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래고 소금기에 절었지만
수상택시를 타고서 베네치아 대운하를 따라가며 만나는 수백년 된 건물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풍경을 빚어냅니다.

1천년 전부터 동-서양 교역을 중개해 큰 돈을 벌었던 베네치아 상인들은
베네치아 상업의 중심이었던 리알토 지역에 다투어 화려한 대저택을 지어 부를 뽐냈습니다.

'산타루치아' 같은 이탈리아 가곡이 절로 나올 것 같은 풍경입니다.

대운하 중간쯤에서 만나는 리알토다리는 베네치아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명소입니다.
아름다운 르네상스양식 하얀 석조 다리 아래로 낭만과 사랑이 흐릅니다.

일행이 모두 수상택시 한 대에 타고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맑은 초여름 날 오후 운하를 누빕니다.

"베네치아 만세!!" 카메라 앞에서 만세를 외쳐봅니다.^^

길이 3.8km 대운하가 역 S자로 관통하는 베네치아는
두 마리 물고기가 서로 물고 물리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거미줄처럼 말초신경처럼 온 도시에 퍼져 있는 좁은 수로와 달리
넓은 곳은 폭이 70m에 이르는 대운하는 베네치아 운송의 중심축을 이룹니다.
산마르코광장 남쪽 선착장에서 대운하를 달린 뒤
버스 주차장에 내려 베네치아를 떠나는 코스입니다.

베네치아 남쪽 건너편으로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보이는 선착장에서 수상택시에 오릅니다.

도시를 받치고 있는 백향목 기둥들이 물위로 드러나보입니다.
베네치아에서 관광객이 타는 수상 교통수단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곤돌라와 수상버스 바포레토, 그리고 수상 택시(Taxi Aquel)입니다.

시동을 걸고 출발합니다.^^

구경을 잘하기 위해 배 앞쪽과 뒤쪽에 나와 서서 갑니다.
오른쪽으로 주데카섬의 아름다운 성당,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가 보입니다.
나중에 바티칸에 가보니 그곳 베드로대성당과 닮았던데,
실제로 베드로성당을 본떠 지었다는군요.
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몇 년 전 안성기씨가 저기에서 맥심 커피 광고를 찍었다고 합니다.

왼쪽 뒤로 두칼레궁전과 원기둥 위 사자상이 보입니다.

꽃으로 장식된 수변 식당이 멋집니다.

16세기 건축가 산소비노가 지은 코르네르 가문의 저택 '카 그란데(큰 집)',
가문의 이름을 따 '팔라초(궁) 코르네르'라고도 불립니다.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은 타이타닉호 침몰로 숨진 부호 벤저민 구겐하임의 딸이자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을 세운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입니다.
스물한살에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탁월한 안목과 재력으로
미술품을 모으고 예술가를 후원합니다.
그녀는 50살 때 뉴욕에서의 컬렉션 활동을 접고 베네치아로 옮겨와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의 18세기 저택을 사들여 30년을 살다 죽었습니다.
저택은 이제 그녀의 컬렉션을 소장한 구겐하임미술관의 베니스 분관이 돼 있습니다.
배가 빠르게 지나치는 바람에 따로 사진을 못 찍었는데
왼쪽에 보이는 하얀 단층 건물이 그곳입니다.
오른쪽은 마르코 폴로가 살던 옛집, 상당히 큰 저택이군요.

베네치아는 미술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1895년 이탈리아 국왕 부부의 결혼 25년 은혼식을 기념해 창설한 이래 2년마다
세계 최고의 종합 미술축전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지요.
최고 미술가 두 명과 가장 훌륭한 국가관에 주는 3개 대상도 영화제처럼
베네치아의 상징인 황금사자상입니다.
마침 우리가 간 6월 2일 이틀 뒤인 6월 4일부터 11월 27일까지
54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린다고 하더군요.
비엔날레에 맞춰 2년마다 '베니스 프로젝트'인
'글라스트레스(Glastress) 2011' 전시회가 열리는 카발리 프란체티궁입니다.

유리공예의 도시 베네치아답게 유리를 주제로 한 현대미술작품들을 모읍니다.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한국 작가 이혜림님의 작품 '딸기 정원'입니다. 정말 이쁘지요?

아치형 아카데미아다리를 지나면서 S자 대운하가 시작됩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주제인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이 플래카드로 내걸려 있군요.

담너머 물가에 드리운 장미의 정원도 보입니다.
옛날부터 왼쪽 저택에 손님들이 오면 파티를 벌이던 곳이랍니다.

베니스비엔날레에 국가관을 여는 나라만 89개국이나 됩니다.
대운하 끝부분 자르디니(공원) 안에 상설 국가관을 지어 확보하지 못한 나라들은 도시 곳곳 건물을 빌려 국가관을 열고 관람객을 맞습니다.
장미정원 옆으로 두번째 붉은 건물에 룩셈부르크관(파빌리온)이 들어서 있군요.

