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태리

[피렌체의 기적] 천국의문, 두오모, 그리고 브루넬레스키의 돔

작성자김의천|작성시간11.08.05|조회수845 목록 댓글 0

피렌체 한복판 시뇨리아광장에서 관광객들이 장난스럽게 가면을 뒷머리에 쓰고 있습니다.

호러영화 비슷한 분위기가 납니다.^^;;

 


 

시뇨리아광장의 시청사 베키오궁 앞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서 있습니다.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천재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는
로맹 롤랑의 말을 실감합니다.



시뇨리아광장 한쪽 란치 회랑 앞에 다른 관광객들과 섞여 앉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유럽 어느 도시 광장 한 구석에 저렇게 앉아 사람들과 풍경을 물끄러미 보고 싶었기에

소원 풀었습니다.^^*

저 끝에선 한 쌍이 열심히 젤라토(아이스크림)를 먹고 있네요.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처럼 좀 우아하게 드시지 않고...^^;;



피렌체는 암흑 속에 갇혀 있던 중세 유럽 1000년의 역사를 깨뜨리고

예술과 인문학의 시대, 르네상스를 활짝 열어젖힌 천재들의 도시입니다.

그 찬란한 꽃, 피렌체 두오모(대성당)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 교회)입니다.



피렌체 두오모가 정말 위대한 이유는 성당 뒷편에 올라앉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벽돌 돔지붕에 있지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둥근 반구 지붕을 허공에 쌓아낸

브루넬레스키의 천재와 의지가 빛납니다.



서유럽여행 이레째 날, 6월 3일 오후

13~16세기 르네상스를 맨앞에서 이끈 문예부흥의 발원지,

꽃의 도시 피렌체의 중심부

역사지구를 돌아봅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라 있는 역사지구는 유적과 미술품으로 가득차 있어

'거리의 박물관'이라고 불리지요.

그 중심을 이루는 시뇨리아광장부터 들릅니다.

지도 중간 아래 보라색으로 표시된 베키오궁전 앞 광장입니다.

그 다음엔 북쪽으로 조금 걸어 올라가 산조반니세례당과 두오모를 구경합니다.

 

 

시뇨리아(signoria)는 원래 14~15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군주국가로 자리잡기 앞서

행정관이 강력한 종신 권력을 행사하며 세습까지 하던 참주정(僭主政) 체제를 말합니다.

하지만 피렌체에서는 공화정의 최고 행정기관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지요.

피렌체공국의 옛 정부 청사(시뇨리아) 베키오궁이 서 있는 시뇨리아 광장에

관광객을 실은 마차가 오갑니다.



베키오궁 맞은편 광장 한쪽엔 넓은 노천카페가 들어서 있습니다.

이 광장을 비롯해 사방 1km쯤 되는 역사지구가 온통 관광객들 차지입니다.



14세기에 세운 베키오궁은 지금도 피렌체 시청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700년 된 고딕 건물을 21세기에도 시청으로 쓴다는 게 놀랍습니다.

높이가 94m에 이르는 종탑은 시민들을 공공집회에 불러내는 데 쓰였다는군요.



시청사를 바라보고 광장 왼쪽에 '사빈 여인의 겁탈'로 이름난 16세기 조각가 지암볼로냐가 만든

 청동 기마상이 서 있습니다.

15세기 피렌체를 강력한 도시국가로 올려놓고 빛나는 문화예술을 키워낸

피렌체 대공 코지모 데 메디치 상입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은행을 유럽 전역으로 늘리고

교황청 금고 역할까지 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코지모를 시작으로 메디치가문은 18세기까지 피렌체를 이끕니다.

그가 죽자 피렌체 시민들은 '파테르 파트리아이(Pater Patriae)' , 국부(國父)의 칭호를 바칩니다.

피렌체의 번영과 예술부흥은 코지모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 때 절정에 오릅니다.

'일 마니피코(Il Magnifco-위대한 자)'로 불린 로렌초는 열세살 소년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며 후원합니다.

메디치가가 있었기에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 보티첼리,

첼리니 같은 쟁쟁한 거장들이 피렌체에서 활동하며

르네상스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지요.



베키아궁 왼쪽 앞에 물의 요정들에 둘러싸인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의 분수가 있습니다.

1575년 토스카나 해군의 승전을 기념해 조각가 아마나티가 만들었지만

 피렌체 시민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는군요.^^;;

르네상스시대 피렌체 시민들의 안목이 그만큼 높았다는 얘기지요.



