조각상은 감상자가 어디서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흥을 받는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가이드는 조각상 받침대에 붙어 있는 설명 팻말 쪽에서 보는 게

가장 좋은 감상 시각이라고 알려줍니다.

과연 그렇더군요. 쉬운 듯하면서도 모르고 있던, 미술품 감상에 긴요한 팁이었습니다.

 

아래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다이애나) 상도 팻말 쪽에서 본 건데 모양이 제일 낫습니다.^^

가이드는 또 이 조각상에서 조각의 정형(스테레오타입)을 설명해줬습니다.

아르테미스라 하면 십중팔구 이렇게 화살통을 메고 암사슴을 거느린 모습이라는 겁니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만큼 조각상,

특히 누드로 많이 표현된 대상도 드물 겁니다.

비너스상이 주로 누드이다보니 몇 가지 정형이 생겨납니다.

아래 2세기에 로마 인근에서 각기 발견된 비너스상처럼

한 손으로는 가슴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은밀한 부분을 가린 자세가 그렇지요.

이걸 가리켜 '베누스 푸디카(정숙한 비너스)'라고 한답니다.^^

우리 가이드가 열심히 비너스상들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걸작 밀로의 비너스를 감상하기 위한 사전 강의(?)입니다.



 

이건 쭈그리고 앉은 비너스, 일명 '비엔(프랑스 중서부 도시)의 비너스'입니다.

역시 1~2세기 로마시대 작품이구요.

욕조에 앉아 있는 비너스의 모습을 형상화한 건데요.

머리와 팔이 없는 토르소이지만 뭔가 놀라고 있는 듯한 몸짓이 느껴지시는지요? ^^

 

 

등 뒤에 손 하나만 남은 비너스의 아들,

사랑의 신 큐피드가 엄마를 놀래키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것 역시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비너스상 중에 비슷한 작품이 적지 않다고 하네요.

만일에 이 작품을 앞에서만 보고 지나쳤다면 절반도 못 본 셈이 되는 거지요.^^



 

옷을 걸친 하반신만 남은 비너스 토르소도 있습니다.

상반신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리비아 트리폴리 인근 바다에서 발견된 1~2세기 비너스상을 보면

위 토르소에서 사라진 상체와 팔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두 팔이 각기 어떤 모습인지 잘 봐두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예비공부를 하고나서 드디어 밀로의 비너스를 봅니다.

전시관 입구엔 촬영금지라는 표시가 돼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사진을 찍고 아무도 제지를 안 하더군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체 전시품의 촬영이 허용돼 있다고 합니다.



 

미술관 전시품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이 비너스 앞에서 인증샷을 찍느라 야단이었습니다.

대개는 동양 관광객들이더군요. +_+



 

이것이 조각품 설명 팻말이 붙어 있는 쪽에서 본 비너스입니다.

기품있는 얼굴과 우아한 몸 곡선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각도라는 말이 맞군요.

에게해의 작은 섬 밀로스(밀로 또는 멜로스)에서 발견돼 밀로의 비너스로 불립니다.

이 기원전 1~2세기 헬레니즘 걸작에 대해선 설명을 생략하고

없어진 두 팔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해보지요.^^

왼팔은 앞서 봤던, 아래에 옷을 걸친 온전한 비너스상들처럼

옷이 있는 허리께로 내렸을 것 같구요.

오른팔은 정형대로라면 들어올려 머리쪽을 만지거나 가슴께를 살짝 가리고 있겠지만

학자, 미술가들은 남은 어깨부분 모양으로 미뤄 사과를 들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답니다.

앞에 가이드 설명을 듣고 보니 훨씬 재미났습니다.^^


 

고대 대리석상들은 이렇게 팔을 따로 만들어 조립식으로 끼워넣은 경우가 많았답니다.

근데 재미난 것은 밀로의 비너스상은 상반신과 하반신도 따로 만들어 조립했다는 사실입니다.


 

가까이 놓인 다른 비너스상의 하반신 토르소가 그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그리스전시실이 있는 쉴리관에서 나와 서쪽 드농관,

천장화가 아름다운 고대 로마 전시실로로 갑니다.