18세기 화가들의 작품과 베네치아 풍물을 모아놓은 카 레조니코 박물관도
비엔날레 행사에 동원됐습니다.
17세기 본 가문이 건축가 론게나에게 의뢰해 짓기 시작했으나 자금이 부족해 중단했다가
18세기 제노바 레조니코 가문이 사들여 완성시킨 팔라초(궁)인데요,
황금빛 샹들리에가 아름다운 무도장이 유명하답니다.
'The World Belongs to You(세상은 당신 것)'라는 테마로 작품을 전시하는 모양입니다.

건물 앞 물가에 해골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조각품이 서 있습니다.

넓다란 운하를 나아갑니다.
양쪽으로 12~18세기 대리석 저택과 궁전과 성당들, 아름다운 역사적 건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대운하에는 빠르고 큰 배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곤돌라는 50여 척만 운행 허가를 내줬답니다.

"몇 분 후 우리는 대운하로 들어섰다. 부드러운 달빛 속에 시와 낭만의 베네치아가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물가에는 장엄한 대리석 궁전들이 길게 줄지어 솟아 있었다.
곤돌라들은 날렵하게 여기저기 미끄러져 가다가 문득 예기치 않은 문과 골목들 속으로 사라졌다.
육중한 돌다리가 반짝이는 물결 위로 비스듬히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방에서 삶의 생동감이 넘쳐났다. 음악 소리가 물 위를 둥실 넘어 들려왔다.
베네치아는 완벽했다."
-마크 트웨인의 '바다 위 오솔길을 따라' 중에서.

베네치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다리, 리알토가 보입니다.
1300년 전 처음 이곳 리알토섬에 마을이 들어서 수상도시 베네치아가 시작된 이래
점점 사방으로 수상 시가지를 넓혀나갔다고 합니다.
리알토 다리 일대가 베네치아의 발원지이자 중심지인 셈이지요.
오른쪽 운하변에 노란 띠를 두른 버스처럼 보이는 것이 바포레토를 타고 내리는 선착장입니다.
대중 교통수단인 수상버스 바포레토는 노선별로 번호를 붙여 일정한 코스를 운행합니다.

리알토 다리는 19세기까지 대운하에 있던 유일한 다리였는데,
원래 나무다리를 1590년 지금의 돌다리로 세웠습니다.
당시 설계 공모에 미켈란젤로도 응모했지만
베네치아의 실력자를 알지 못해 낙선했다고 합니다.^^;;
다리 위에 지붕이 있는 회랑을 두 줄로 들여 가게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수상버스 바포레토입니다.

다리에서 운하를 내려다보는 관광객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다리 양쪽엔 가게와 카페, 음식점, 시장이 밀집한 쇼핑가가 있구요.
치즈가 듬뿍 든 스파게티를 먹고 속이 니글거린 차승원씨가 "순창아~~~"를 외치며 순창 고추장 광고를 찍었던 곳입니다.^^*

베네치아는 12월에 오면 시가지로 물이 넘치는 날이 많아
장화를 준비하거나 관광을 포기해야 한답니다.
심할 때는 1.5m 높이로 물이 들이친다고 하네요.
지반 침하와 해수면 상승이 겹쳐 2030년이면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거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와 있지요.
그래서 베네치아는 엄청난 돈을 들여 '모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바다의 방파제 사이로 난 수로를 더 좁히고
바닷물 높이에 따라 수문이 자동으로 여닫히게 하는 공사인데요,
워낙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 별 진척이 없다고 합니다.

최근엔 도시 밑에 바닷물을 주입해 도시 전체를 들어올리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답니다.
도시 주변 석호 바닥에 10년 동안 깊이 600~800m되는 우물 형태의 관 12개를 심고
이 관으로 바닷물을 주입하면 20~30cm쯤 도시가 올라간다네요.^^;;

함께 여행한 분들입니다.

50대에서 여든 어르신까지 연령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모두 부부 동반으로 온 젊잖은 분들이어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남편이 베네치아에서 찍은 것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카지노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귀족들이 갖고 있던 사교-오락용 별관을 뜻합니다.
'작은 집’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카자(casa)에
다시 '작다'는 뜻의 어미 이노(ino)가 붙은 이름입니다.
1638년 최초의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대중도박장
리도토 카지노가 들어선 곳이 바로 베네치아입니다.
카사노바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지요.
아래 건물은 베네치아의 15세기 르네상스 저택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벤드라민 칼레르지궁(Palazzo Vendramin Calergi)'인데
몇 년 전 '베네치아 카지노'가 들어섰습니다.
1638년 첫 카지노가 생긴 연도를 자기 것인 양 건물 전면 붉은 휘장에 내걸었네요.^^;;
입장료 10유로를 내면 그만큼의 칩으로 바꿔준다고 합니다.

