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지도 ( 블로그 > 그냥 이웃)
페르세폴리스의 유적 (출처- 블로그 > 너에게로 가는 길)
유적지 전경
유적지 전경
유적지 전경
유적지 전경
유적지 전경
유적지 전경
보물창고
대기단의 높이를 맞추어서 다리우스 1세 궁전은 지상에서 18m인 곳에 있어서 밑의 마르브· 다슈 평야(사진의 왼쪽)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궁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측벽에는 왕의 향연에 바치는 동물, 술이 담긴 가죽부대, 식기와 잔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부조되어 있다. 소를 덮치는 사자의 주제는 계단측벽의 삼각형에 사용되었다. 그 우측이 크세르크세스 1세의 비문이다
다리우스왕 개인궁전
다리우스왕 개인궁전
다리우스왕 개인궁전
다리우스왕 개인궁전
페르세폴리스의 주두 부분
이란 테헤란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페르세폴리스 기둥.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어로 '타흐트 잠쉬드'로서 '타흐트'는 '왕좌'라는 뜻이고, '잠쉬드'는 페르시아의 한 전설적 영웅의 이름이다. 이 고도는 아케메네스조 다리우스 대왕이 기원전 520년경에 건설하였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로스 동정군에게 소진될 때까지 약 200년간 아케메네스조의 수도였다가 그후 약 2천여 년간 폐허로 방치되었다. - '씰크로드학' 中에서
기원전 520~500년경. 페르시아 건축은 기원전 6세기 중반에 있었던 이오니아 문명전파 때 그리스 건축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기원전 542년부터 이오니아의 왕들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실에 공물을 바쳤다. 이때 페르시아 왕실의 요청으로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함께 파견되어 터키 지방의 발달한 문명을 전파했다. 건축은 이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페르시아를 대표하는 아케메네스 궁(페르세폴리스)은 이런 내용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당시 근동지역의 강자였던 페르시아의 왕실은 이 궁궐을 짓기 위해 인근 여러 나라에서 최고의 것들을 모았다. 목재는 레바논에서 바빌론과 이오니아 지방을 거쳐 이곳까지 운반되었다. 석재는 페르시아 북쪽의 엘람지역에 있는 아피타루스에서 조달되었다. 건축 설계와 시공 및 장식을 이오니아인들이 맡았다
돌로 만든 목우상
돌로 만든 목우상
왕궁 초입을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
이란과 이란 에어의 상징 'HOMA'

이란과 이란 에어의 상징 'HOMA'
아파다나. 알현실
아파다나. 알현실
북쪽 계단에 새겨진 부조들.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교사절들이 왕을 알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고.. 그리고 계속되는 공물의 행렬.. 세계 최초 통일대제국 페르시아의 위용을 보여준다
부조, 조공 사신들
부조, 조공 사신들
부조, 조공사신들
다리우스왕에게 신년 인사온 사신들 http://tong.nate.com/travel
페르세폴리스 사자와 목우 투쟁도
조공행렬
페르세폴리스 만국의 문과 라마수
페르세폴리스궁전을 들어가기 위해 처음 거쳐야 하는 문이다. 알렉산더왕에 의해 파괴되었다
페르세폴리스 크세르크세스 게이트의 라마수
라마수 (출처- 블로그 > 너에게로 가는 길)
이란 테헤란에 있는 국립고고학 박물관에서 찍은 라마수, 라마수는 얼굴은 사람. 새의 날개. 소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인두유익우체상이다. 석회석. 고대에 이 왕궁을 찾아온 사람들은 라마수(Lamasu)를 보면, 그것이 처음엔 서 있다가 다음에는 마치 걸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라마수는 왕을 지키는 호위병처럼 눈을 부릅뜨고는 방문객을 지켜보다가 뒤를 쫓아다닐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페르세폴리스의 조로아스터교 유적
페르세폴리스의 조로아스터교 유적
페르세폴리스의 조로아스터교 유적
페르세폴리스의 조로아스터교 유적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국교로 유명하다. 조로아스터교가 페리시아의 국교였음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는데 사진 위쪽에 보면 커다란 새가 양쪽으로 날개를 쫙 펴고 있는데 그 새가 조로아스터교를 상징한다
페르세폴리스에서 6km 밖에있는 낙쉐 로스탐
Naqsh-e Rostam에는 총 7개의 이야기가 있는 내용을 벽면에 새기고 무덤이 있으며 무덤 앞쪽에는 조로아스터교 상징물이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국교로 유명하다. 조로아스터교가 페리시아의 국교였음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는데 사진 위쪽에 보면 커다란 새가 양쪽으로 날개를 쫙 펴고 있는데 그 새가 조로아스터교를 상징한다. 이 사진은 Naqsh-e Rostam에 있는 조각 7개의 정 중앙에 위치한 조각이다. 로스탐은 고대 페르시아의 영웅을 이야기 하는데 이 그림들은 고대 페르시아 왕인 Shapur의 전쟁승리를 기록하였다