 

로마 신전이나 묘지에서 떼어온 듯한 부조 앞에 어린이들이 앉아

인솔 선생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이뻐서 한 컷 담았습니다.^^



 

높이가 46cm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대리석 흉상이지만 어떤 걸작보다 반가웠던 작품입니다.

학교 다닐 때 미술반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데생을 해봤을

석고상 아그리파의 오리지널 조각상이지요.

로마 장군 아그리파(기원전62년~기원전12년)는

훗날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를 악티움 해전에서 물리친 명장입니다.

로마 초대 황제이자 현제(賢帝)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자 부하, 사위였구요.^^



 

기원전 25년 아그리파가 서른일곱 살 때 조각상이라니 2천년도 넘은 작품입니다.

참 남자답게 생겼지요? ^^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깊게 파인 눈,

억센 턱 위 굳게 다문 입술에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얼굴 크기만 한 굵은 목이 그의 건장한 체구를 짐작케 합니다.

목과 머리 부분이 팔각 기둥처럼 입체적으로 묘사됐구요

사람의 심리까지 섬세하게 담은 솜씨와 정확한 비율에 많은 조각가들이 매료돼

19세기부터 석고로 복제된 이래 미술 학도라면 누구나 그려보는 최고 인기 모델이 됐지요.



 

이 2세기 로마 조각상은 로마 현제 하드리아누스 황제 부부를

군신 마르스와 미의 여신 비너스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당시 황족들을 신성화하기 위한 표현방법이라고 하네요.

역시 작품 설명 팻말 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드농관 0층(일층)에서 일층(이층)으로 올라가는 맨 위 층계참에

몸과 날개만 남은 여신상이 서 있습니다.

밀로의 비너스와 함께 그리스 헬레니즘 조각 걸작으로 꼽히는 사모트라케의 니케입니다.

거기에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더해 루브르 3대 소장품으로 꼽지요.

기원전 190년쯤 만든 높이 3.3m, 승리의 여신 니케(나이키)상입니다.

기원전 196년 그리스 도시국가 로도스가 시리아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신전에 바친 조각상으로

그리스 전함 뱃머리에 올라선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1863년 에게해 사모트라케섬에서 100여개로 조각난 것을 가져와 복원했다니 대단하지요.

발견 당시 왼쪽 날개가 없어서 당시 사람들이 오른쪽 날개를 본떠 만들어 붙였다고 하구요.

나중에 오른쪽 팔이 발견돼 옆 유리 상자 안에 전시돼 있습니다.

두 날개를 펴고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 듯하지만

실은 뱃머리에 막 내려앉은 모습이라고 합니다.

전시실 밖 대계단 위에 전시한 것은

절벽 근처에서 발견됐던 상황을 재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여신상의 포즈를 흉내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편한 자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대단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에 후세 조각가들은 경탄합니다.

옆 모습 날개에서 나이키가 영감을 얻어 브랜드 심볼을 도안했다고 하지요.

영화 '타이타닉'의 유명한 뱃머리 신도 니케상에서 착안했답니다.^^

 

 

드농관 1층(우리식 2층) 프랑스 신 고전주의 작품들이 전시된 75호실로 들어갑니다.



 

전시관 이름 드농(Denon)은 나폴레옹시대 루브르관장을 지냈던 고고학자이자 미술행정가였던

도미니크 비방 드농에서 따왔습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길에 따라나서 이집트 유물들을 발굴하고 들여와 관리했다고 하지요.

드농 덕분에 루브르 이집트 유물이 7천점이나 늘었다는데요

프랑스로서는 자랑스러운 이름일지 몰라도, 글쎄요. +_+



 

이 방에서 단연 인기있는 그림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입니다.

폭 9.8m, 높이 6.3m의 대작으로, 루브르에서 두번째로 큰 그림이랍니다.

1804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대관식 모습을 담았는데요,

인물들을 실제 크기로 그리고 현장감 있게 묘사해

대를 고증하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작품엔 재미나는 뒷얘기가 특히 많은데요.

우선 나폴레옹은 교황 피우스(비오) 7세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기로 돼 있었지만

교황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나폴레옹은 자기 스스로 관을 쓴 뒤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워주고 있습니다.

