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의 고향 파라타에서 레툰(Letoon)은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레툰도 파타라처럼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리키아의 고대도시였다. 레툰은 아폴로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인 레토의 영광을 위해 세워진 도시이다. 레토에 얽힌 이야기는 두 가지가 있다. 레토는 신중의 신 제우스의 애인이다. 그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제우스의 부인 헤라의 방해로 애를 낳을 장소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델로스섬의 도움으로 애를 낳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리키아의 파라타에서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을 낳았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아이를 씻을 곳을 찾아 지금의 에쉔강으로 왔다. 여기서 레토를 방해하는 목동들을 만나게 되자 그녀는 목동들을 개구리로 변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도 레툰의 신전터에서 돌아다니는 개구리들이 바로 그 목동들이라고 한다. 파타라의 아폴론과 레툰의 레토, 이들은 아나톨리아의 토속신들이다
아폴로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이다. 여신 아르테미스와는 쌍둥이다. 레토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질투로 출산할 장소를 찾지 못하다가 델로스섬으로 도망쳐 이곳에서 아폴론을 낳았다. 그리스계(系)의 이름이 아닌 것으로 보아 동방의 소(小)아시아나 북방민족으로부터 이입(移入)된 신이며, 본래는 목자(牧者)의 수호신으로 생각되나 나중에는 그리스적 성격과 문명의 대표적 신이 되어 국가에 있어 중요한 도덕이나 법률을 주관하여, 특히 살인죄를 벌하고 그 더러움을 씻어 주는 힘을 갖고 있다. 예언의 신이기도 하여 델포이를 중심으로 그의 신전(神殿)이 세워져, 무녀(巫女)를 통해 신탁(神託)을 받는 일이 성행하였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라고도 하나 이것은 비교적 나중의 일이다. 사랑의 신화도 많아, 다프네는 아폴론의 구애(求愛)를 피하여 월계수가 되었고, 카산드라는 그의 사랑을 받아 예언의 힘을 얻었으며, 하천신(河川神) 페네이오스의 손녀 귀레네를 사랑하여 아리스타이오스를 낳았고, 테사리아의 왕녀 코로니스와의 사이에서는 아스클레피오스를 얻었으며, 미소년 히아킨토스도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의 고고학 연구소에 의해 1873년부터 행해진 델로스 섬 발굴 조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징적인 유적을 발굴했는데, 이것은 그리스 전역에서 발굴된 것 중 규모가 가장 큰 고고 유적이었다. 특히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건설된 아폴론 신전은 힘이 넘치는 도리아식 신전 건축 뮤물이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의 아르테미스 신전터나 주택터, 극장터 등도 발견되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된 발굴 조사로도 델로스 섬에서 탄생한 과거의 거대한 유산의 전체 규모를 세상에 알릴 수는 없었다. 델로스 섬이 번영하던 시대, 성지로서 수많은 참배객을 모았던 아폴론 신역은 현재 벽과 도리아식 원주만이 유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당시 항구가 있던 섬 북서쪽에서 아폴론 신역으로 통하는 성스러운 길 오른쪽에는 아폴론이 태어난 ‘성스러운 호수’로 가는 길을 따라 기원전 7세기 말에 낙소스인이 바친 사자석상이 10개가 넘게 세워져 있었지만, 지금은 5개만 남아 있다. 낙소스 섬에서 나는 대리석으로 만든 이 상은 받침대와 사자상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운찬 모습과 강직한 표정이 마치 ‘성스러운 호수’의 파수꾼과 같다. ‘성스러운 호수’는 1924년 당시 이 지방에 유행하던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메워졌다.