넵튠이 머리에 쓰고 있는 건 면류관이 아니라 비둘기 배설물에

조각상이 지저분해지는 걸 막기 위해

아예 비둘기들이 못 앉게 하는 전기장치라고 하네요.

앞 포스팅의 피렌체 주택들이 달아놓은 비둘기 X침이 진화된 전기X침이라고 할까요.^^;;



도미니크회 수도사 사보나롤라는 15세기 말 메디치가를 쫓아내고 피렌체의 지도자가 돼

과격한 교회개혁을 주도하다

시민들에게 끌어내려져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당합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립니다만 시민들은 메디치가를 다시 모셔들인 뒤

이 시민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베키오궁 앞에 두 조각상을 세웁니다.

왼쪽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과 오른쪽 반디넬리의 '헤라클레스와 코카스' 입니다.

그러나 조각상이 비바람에 부식되자 1873년 오리지널 작품은 아카데미아미술관으로 옮기고

복제품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스물여섯살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의뢰받자

50여년 전 조각가 두초가 예언자 상을 만들려고 두오모(대성당)에 준비해뒀던

거대한 대리석을 꺼냅니다.

그는 결이 좋지 않아 조각하기 까다로운 이 대리석을 3년 동안 쪼아 다비드상을 빚어냅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작업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돌 안에 갇혀있는 위대한 형태를 미리 보아내고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걸 둘러싸고 있는 돌을 망치와 끌로 조금씩 뜯어냈던 것이지요.

 


 

스무살 차이가 나는 르네상스의 두 거장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만남이 이뤄진 곳이

바로 이 베키오궁입니다.

1504년 피렌체 정부는 두 사람에게 청사 베키오궁의 대회의실에

각기 프레스코벽화를 그리게 합니다.

다빈치는 '앙기아리의 전투'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미켈란젤로는 '카시나의 전투'를 맡았지만

두 사람 다 포기하고 맙니다.

두 거장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마도 신이 두 천재를 나란히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듯합니다.

헤라클레스상 아래 땡볕에서 삼남매(?)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군요.^^



베키오궁 오른쪽에 있는 란치 회랑엔 첼리니의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를 비롯한

르네상스 걸작 조각들의 복제품이 늘어서 있습니다.

거리의 악사가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있군요.

베키아궁과 이 회랑 건물 사이 골목길로 들어서면 이탈리아 최고 미술관으로 꼽히는

우피치미술관이 있습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미켈란젤로 '성가족', 다빈치 '성수태고지', 우르비노 '비너스'....

이름만 들어도 알 르네상스 걸작들과 함께 고대 그리스-로마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다는데

예약도 해야 하고 기다리는 줄도 길어서 역시 건너뛰어야 했습니다. +_+



란치 회랑 앞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여 사진을 찍자

곁에 앉아 있던 소녀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입니다.^^*

동구 우크라이나쪽 같은데 애교있고 이쁩니다.^^

 


 

유럽의 옛 도시들은 대개 성당과 시청 앞 광장이 도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지만

피렌체는 시청 광장과 대성당이 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500m도 채 안 돼보이더군요.



두오모 가는 길가에 인간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분장한 모습이나 손에 들고 있는 책으로 보아 다빈치 흉내를 내는 것 같습니다.

1유로 동전 하나를 다빈치 발치 깡통에 넣어주고 사진을 찍었더니 조그만 쪽지를 하나 건넵니다.

'중국에 종교의 자유를 허하라'는 내용이었는데 그렇게 의식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진 않던데...+_+



이 길의 끝에 광장이라고 하기엔 좁은 두오모(대성당) 광장이 있습니다.

두오모 맞은편, 아래 지도 왼쪽의 산조반니(성 요한) 세례당부터 살펴봅니다.

 

 

초기 교회들은 세례의식을 중요하게 여겨 세례당을 독립된 건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거대한 두오모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그 역사가 두오모보다 훨씬 전인

 로마시대로 거슬러 갑니다.

로마시대 신전이 있던 자리에 4세기쯤 작은 교회가 들어서 있었고

1060년부터 1150년까지 지은 것이 지금의 세례당입니다.

햇빛이 워낙 강해서 시커멓게 보입니다만 하얀 대리석에

아름다운 초록빛 대리석으로 띠 장식을 했습니다.



8각 세례당 건물에 난 세 개의 문 중에 기베르티라는 금 세공 장인이 금박을 입혀 만든

 북쪽과 동쪽 청동문이 유명합니다.