교황은 황당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구요.^^;;



 

다음으로,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아래 그림 3번)는

 며느리 조세핀을 싫어해 대관식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다비드는 궁정화가로서 소임과 충성(?)을 다해 레티치아가 그림 중앙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대관식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그려넣었습니다. ^^

다비드는 자기도 관객으로 묘사했구요,

14번이 다비드입니다.

 

 

다비드는 대관식 그림을 나중에 하나 더 그렸는데,

그것이 베르사유궁 나폴레옹관에 걸려 있는 아래 그림이지요.

루브르 그림과 이 그림은 딱 한 군데가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한번 찾아보세요.^^;;



바~~로 답이 나갑니다. ^^

루브르 그림에선 나폴레옹의 다섯 누이들이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달리



 

베르사유 그림에선 다섯 중에 딱 한 명이 분홍 옷을 입고 있습니다.

막내 여동생 폴린인데, 다비드가 폴린을 연모해 각별히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핑크빛"이라는 말이 이때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네요. ^^*

 


 

이어진 76호실에선 '욕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를 만납니다.

다비드의 충실한 제자 앵그르는 스승으로부터 데생 실력이 부족하다는 꾸중을 많이 들었는데요.

이 그림도 도무지 해부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신체 구조와 비율로 돼 있습니다.^^;;

허리는 지나치게 길고 그나휘어 있고, 팔도 길게 그려져 있으며

한쪽 다리 위에 올려진 다른 다리가 너무나 어색합니다.

발도 둘 다 왼쪽발처럼 그려놓았네요. +_+

그러나 앵그르는 "해부학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눈으로 봐서 아름다운 것이 바로 예술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이 작품에서 의도적이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랍니다.

거장이 그렇게 말하면 그런 줄 알아야겠지요? ^^;;



 

16세기 베네치아에서 유행했던 결혼식 그림입니다.

남자는 갑옷 차림으로 마르스처럼, 여자는 비너스처럼 꾸며놓고

주변엔 사랑의 화살을 다발째 메고 오는 큐피드와 꽃과

과일 바구니를 바치는 신들을 그려넣어 축하했습니다.

남자가 여자 가슴을 만지는 것은 이 여자는 내 아들을 낳아줄 내 여자라는 뜻이랍니다. +_+

하지만 그림 속에 다른 뜻을 암시적으로 담는 우의화(寓意畵)의 거장 티치아노는

이 그림 역시 우의화로 꾸몄습니다.

전체적으로 등장 인물들의 표정이 어둡고 여자가 수정구슬로 미래를 보는 모습을 담아

배우자 중 한 쪽이 먼저 죽을 거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답니다.



 

루브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드농관 일층(우리 식 이층)

이탈리아 회화관 7호 실 방 정면 커다란

어울리지 않게 작은 그림이 유리벽 뒤로 걸려 있습니다.

바로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보통 때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지만

대개 여름 휴가철엔 한시적으로 허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날도 모든 사람이 모나리자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지요.^^;;
이 신비한 그림을 차분히 감상할 겨를조차 없는 북새통입니다.



 

모나리자 맞은편 6호방 입구쪽 벽을 채운 파올로 베로네세(1528~1588)의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면적 67제곱m로 루브르에서 가장 큰 회화작품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의 첫번째 이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웅장한 고대 그리스 양식 건축물에 결혼식 하객들이 모여 있고

성대하게 차린 식탁 가운데에 예수가 앉고 옆에 성모 마리아가 앉아 있습니다.

화면 중앙에 있는 음악가들은 당시 베네치아의 유명 화가였던 베로네세 자신은 물론

당대 거장 티치아노와 틴토레토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머리 위로 하인들이 고기를 자르는 모습은 후에 올 예수의 고난을 상징한답니다.

 

 

베네치아 주데카섬 동쪽에 붙어 떠 있는 작은 섬 산 조르조 마조레의

아름다운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기억 나시나요?

1797년 천년을 이어온 베네치아 공화국 최후의 날,

나폴레옹 군대가 들이닥쳐 수도사들의 식당에 걸린

'가나의 혼인잔치'를 떼간 곳이지요.

