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서 아빠의 카메라를 쳐다보는 남매.
진실의 입 앞에선 누구나 즐겁습니다. ^^

로마의 인증샷 명소 중에서도 가장 인기 좋은 곳이 진실의 입일 듯합니다.^^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볼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캠코더로 찍고 찍히는 연인들.
두 사람 다 상당한 미남 미녀네요.^^
근데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표정이 너무 심각한 것 아닌가요? 스파크가 튑니다. ^^;;
캠코더를 유심히 보니 '삼성'입니다. 삼성캠코더 깜찍하네요.^^

유럽여행 여드레째 날, 6월 4일 오전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를 둘러본 뒤
로마시청이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을 거쳐 진실의 입으로 갑니다.

10분 남짓 시가지 뒷골목을 걸어 남쪽 테베라 강변 쪽으로 가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작은 식당의 꽃나무로 장식한 출입문이 눈길을 끕니다.

진실의 입 가는 길 외진 곳에 썰렁하게 서 있는 개선문.
로마에는 개선문이 여러 개 있는데 이건 별로 크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은지
무슨 개선문인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_+

큰 찻길 건너편 건물 오른쪽 옆으로 로마네스크식 종탑이 솟아 있는 곳이
진실의 입이 있는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입니다.
근데 이 하얀 건물 어디서 본 듯하지 않나요?
이 건물을 기억해내는 분은 영화 '로마의 휴일'의 왕팬이자
눈썰미가 대단한 분으로 인정하겠습니다.^^::

1953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원한 로맨틱코미디
'로마의 휴일' 속으로 잠시 들어가보실까요.^^
미국 기자 조 브래들리, 그레고리 펙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고
펙과 작별하고 나온 앤 공주, 오드리 헵번은
트레비분수 근처 길을 지나다 이발소(barbiere)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삼단 같은 머리를 싹둑 자른 오드리 헵번.
아고, 얼마나 상큼하고 귀엽고 이쁜지....^^
영화가 개봉된 195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도 저 숏컷머리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나서 스쿠터를 타고 시가지를 누비는 두 사람.
처음엔 그레고리 펙이 몰고 뒤에 헵번이 탔다가 펙이 잠깐 한눈 파는 사이
헵번이 스쿠터를 몰고가자 펙이 뒷자리에 올라타게 됩니다.
스쿠터 처음 몰아본 헵번은 길가 노점과 가게 물건, 거리 화가의 이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고 
결국 경찰서로 끌려오는데요,
이 경찰서가 저 위 코스메딘교회 옆 하얀 건물이구요, 지금도 경찰서로 쓰이고 있습니다.^^
스쿠터 소동 끝에 검댕과 얼룩이 묻은 헵번 얼굴 좀 보세요.^^;;
그레고리 펙은 헵번 몰래 기자 신분증을 경찰에게 살짝 보여주면서
"둘이 결혼하러 가던 길"이라고 둘러대고
손해배상을 해달라며 아우성치던 상인들은 "축하한다" "아들 많이 낳아라"며
헵번에게 키스를 해주고 웃으며 떠납니다.^^

두 사람을 따라다니며 몰래 사진을 찍던 사진기자 어빙, 이디 알버트가
펙에게 어떻게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느냐고 핀잔을 주자
헵번은 공주의 신분을 속인 게 마음에 걸렸는지 "나도 거짓말을 했다"고 하고
그레고리 펙 역시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거짓말을 가리는 바로 옆 진실의 입으로 가게 되는 거지요.^^
'Bocca(입) della(of) Verita(진실)'는 코스메딘교회의 정문 왼쪽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회랑에 있습니다.
긴 줄이 바깥까지 늘어서 있습니다.

쇠창살로 돼 있어서 바깥에서 안이 들여다보이구요.
벽에 붙어 있는 지름 1.5m짜리 대리석 판은 기원전 4세기에 만든 것으로
강(江)의 신(神) 플루비오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로마시대 이곳 근처에 있던 가축시장의 하수도 맨홀뚜껑으로 쓰이다 중세 때부터
죄인을 심문하는 데 사용됐다고 합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려도 좋다"고 서약한 뒤에 조각상의 입에 손을 넣게 했다고 해서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설사 진실을 털어놓는다 해도 취조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에서 무조건 손을 잘랐다는 얘기도 전해옵니다. +_+

회랑 안으로 들어와서도 줄이 꽤 깁니다.
모두 30분쯤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이번 유럽여행에서 가장 오래 줄을 서서 기다린 곳이지요.^^;;

드디어 줄이 끝나는 곳에 갖가지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맨위에서부터 보면 '한 사람 앞에 사진 한 장씩만 찍으세요',
그 아래엔 교회로 바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가리키는 화살표, 그리고
이 교회가 그리스 멜키타 카톨릭의 바실리카(최고 대성당)라고 돼 있고
(이에 대한 설명은 뒤에서^^;;)
(꼭 안 내도 되지만) 50센트(800원쯤) 헌금을 권한다는 얘기,
그 아래 동전 넣는 헌금통엔 우리말로도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교회 수입이 엄청날 것 같습니다.^^::