특히 동문은 나중에 미켈란젤로가 보고서

"문이 너무 아름다워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둘 만하다"고 감탄하면서

'천국의 문'으로 불리게 됩니다.

훗날 로댕이 이 문을 보고 '지옥문'을 구상하게 되지요.



천국의 문 위에는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그 옆에서 세례를 증언하는

천사의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진품은 따로 보관하고 있고 이건 복제품이라고 합니다.

로댕은 '지옥문'에서 이 조각상 대신 그림자의 악령 셋을 올려놓았습니다.

문 위 아치에 앉아 턱을 괴고서 우울하게 지옥을 내려다보는 단테의 모습도

 '지옥문'의 군상에 포함됐는데

로댕이 나중에 독립된 조각상으로 따로 발표해 유명해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린 단테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1401년 피렌체시는 세례당의 청동문을 만들 조각가를 공모해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를 선정합니다.

심사위원들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만들라고 권했지만 브루넬레스키가 사양하고

물러나면서 기베르티에게 맡겨집니다.

기베르티는 금박으로 예수의 생애를 표현한 24개의 부조를 붙인 북문을 23년에 걸쳐 완성합니다.

작품에 탄복한 피렌체시는 동문 제작도 기베르티에 맡깁니다.

기베르티가 다시 22년에 걸쳐 구약의 10개 이야기를 금박 부조로 완성한 것이

오늘날엔 세례당보다 더 유명한 '천국의 문'이지요.

동문, 천국의 문에 새긴 구약 중에 이삭, 에서, 야곱에 관한 제5화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 형 에서를 총애해 축복을 내리려 하자

허약한 야곱을 아끼던 어머니 리브는 에서를 사냥에 내보내고 야곱을 형처럼 꾸며

축복을 받게 합니다.

오른쪽 중간에 나무 아래에서 사냥하는 에서가 보이고

이삭의 축복을 받는 야곱과 오른쪽으로 어머니 리브가 묘사돼 있습니다.



제6화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열한번째 요셉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형들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요셉을 시기해 이집트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나중에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식량을 구하러 이집트에 온 형제들이 재상이 된 요셉을 만나 화해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습니다.



제7화에는 왼쪽 아래 모세가 지팡이로 갈라 건넌 홍해,

오른쪽 위 시내산에서 받는 십계명,

왼쪽 중간엔 광야에서 살았던 천막이 묘사돼 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는 제8화입니다.

하나님이 명한 대로 엿새 동안 성을 한번씩 둘러보고 이레에 일곱번 돌며

나팔을 불자 성이 무너졌다는 얘기입니다.

기베르티는 천재 예술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청동문 두 개를 완성하는 데 45년 세월을 바친 진정한 예술가였습니다.

평생을 기울인 작품 열정, 그 느림의 미학이 어느 예술가 못지 않은 존경과 찬탄을 모으고 있지요.


 

러시아에서 온 듯한 만삭의 관광객이 세례당 옆에 서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댑니다.

몸이 거북할 텐데도 남편에게 카메라를 넘기지 않고 몰두하는

그 예술혼이 기베르티 못지 않습니다.^^;;

 


 

세례당과 마주보는 피렌체 두오모(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쳐다봅니다.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으로, 꽃의 도시 피렌체답게 두오모에도

꽃(fiore)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바티칸 베드로대성당, 밀라노 두오모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세번째로 큰 교회입니다.

세계적으로도 독일 쾰른대성당에 이어 네번째라고 하는군요.

2001년 일본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두 옛 연인이 10년 뒤 만나기로 약속한 곳이지요.



피렌체는 13세기 직물상인과 귀금속상인들이 조합을 만들만큼 번영했고

중세 유럽의 상공업-금융업 중심지였습니다.

피렌체시는 그런 위상에 걸맞은 대성당을 짓기로 하고

1296년 캄비오의 설계로 시작해 1421년 완공했습니다.

캄비오의 뒤를 이어받은 조토 역시 완공을 보진 못했지만

높이 85m에 이르는 오른쪽 고딕 종탑은 완성하고 죽었습니다.

조토의 종탑은 흰색, 연두색, 분홍색 토스카나 대리석으로 장식해

마치 색색깔 칠을 한듯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탑으로 꼽히지요.

단테가 "유리상자에 넣어두고 감상하고 싶다"고 극찬했답니다.

 


 

종탑 일층을 빙둘러가며 조각자이자 건축가 안드레아 피사노의 부조작품이 새겨져 있습니다.

피사노는 기베르티에 앞서 산조반니세례당의 첫번째 문인 남문에

세례 요한 이야기를 새긴 사람입니다.