에게 해의 작은 섬 델로스가 역사적, 문화적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 신화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의 애인 레토가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과 아폴론의 여동생이자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낳은 곳이 바로 이 섬으로, 덕분에 아폴론 섬으로 숭배받게 되었다고 한다. 델로스 섬에서 사람이 살기 사작한 것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이며, 청동기 시대에는 소아시아 방면의 카리아인이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 델로스 섬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기원전 1000년경 대륙에서 키클라데스 제도를 찾아온 이오니아인들이 이 섬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그들은 델로스 섬에 아폴론 신앙을 확립하고 해마다 이 신에게 바치는 장엄한 제의를 거행했다. ‘델리아’라고 불리는 이 제의 때 봉납하려는 이오니아인이 모여들게 되자, 델로스 섬은 서서히 에게 해 중앙부의 다른 섬들에 사는 이오니아계 그리스인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신전은 주전 6세기경에 세워진 그리스의 신전중에서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신전으로 전통적인 도리스식 기둥이며 기둥이 하나로 된 통기둥이다. 건축 당시에는 38개의 기둥이 있었으나 현재는 7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다

고린도 아폴론 신전 , 뒤에 아클로폴리스(아프로디테 신전)이 보인다.
델피 중심은 아폴로 신전
38개의 도리스식 돌기둥으로 된 지금의 신전은 기원전 366~329년에 세번째로 지은 것이다, 제우스가 레토 여신 사이에서 쌍둥이 남매를 낳았는데,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이다.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레토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퓌톤'이라는 뱀을 보내 괴롭혔었는데, '아폴론'이 이 '퓌톤'을 죽이고, '델포이'에 자신의 신전을 세웁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신탁은 잘 맞기로 유명합니다. 아폴론신전은 폐허가 된 채 주춧돌과 몇 개의 계단, 기둥만 남아 있지만 그 터로 보아 거대한 신전의 규모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신전 앞에는 히오스인이 페르시아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봉납한 높이 3m의 커다란 제단이 있다. 신탁을 받을 때 이계단 위에 희생물을 바쳤다고 한다. 신전은 길이가 60m, 폭이 23m 크기로 38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떠받치고 있었는데, 현재는 부분적으로 복원된 6개의 기둥만 남아있다. 현재 남아 있는 신전의 유적은 BC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탁소는 신전 뒤의 작은 방에 있었다고 한다(현재 옴파로스는 델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옴파로스 옆에는 아폴론의 좌대가 있고 퓨티아(신탁을 전하는 여사제)는 삼각대에 앉아 신탁을 받고 예언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신전의 벽면에는 "너 자신을 알라. 무엇이든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는 격언이 적혀 있는데 원래 피티코스가 레스보스 주민들에게 한 말이었다. 후에 이 말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폴로는 48개의 칼럼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이 사원의 가장신성한 부분은 그 성상 안치소로 1미터높이의 플래폼으로 만들어져있다. 성상안치소 그 자체는 30개의 칼럼들에 의하여 둘러싸여있고 그칼럼에는 신과 각종 의례에 대한 모습을 담은 조각상들이새겨 있다.그 제단은 성상 안치소입구 밖에서 있었습니다. 첫번째 신전은 BC 6 세기경에 지워졌으며 화재 이후에 BC 530 - 10년에 석조 신전으로 대체되었다. 이 신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인 높게 쌓아올린 재단을 첼라라고 하고 신전에서는 화살을 쏘는 모습으로 서 있는 아폴로 신과 사냥의 여신 디아나를 모신다. 예전에는 머큐리 신에게도 제사를 올렸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도시의 의원들에의해 이름붙혀진 이오니아 칼럼은 성상 안치소에옆에 있었다.또한 해시계는 이 기둥의 꼭대기에 있었다. 2개의 청동제 조각상들 이사원에 있다이것은 아폴로와 그의 자매를 조각한것으로 옆의 사진들에서볼 수 있다.