나폴레옹이 각국에서 가져온 명화, 유물들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바티칸 박물관의 '벨베데레의 아폴로'처럼 대부분 원래 소유국으로 돌아갔다지만

이 그림은 여전히 루브르에 남아 있군요.

 

 

프랑스 낭만주의 대작들을 전시하는 77번 방으로 옵니다.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1819년 4.9m 7.2m)입니다.

1816년 아프리카 식민지 세네갈로 가던 전함 메두사호가 암초에 부딪쳐 침몰합니다.

장교들은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했지만 사병 150명은 난파한 배를 뜯어 엮은 뗏목들에 타고

표류하다 15명만 구조됩니다.

바다를 떠다니던 12일 동안 생존자들이 죽은 이의 인육을 먹고 버텼다는 충격적 사건이었지요.

제리코는 시체안치소에 가서 스케치를 하고 작업실에 신체 일부분을 가져와

그려보기도 하면서 준비한 끝에

죽은 사람의 피붓빛과 사체 경직을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뗏목 바닥에 널브러진 주검들과, 지나가는 배를 향해 천을 흔들어 구조를 요청하는 생존자까지

역동적 삼각형 구도를 사용해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극적 공간을 만들어내지요.

이렇듯 박진감 넘치는 표현이 생소했던 당시 비평가와 화가들은 "회화의 표류"라고 비아냥댔지만

지금은 낭만주의라는 새 시대를 연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822년 그리스가 독립전쟁을 벌였을 때 수많은 키오스섬 사람들이

식민통치오스만튀르크의 잔인한 진압에 학살되고 노예로 팔려갑니다.

어떤 유럽인보다 이 '인종 청소'에 분노한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가

스물여섯 살 때 그린 '키오스섬의 학살'입니다.

멀리 약탈 방화 처형이 벌어지는 앞에서 주민들이 처형을 기다리는 장면입니다.

피를 흘리며 자포자기한 사람들의 모습은 동정을 부르는 선을 넘어 선동적이기까지 합니다.

비극적 현실을 이렇듯 적나라하게 표현한 회화가 없던 시절이어서

앞 시대 고전주의자들은 '회화의 학살'이라고 비방하고 반발하지요.

하지만 후대에 "이 그림 이후 19세기 미술은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평가받은 낭만주의의 위대한 외침입니다.

 


나폴레옹이 쫓겨난 뒤 샤를 10세가 부르봉 왕정 복구를 시도하자

1830년 7월 시민군이 봉기해 사흘 만에 2천명의 피를 뿌리며

부르봉 왕조의 부활을 좌절시킨 것이 7월혁명입니다.

들라크루아가 7월혁명에서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민중의 위대한 열망을 격정적으로 담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또는 자유의 여신)'입니다.

맨앞에 서서 혁명군을 이끄는 여신은 고대 승리의 여신 니케(나이키)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한 '자유'입니다.

정치적 목적을 담은 최초의 근대화로 기록된 작품이지요.



 

이 그림은 7월혁명의 결과 '국민의 왕'으로 추대된 루이 필립이 사들였지만

반체제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25년 동안 공개하지 않았을 만큼

매우 강렬하고 선동적인 작품입니다.

들라크루아는 7월혁명 석 달 뒤 형 샤를 앙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조국의 승리를 위해 직접 싸우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조국을 위해 이 그림을 그리려 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실크햇을 쓰고 총을 거머쥔 채 자유의 여신을 따르는 신사가

들라크루아 자신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자유의 여신'의 이미지는

개선문 벽에 프랑수아 뤼드가 새긴 부조상

'1792년, 의용군의 출발'(일명 라 마르세예즈-아래 사진)을 거쳐

1886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년을 축하하면서 미국에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으로 이어집니다.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몇 작품만 골라 보고 나왔습니다. ^^;;

루브르에 견학 온 어린이들이 나폴레옹 궁정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기념품 행상이 우리 일행을 보더니

한국말로 "엽서 세 개(줄)에 1유로, 싸요 싸"를 외칩니다. ^^::

 

 

이렇게 초스피드 겉핥기로 루브르를 보고서는

절대 루브르를 봤다고 할 수 없지요. ^^;;

루브르가 어떤 곳인지 알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언젠가 다시 와 찬찬히 둘러볼 곳으로 또 남겨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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