다시 '로마의 휴일'로 돌아가볼까요.
그레고리 펙이 헵번에게 진실의 입의 유래를 설명하자
손을 넣어보려던 헵번(아래 사진),
그러나 계속 거짓말을 했던 게 겁이 나서 손을 넣지 못하고 뒤로 숨깁니다.
(그 아래 오른쪽 사진)
그러자 이번엔 그레고리 펙이 손을 넣어봅니다.(왼쪽 사진)

펙이 비명을 지르며 억지로 빼낸 손이 없어졌습니다.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는 헵번.
이 대목은 헵번에게 얘기하지 않고 찍은 장면이어서
헵번이 놀라는 모습이 연기가 아니었다고 하네요.^^

펙이 손을 펴보이자 헵번은 몰라몰라 하며 펙의 가슴을 파고들며 주먹으로 때립니다. ^^*

이 '진실의 입' 장면은 3년 전 미국 CNN이 뽑은
'가장 로맨틱한 영화장면 톱10'에서 3위에 올랐습니다.
1위는 '카사블랑카'에서 트렌치코트 깃을 세운 험프리 보가트가
카사블랑카공항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을 떠나보내는 장면,
2위는 '시티라이프'에서 방랑자 찰리 채플린이 꽃 파는 눈먼 소녀의 손에 동전을 얹어주며
수줍어하는 장면이랍니다.^^
관광객들이 예외없이 한 컷을 남기며 즐거워합니다.
사실 진실의 입은 로마의 엄청난 유적들에 비하면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만
거기 깃든 '스토리 텔링'의 위력, 영화의 힘이 엄청난 것이지요.
우리 관광지들에도 저렇게 '스토리'가 깃들어야 할 텐데....

진실의 입 바로 오른쪽 벽에 난 작은 여닫이문을 밀고 들어가면 교회인데요.
여러 나라 말로 쓰인 안내문 중에
'미세요' 대신 '푸시'라고 쓰여 있어 푸시시 웃음이 납니다.^^

아담하고 소박한 교회입니다.
고대 로마 시장터에 6세기에 들어섰고 종루는 나중에 12세기 때 지었다고 합니다.
8세기 비잔틴 교회가 예수와 마리아의 성상 제작을 금지하며 동방정교회로 정립되자
박해를 피해 그리스의 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로마로 들어오게 됐고
당시 하드리아누스 교황이 이 성당을 그리스 인들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이후 이 교회는 그리스계(그레코 멜키타/Greco Melkita) 성당이 됐구요.
이 작은 교회를 바티칸 베드로대성당이나 베네치아 산마르코대성당 같은
최고 대성당 '바실리카'라고 부르는 것도
이탈리아에 있는 그리스계 교회 중에 가장 큰 본산이어서인 듯합니다.
예배당 왼쪽 회랑의 모습입니다.
모자이크로 장식한 교회 바닥이 인상적이군요.

회랑 왼쪽 벽에 뭔가를 모셔놓았는데요.
그림 아래 금빛 사각 상자에 해골이 담겨 있습니다. +_+
발렌타인데이의 유래가 된 성 발렌타인의 유골이라네요.

그 옆 벽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십자고상이 걸려 있습니다.

교회에서 나와 우리 관광버스를 기다립니다.
이곳에도 멋진 '우산 소나무'들이 서 있고
가운데 조금 오른쪽으로 코린트식 기둥들이 빙 둘러선 원형 건물은
기원전 2세기 말에 지은 헤라클레스 빅토르(정복자) 신전입니다.
지금 로마에 남아 있는 대리석 건물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맨 오른쪽엔 기원전 75년 항구의 신 포르투누스를 모신 신전이 보입니다.
대표적인 이오니아양식 건물이랍니다.

로마에도 이층 버스가 다니는군요.
오늘처럼 해가 인정사정없이 내리쬐는 날엔 지붕도 없는 이층이 괴로울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습니다. ^^;;

길을 건너는데 앞서 가는 한 가족의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어린 두 아들이 엄청나게 큰 백팩을 메고 가는데
부모(?)는 빈손입니다. +_+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 것도 좋지만 좀 심한 것 아닌지요.^^;;

다음 행선지는 트레비분수입니다.
걸어가도 될 거리이지만 우리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가 작은 사자머리 분수에서 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수조까지 모두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인데 세월이 꽤 돼보이는군요.
나뒹구는 돌 하나에도 천년, 이천년 역사가 깃든 로마답습니다.

'로마의 휴일'은 명절 때마다 TV에서 수도 없이 보면서도 물리지 않던 명화입니다.
이번에 로마로 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 인솔자가 틀어줬는데
그렇게 많이 본 영화인데도 새록새록 미소와 웃음이 솟더군요.
그 현장에 가서 아줌씨도 오드리 헵번 흉내를 내보는 즐거움이 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