낙쉐 로스탐
낙쉐 로스탐
낙쉐 로스탐
낙쉐 로스탐
낙쉐 로스탐
낙쉐 로스탐
낙쉐 로스탐
낙쉐 로스탐
페르세폴리스
이란 남서부 팔스지방에 있는 아케메네스왕조의 수도였다.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의 도시'를 의미한다. 페르시아인들은 '파르사(Parsa)'라고 부른다. 파르사는 파르스에서 유래했는데, 파르스 지방 또는 파르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페르시아 제국은 파르스에서 시작되어, 파르사는 제국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수도로 사용되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왕궁으로, 다리우스 1세가 기원전 518년에 건설을 시작하였다. 그 위업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에 이어졌고, 손자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시대(기원전 460년경)에 거의 완성되었다. 인공의 테라스 위에 조영된 왕궁은 세 방향을 벽돌 성벽이 둘러싸고, 북쪽과 동쪽은 구릉을 등지고 있다. 테라스 전체는 약 460×280m이고 높이는 12m였다고 한다. 북서쪽의 거대한 테라스를 계단처럼 오르면 ‘크세르크세스의 문(만국의 문)’이 나온다. 이 문이 유일한 성문이며, 날개와 사람의 머리를 지닌 황소의 상이 입구의 양쪽을 지키고 있다. 문을 들어가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장대한 ‘아파타나’에 압도되고, 조금 직진하면 미완성의 문을 지나 화려한 ‘백주의 방’으로 빨려 들게 된다. 아파타나의 안쪽에는 중앙 궁전을 비롯하여 역대의 왕들이 살던 궁전이나 하렘(왕의 거실)이 줄지어 서 있으며, 왕궁의 가장 안쪽에는 엄중하게 경호된 보물 창고가 놓여 있다. 페르세폴리스에서는 신년제 등의 의식이 거행되었다고 하며, 동시대의 행정 수도인 수사와는 다른 역할이 있었다. 페르세폴리스에서는 인공의 테라스, 햇볕에 말린 벽돌을 쌓은 벽, 두 마리의 황소가 서로 등을 맞댄 기둥 머리 등 아시리아의 전통적인 궁전 건축 양식에, 포르티코와 플루트(세로 홈)가 나 있는 기둥 등 그리스의 새로운 건축 양식이 훌륭하게 융합하여 아케메네스 특유의 양식이 표현되어 있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8∼7세기 무렵(신아시리아 시대)에 고대 오리엔트를 지배하였던 제국이다. 또한 그리스풍의 육감적인 부조가 호화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의 페르시아 정복 때 소실되었다(BC 330). 또한 기록보존소에서 출토한 점토판(粘土板) 문서 약 2만 장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경제가 밝혀졌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페르세폴리스
이란에서 가장 자랑할만한 유적을 꼽는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페르세 폴리스를 꼽을 수 밖에 없디. 물론 무슬림들은 호메이니 옹의 묘 혹은 12시야파 이맘 중 유일하게 이란에서 죽은 이맘 레자의 묘 등을 꼽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무슬림들의 견해이고 역사적 가치로 볼 때나 혹은 그 규모를 볼 때나 혹은 그 섬세한 예술적 가치로 볼 때도 페르세폴리스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페르세폴리스는 서양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서 페르샤의 도시라는 뜻인데 이란 사람들은 타크테 잠쉿(Takhte Jamshid)이라고 부른다. 이는 "잠쉿의 보좌" 라는 뜻인데 잠쉿의 이란의 전설적인 왕의 이름이다. 이 페르세 폴리스는 건축학적으로도 가히 세계적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로마를 방문하면 로마의 석조 건물들과 조각품들을 보고 놀라는데 로마의 석조건물은 바로 페르시아에서 건너간 것이고, 연대적으로 볼 때도 페르샤의 석조건물들은 BC 5세기의 것이며 로마의 것은 예수님 이후의 것들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신빙성이 있는 설이라고 본다. 실제로 페르세폴리스에 가보면 그 엄청난 규모에 먼저 놀라게 되는데 이집트의 룩소에 있는 카르낙신전을 가 본 사람은 규모가 엄청나게 큰 고대 석조 건물에 놀라게 되는데 페르세 폴리스 역시 그를 능가하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카르낙 신전은 규모는 큰데 비해 섬세함은 미약하다. 그러나 페르세 폴리스는 엄청난 규모와 함께 섬세함 면에서도 조각품들의 곱슬머리 머리털까지 표현할 정도로 섬세하다. 고대 페르시아(성경에는 바사제국)는 성경에 고레스 왕에서부터 등장을 하여 다리오,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왕까지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바로 이 왕들이 실제로 통치했던 흔적들이 바로 페르세폴리스이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는 3개의 궁전이 있었다. 