BC 420년 무렵 고대도시 피갈리아 시민들이 도시가 페스트의 위험에서 벗어나자, 이를 감사히 여기는 뜻에서 수호신 아폴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신전이다. 그 뒤 지진이 발생하여 무너졌으나 1765년 발견되어 거의 완전하게 복원되었다. 신전은 밧사이산의 해발 1,600m 되는 곳에 푸른빛을 띤 방해석으로 세웠으며, 방위는 다른 신전들의 정면이 보통 동쪽을 향한 것과 달리 북쪽을 향했다. 기단은 3단으로 되어 있고 정면 16m, 옆면 40m의 직사각형 평면이다. 천장은 없어졌고 높이 6m의 원기둥이 정면에 6개, 옆면에 15개 늘어서 있는데, 20세기 초에 복원된 것들을 합하여 모두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B.C
5세기 중엽 아카디안 산 정상에 세운 태양과 의술의 신 아폴론를 모신 사원으로 고전양식, 도리아 양식, 코린트 양식을 배합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폴론 에피클리오스 신전은 거의 남북 방향으로 지어졌는데, 건물의 길이가 일반적인 신전보다 기둥 2개를 더 세울 수 있을 만큼 길며,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돌기둥이 있다. 프리즈 장식이 내진 안쪽에만 있는 점을 비롯해 일반적인 신전 건축과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을
지녔다. 현재 신전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고대 히에라폴리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종교의식은 Apollo신에 대한 숭배였다.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곳은 A.D.3세기경에 건축되어졌으며, 신전의 몇몇 기념물들은 헬레니즘 시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5×25 m 규모의 이 건물은 남서쪽을 향하고 있다
밀레토스의 외항 디디마의 아폴론 신전 (블로그 > 가을 사람)
이 신전은 기원전 300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나 완성된 적은 없었다. 고대 세계의 신전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다
셀죽에서 남쪽으로 약 60 km 내려가서 서쪽으로 7 km 가면 디딤이다. 이 도시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에서 정착하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 디딤의 아폴로신전이나 지성소에 의해서 증명된다. 그리스인들이 이곳을 통치하고 왕래했지만 디딤이란 말은 그리스어에서 온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어에서 온 것이라고 본다. 디딤은 이 자체가 하나의 도시가 아니었고 밀레도의 영토에 속했으며 성직자들과 신전을 지키고 관리하는 종들이 살았던 곳 이었다. 디딤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8세기 말이었다. B.C 494년에 이오니아가 Lade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에게 패했을 때 디딤의 아폴로신상은 끌려갔고 신전의 재물도 약탈당했다. 그 때 아폴로신전의 성직자들은 비겁하여 재산을 지키려 하지않고 정복자에게 아무 저항없이 모든 걸 바치고 난 후 밀레도인들의 분노를 살 것을 두려워하여 페르시아군에게 사정하여 자기들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 페르시아왕은 그들을 데려가 살게 했는데 약 1세기 반 후에 페르시아군을 무찌르고 진군한 알렉산더 대왕이 밀레도인들로부터 성직자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대노하여 그들이 살았던 마을을 철저히 파괴했으며 아폴로신상을 디딤으로 복원시켰다. 페르시아인들은 아폴로신전을 파괴한 후 약 150년간 방치하였다가 알렉산더대왕이 이오니아에 도착했을 때 디딤에 새로운 신전을 짓도록 명령하여, 그후 약 500년동안 건축이 계속되었으나 결국은 완성되지 못하였다.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건축이 중단되고, 신전의 중요성은 퇴색되어 갔으며,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A.D 380년) 왕은 신전에 대한 참배를 일체 금했다. 1,500년대의 지진에 의해 파괴된 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신전의 모습이다. 이오니아 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모두 기둥이 105개가 있었던 웅장한 신전이었다. 신전을 돌아보면서 그 규모에 다시한번 놀랐다. 곳곳에 지붕에 조각되어있던 메두사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기둥중에 몇몇은 다른것과 다르게 톱니바퀴가 아니라 평범한 둥근 기둥이었는데 그것이 세계최초의 노동자들의 태업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시라쿠사(수라구사) 아폴론신전 , 오르티자 구역 블로그 > geo의 작은 방
이탈리아 시라쿠사(수라구사) 아폴론신전 , 오르티자 구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