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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뎅 (Auguste Rodin ,1840-1917 )의 조각작품세계[1]

작성자김의천|작성시간09.05.19|조회수267 목록 댓글 0

Auguste Rodin
(1840-1917)

프랑스와 오귀스트 르네 로댕(Fransois Auguste Rene Rodin:1840-1917)은

 
1840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나 1917년 죽기까지 전 생애를 조각에만 쏟아 넣은 의지(意志)와 정열(情熱)의 예술가였다.
 
1864년, 살롱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코가 깨진 사나이>이후 <청동시대>, <세례 요한>, <칼레의 시민>, <영원한 봄>,
 
<키스>, <생각하는 사람> 등과 위대한 걸작인 <지옥의 문(로댕의 사후에 완성됨)> 등 무수한 걸작을 남겼으며,  

토르소 작품은 <빅토르 위고>, <르그로>, <발자크> 등의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는데,
 
예리한 사실적 기법을 구사하여 인간의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 안에서
 
치솟아 오르는 생명의 약동과 아울러 육체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영혼(靈魂)의 움직임까지
 
극명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은 단순한 리얼리티(Reality)의 차원을 초월,
 
근대 조각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인상聆?印象主義)의 새 경지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The Bronze Age
1875-76
(Three views)
Plaster
 
 
 
 
 
로뎅의 정식 이름은 Rene-Franois-Auguste Rodin으로. 1840년 11월 12일 파리에서 출생하였으며 근대조각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로뎅은 하급관리의 아들로 14세 때 국립공예실기학교에 입학, 조각가로서의 기초를 닦았다. 1857년부터 3년간 국립미술전문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했지만 낙방하였다. 1861년에는 아버지가 퇴직하였기 때문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갖가지 부업을 하면서 야간 제작에 몰두하였다. 1862년 누이의 사망에 충격받고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에마르 신부의 설득으로 작업장에 돌아왔다. 1864년 살롱에 처음으로 출품한 《코가 망그러진 사나이》는 그 생생한 사실적인 묘사가 ?사위원들에??거부감을 주어 낙선했다.

 
 
 
 
 
The Bronze Age
1875-76
(Three views)
Plaster
 
 
 
 
로뎅은 이 시기부터 생활을 위한 건축 장식업에 종사하다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가한 후 제대하여 벨기에의 브뤼셀로 떠났다. 이곳에서 약 7년간 건축장식 직공으로 일하면서 유럽 각지와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 특히 1875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로댕의 그 후 예술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878년 파리에 돌아와 벨기에 체재 중 제작한 《청동시대(靑銅時代)》를 출품하였다. 이것은 그 작품이 지닌 사실적 박진감으로 인하여, 살아 있는 모델에서 직접 석고형을 뜬 것이 아니냐는 근거없는 비난을 받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청동시대》는 로댕예술의 출발점이며, 그의 사실적 표현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걸작이었다.

 
 
 
 
 
 
 
 
Striding Man
1877-1900
Plaster
34 inches high
 
 
 
 
 
1880년에 이 작품은 재인식되어 살롱에서 3등상을 받고 국가에서 매입하였다. 이와 동시에 로댕은 미술국 차관 체르케로부터 장식미술관의 현관 장식품 창작을 의뢰받았다. 그의 조각은 이때부터 《청동시대》의 사실적 표현에 만족하지 않고 내면적인 깊이가 가미된 생명력 넘치는 표현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장식미술관을 위한 대작의 모티프를 단테의 《신곡(神曲)》 〈지옥편〉에서 얻은 영감에 두고 거작 《지옥의 문》(1880∼1900)의 제작에 착수하였다.
 
 
 
 
 
 
 
 
Striding Man
1877-1900
Plaster
34 inches high
 
 
 
 
한편 이러한 사상 속에서 그의 명성의 중핵을 이루는 갖가지 작품, 즉 《생각하는 사람》 《아담과 이브》 《칼레의 시민》(1884) 《발자크상(像)》(1898) 등을 통해 다채롭고 정력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나 중세 프랑스 조각으로부터 많은 자극과 감화를 받았으나, 그가 추구한 웅대한 예술성과 기량은 18세기 이래 오랫동안 건축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던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어, 예술의 자율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훌륭하게 성취시켜 회화의 인상파와 더불어 근대조각의 전개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Saint John the Baptist Preaching
1878
Bronze
31 1/2 x 19 x 9 1/2 in (80 x 48.3 x 24.1 cm)
 
 
 
 
그 이후의 조각계는 직간접으로 모두 로댕을 출발점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망 후 그의 주거 및 전재산은 만년의 작업장이었던 파리의 호텔 비롱에 그의 미술관을 개설한다는 조건으로 국가에 기증되었다. 1916년 국립로댕미술관이 발족되어 조각의 대표작은 물론 데생·수채화 등도 전시되고 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미술관에도 로댕미술관이 부설되어 있다. 로댕의 작품 가운데 《세 그림자》 《이브 흉상》 《영원한 청춘》 등은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Saint John the Baptist Preaching
1878
Bronze
31 1/2 x 19 x 9 1/2 in (80 x 48.3 x 24.1 cm)
 
 
 
 
 
 
 
 
Call to Arms
1879
Bronze
44 inches high
 
 
 
 
 
 
 
Call to Arms
1879
Bronze
44 inches high
 
 
 
 
 
 
 
 
Rose Beuret
1880
Plaster
8 inches high
 
 
 
 
 
 
 
 
Rose Beuret
1880
Plaster
8 inches high
 
 
 
 
 
 
 
 
The Shade
c. 1880
Bronze
75 3/4 x 20 x 44 in (192.4 x 50.8 x 111.8 cm)
 
 
 
 
 
 
 
 
The Shade
c. 1880
Bronze
75 3/4 x 20 x 44 in (192.4 x 50.8 x 111.8 cm)
 
 
 
 
 
 
 
 
The Thinker
 
 
 
 
 
 
 
The Thinker
 
 
 
 
 
 
 
 
 
 
The Crouching Woman
c. 1880-82
Painted plaster
12 1/2 x 10 x 7 in (31.8 x 25.4 x 17.8 cm)
 
 
 
 
 
 
 
The Crouching Woman
c. 1880-82
Painted plaster
12 1/2 x 10 x 7 in (31.8 x 25.4 x 17.8 cm)
 
 
 
 
 
 
 
 
She Who Was the Helmet-Maker's Beautiful Wife
Celle qui fut la belle heaulmiere
c. 1880-85
Bronze
19 1/2 x 12 x 7 3/4 in (94.5 x 30.5 x 19.7 cm)
 
 
 
 
 
 
 
She Who Was the Helmet-Maker's Beautiful Wife
Celle qui fut la belle heaulmiere
c. 1880-85
Bronze
19 1/2 x 12 x 7 3/4 in (94.5 x 30.5 x 19.7 cm)
 
 

모차르트(Mozart,Wolfgang Amadeus)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G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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