 

 

성당의 파사드(정면 구조)는 고딕양식이지만

성당 뒷편 브루넬레스키의 돔까지 포함해 175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유롭고 화려한 르네상스적 조형미가 가미됐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양식이 혼합된 드문 건축물이 됐

그래서인지 풍기는 분위기가 유럽이나 이탈리아의 다른 성당들과는 또 다릅니다.

정문 위 둥근 아치 팀파늄에 새겨진 모자이크는 '수태 고지'를 표현하고 있답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회임을 알리는 장면이지요.



높다랗고 육중한 청동 정문에도 역동적인 부조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노래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살아 움직일 듯합니다.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천사들의 얼굴이 소녀스럽습니다.^^



정문 왼쪽으로는 성모 마리아 상이 서 있습니다.



성모상 뒤쪽 모자이크뿐 아니라 성당 벽체 전체에 걸쳐

잘게 쪼갠 대리석을 색색이 이어붙여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해놓았습니다.





떡 주무르듯 빚어냈다는 표현이 딱 맞을만큼 대리석 부조들이 섬세니다.



성당과 종탑 사이로 돔이 보입니다.

피렌체 두오모의 꽃, 브루넬레스키의 돔입니다.



종탑을 돌아 성당 오른쪽 뒤로 가면 웅장한 돔(이탈리아어로 쿠폴라)이 시선을 압도합니다.

돔은 인간의 뇌를 닮아 르네상스 정신의 이상(理想)으로 여겼기에

피렌체 시민들이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었지만 건축 기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성당 착공 124년 뒤인 1420년에야 설계 현상공모를 거쳐 착공했습니다.

공모에선 세례당 청동문 공모에서 기베르티와 공동으로 선정됐다가

양보하고 물러났던 브루넬레스키가 당선됐고

기베르티는 2위에 올라 브루넬레스키의 조수로 돔 공사를 보조하게 됩니다.

 

 

지상 높이 91m(돔 위 장식부분 랜턴까지 합치면 115m), 지름 42m의 거대한 돔에는

벽돌이 4백만개 넘게 들어가 무게가 3만7천톤에 이릅니다.

이미 2세기에 로마가 지은 판테온 돔은 나무 구조물로 받친 위에 올라섰지만

브루넬레스키는 지지구조 없이 이중 구조(이 부분은 제 재주로는 쉽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리^^;;)로 돔을 쌓는 기적을 일궈냅니다.



공사 초기 조수로 임명된 기베르티는 브루넬레스키의 구상이 말도 안 된다고 비난합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기베르티에게 공사를 넘겨준 뒤 로마로 떠납니다.

기베르티가 돔 건설이 자기 능력을 벗어난다는 것을 금세 깨닫고 시인하자

브루넬레스키는 돌아와 공사를 확실하게 장악하게 되지요.

누가 진정한 천재인지 결판이 난 셈입니다.



돔에 오르려면 463개 계단을 거쳐야 해서 피렌체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는데

꼭대기에 올라가 피렌체를 내려다보면 그 수고가 금세 잊힌다고 하더군요.^^



르네상스 천재들의 특징 중에 가장 큰 것이 '만능인'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건축과 회화에서 원근법을 처음으로 발견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건축가, 조각가, 엔지니어, 발명가이기도 해서 무거운 자재들을

돔 공사장까지 들어올리는 엘리면 베이터 비슷한 기계도 발명했답니다.

요즘 개념의 발명특허도 처음 냈다고 하지요.

 

그가 만든 돔은 철근, 콘크리트 같은 20세기 건축자재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이라는 영광을 누립니다.

이 르네상스의 선구자도 메디치가의 첫 피렌체대공 코지모가 후원했다고 하니

메디치가의 역할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실감합니다.

브루넬레스키도, 다빈치도, 미켈란젤로도

르네상스를 열고 꽃 피운 천재들은 하나같이 장르를 넘나든 만능인이었습니다.

한뼘도 안 되는 '전문분야'에서 콩알만도 못한 지식을 뽐내며

단 한 치도 자기 이익은 양보 못하는 이 시대 사이비 지식인들은

세상과 시대를 진보시키기는커녕

시대의 발목을 잡고 나뒹구는 부끄러움을 스스로 아는지요. +_+

짧게 둘러봤지만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의 향기는 진하게 남았습니다.

중세 암흑을 뚫고나와 새로운 시대를 연 새로운 생각,

그 자유의지와 예술혼이 내뿜는 향기였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