겨울에는 날씨가 따뜻한 아와즈(Ahwaz)에 있는 수산성에서 다스리고, 여름에는 지대가 놓아 여름에도 항상 날씨가 서늘한 하마단(Hamasan, 성경에는 에스라 6:2절에 악메다 궁으로 소개되고 있다.)에서 다스렸다. 그리고 페르세 폴리스는 때로는 여름을 지내는 궁으로 쓰기도 했지만 주로 신년 행사용 궁전으로 쓰였다고 한다. 해마다 신년이 시작되면 여기서 그 유명한 노루즈(Noruz) 축제가 벌어지는데 이 때 전 세계의 피정복 국가 사절단들이 선물을 운반해 와서 페르시아의 대왕께 바치는 것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왕의 보좌가 있는 아파다나(APADANA)로 오르는 계단의 경사면에는 각국의사절단들의 모습이 부조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그 사절단들의 복장과 특산물들이 그 당시 최고로 고급 돌이었던 흑석에 생생하게 표현되었는데 앞에 세워놓은 안내문에 보면 그들이 누구며 어디서 온 사절단들이며 무슨 예물을 가져왔는지가 새겨져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리비아와 에티오피아부터 메소포타미아를 걸쳐서 인도까지 정말 엄청난 넓은 지역의 수십개 국가를 다스렸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이다. 안타깝게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주전 330년경에 와서 이 세계적 건축물에 불을 질러 지금은 그 웅장했던 원형을 볼 수는 없지만 아직도 13개 정도의 기둘이 우뚝 솟아 있어서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 궁전은 다리오 왕이 건축을 시작해서 역대 페르시아의 왕들이 계속 지어 나갔으며 완공까지는 15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 왕궁을 보고야 이 엄청난 건축사업을 시작했던 고대 페르시아의 대왕 다리오의 위대성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아케메네스(Achaemenians)의 수도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6세기중반경에서 7세기까지 이란 즉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B.C. 549?-331) 왕조, 파르티아 제국(B.C. 2C-A.D.224), 사산 왕조(224-642)의 국가종교였다. 약 100여년간 전성기에 있던 이란지역왕조의 국가종교였기 때문에, 당시 가장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종교 중 하나였다. 이란의 페르시아족은 인도인들과 같이 아리아인의 한 갈래로서, 매우 종교적인 민족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현재 이란은 신정일치의 정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이 이슬람왕국에 의해 패망하자, 이슬람에 의해 박해받게 된다. 그러나 조로아스터신자들의 신앙은 매우 강한 것이었다. 그들은 지속적인 탄압가운데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비록 소수신앙공동체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이후 팔라비 왕조가 박해를 완화시킬 때까지 약 1000여년간 그들의 신앙을 지켜나간다. 이란사람들은 이슬람에 대해 이교도라는 의미에서 조로아스터신자들을 '자르두슈티(Zardushti)' 또는 '가브르(gabr)'라고 불렀고, 신자들 자신은 스스로를 '마즈다의 숭배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섬기는 주신인 아후라마즈다를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10세기경 이들 신자 중 일부는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찾아 고향을 떠나 인도북서부로 이동했다. 인도에 가면 '파르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바로 조로아스터신자들이다. 그들은 936년경에 인도에 정착, 인도현지의 힌두교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했다. 1297년과 1465년 사이 이슬람의 침입으로 공포에 떨긴 했지만, 17세기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게 되면서, 상업도시인 뭄바이로 이동해 19세기경에는 엄청난 부와 힘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했다. 현재 인도의 파르시공동체는 약 10만명에 이르러, 세계 최대의 조로아스터교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또한 영국과 교역하게되면서 파르시들은 외국의 여러나라로 이주할 기회를 갖게 되어, 이들 지역에 조로아스터교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래서 현재 마즈다의 숭배자들은 인도와 이란 뿐 아니라 파키스탄, 영국, 미국, 캐나다 등지에 퍼져있다. 다만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이교도와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