왼쪽 붉은 담벽에 누군가의 얼굴과 기념비 같은 게 붙어 있습니다.
독일의 국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입니다.
카지노가 돼버린 벤드라민 궁은 1883년 바그너가 생을 마친 곳입니다.
1876년 바이로이트음악제가 실패하면서 실의에 빠졌던 바그너는
마지막 힘을 쏟아부어 그의 마지막 성제전극(聖祭典劇) '파르지팔'을 완성합니다.
'파르지팔'을 내걸고 1882년 제2회 바이로이트 음악제를 열고나서 탈진한 바그너는
그 해 겨울 베네치아 벤드라민궁에 방 여덟개를 빌려 머물며 요양을 했습니다.

바그너는 이듬해인 1883년 2월 13일 방 소파에 심장마비로 쓰러진 채 세상을 뜹니다.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경박하다고 공개적으로 경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평생을 바쳐 이탈리아를 순례하며
지중해의 태양을 맘껏 즐긴 이탈리아 숭배자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바그너가 각별히 사랑했던 곳이 베네치아입니다.
앞에 포스팅했듯 산마르코광장엔 그가 자주 갔던 플로리안 카페와 라베나 카페가 남아 있습니다.

4세기에 순교한 성 루차를 모신 산 제레미아 성당입니다. 단아하면서도 경건합니다.

대운하 후반부로 가면서 폭이 좁아집니다.

앞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아름다운 궁전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떤 건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_+

인공 섬 위에 녹지를 만든 자르디니(공원)가 나옵니다.
집과 건물이 빽빽한 베네치아 시가지와 달리 숲이 많고 툭 트인 공간입니다.
이 안에 한국을 비롯한 28개 국가가 각기 독특한 건물을 지어놓고
비엔날레 상설 국가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위상도 대단하지요?

리알토쪽 대운하 중심부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요?

건물들도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습니다.

운하폭이 더욱 좁아지면서 다양한 작은 다리들이 나타납니다.
숱한 영화들을 찍은 '영화골목'이 시작됩니다.

대운하는 몇 세기동안 요트 출입이 금지돼 있었지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한 2006년 작품 '007 카지노로얄'을 찍을 때
베니스시가 요트 출입을 처음으로 허가했다고 합니다.
숀 코너리의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1963년)과
로저 무어의 문레이커(Moonraker-1979년)에 이어 007 시리즈 중에
세번째로 베네치아 로케를 했다고 하지요.
이 다리들 아래로 쾌속정들이 추격신을 벌이는 신이 기억납니다.

'카지노 로얄'에선 대운하 옆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실제로 건물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대형 세트에서 찍고 컴퓨터그래픽으로 완성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할리우드영화가 세다고 해도 실제 베네치아의 건물을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요.^^;;

대운하에서 가장 낮은 다리를 지나면서 가이드가 노래를 한 곡 뽑습니다.
'산타 루치아'를 상당한 솜씨로 불러제낍니다.^^

열창이 끝나자 일행 중 한 분이 팁으로 10유로를 쥐어 주자 가이드 아저씨, 상당히 좋아합니다.^^

대운하를 관통해 툭 트인 앞바다로 나서자 수상 택시가 속도를 한껏 높여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공중에 붕붕 떴다가 수면 위로 떨어지는 게 상당히 스릴 있습니다.^^

노년의 소설가가 베니스에서 폴란드 미소년에게서 '영원의 미(美)'를 발견합니다.
그는 도취한 채 소년을 남몰래 바라보며 콜레라가 떠도는 베니스를 떠나지 않다가
결국 죽음을 맞습니다.
토마스 만의 소설,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처럼
베니스는 치명적 아름다움을 지닌 도시입니다.
조르주 상드와 알프레드 드 뮈세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였던 곳,
그 뮈세가 처참한 사랑의 패배를 안고 돌아간 곳,
바이런이 ‘내 푸른 환상의 섬’이라 불렀던 곳,
몽테뉴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싶었다"고 한 곳,
헨리 제임스가 호텔 창밖을 망원경으로 보며 ‘어느 여인의 초상’을 쓴 곳,
막 네 번째 결혼을 한 50대의 헤밍웨이가 열아홉살 뮤즈 아드리아나 이반치크를 만난 곳,
존 러스킨이 "도시 중의 낙원, 여기 있음에 감사한다"고 했던 곳,
베네치아는 사랑과 시와 영감(靈感)의 도시입니다.
베네치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올라 있습니다.
이 위대한 유산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세상 사람들을 오래도록 행복하게 해주길 빌었습니다.
베네치아는 한번 보고나면 영원히 그리워할 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