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 덩굴 숲의 루벤스와 그의 첫 번째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
The Artist and His First Wife Isabella Brant in Honeysuckle Bower / 1609~1610)
인동 덩굴이 가지고 있는 꽃 말은 꿀맛 사랑입니다. 신혼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지요. 한껏 차려 입은 여인의 옷도, 멋진 루벤스의 표정도 보기 좋습니다. 부드럽게 신랑의 손 위에 손을 올려 놓은 여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합니다.
그 여인을 평생 지키겠다는 각오인가요? 루벤스의 다른 한 손은 칼을 잡고 있습니다.
1609년 서른 두 살의 나이로 루벤스는 안트워프의 유력 가문의 딸인 이사벨라와 결혼을 합니다. 인문주의자인 얀 브란트를 장인으로 둔 루벤스의 위치는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다음 해에 이태리 빌라 풍으로 본인이 직접 디자인 한 집과 화실로 이사를 합니다. 공방이 함께 있는 그의 집은 안트워프의 중심에 있는 가장 큰 집이었습니다. 지금은 루벤스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죠.
(성 스테판의 순교 The Martyrdom of Stephen)
한 사람을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돌을 들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늘로 부터 들려 오는 소리에 고개를 쳐든 사람은 스테판 성인입니다. 그는 예수를 죽인 사람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전하다가 첫 번째로 순교한 성인입니다.
가뜩이나 예수를 죽여 놓고 마음이 불편했던 유대인들은 그를 성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쳐 죽이는 광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화면 속 모든 인물들의 동작이 역동적입니다. 그래서 스테판 성인이 처한 상황이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화려한 색과 빛 그리고 동작이 잘 어우러졌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루벤스의 공방에는 제자들이 넘쳐 났습니다. 100명 가까이 되는 도제들과 작품을 완성했는데 공방에서는 크게 세가지 형태로 작업을 했습니다. 공방에서 완성된 작품들을 보면 루벤스가 직접 그린 것이 있고, 주로 손과 얼굴 등 주요 부분을 루벤스가 그린 것이 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도제들이 그린 것이죠. 마지막으로는 도제들이 그린 것을 루벤스가 감수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루벤스의 그림이 많이 전해지는 이유이자 생각보다 작품 가격이 높지 않은 것도 이런 대량 분업 생산의 결과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반 다이크는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고 루벤스와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었죠.
(십자가에 달리심 Raising of the Cross / 1610)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근육질 사내 여럿이 힘을 쓰고 있습니다. 모두의 몸에는 힘이 들어 가 있습니다. 특히 예수의 몸이 있는 부분을 들어 올리고 있는 사내의 근육은 터질 것 같습니다. 빛이 모인 예수의 몸은 상대적으로 유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팔을 활짝 펴고 얼굴을 하늘로 향한 자세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의 자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루벤스 표’ 의 대표작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어떠신가요?
루벤스의 작업 방법 중 독특한 또 다른 것은 분야별 전문가와 함께 작업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 예를 들면 정물이라던가 동물을 잘 그리는 화가를 초빙해서 자신의 작품에 필요한 부분을 그리게 한것이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필요한 부분을 아웃 소싱 한 것인데,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작업 방법은 별로인 것 같습니다.
작품 설명을 할 때 이 작품의 70%는 루벤스, 20%는 누구 그리고 나머지 10%는 또 아무개의 것이라고 해야 정확한데, 이건 뭐 -----.
(십자가에서 내리심 Descent from the Cross / 1617~1618)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를 받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당신의 옷 색깔처럼 파랗습니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표정이 저렇겠지요. 손을 잡고 있는 막달레나 마리아도 망연자실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내려 오는 빛은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흰 옷에 반사되어 더욱 처연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태리 화풍이 루벤스에 의해 소화되어서 북유럽에 전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결혼을 한 루벤스에게 안트워프 대성당 제단화 제작 주문이 들어 왔습니다. 이태리에서 귀국 한 후 제작하게 된 첫 번째 대작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심’ 으로 루벤스는 안트워프 최고의 화가로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 제단화는 나중에 ‘십자가에서 내리심’ 까지 포함하여 총 3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이었습니다.
알프레드 대공의 신임을 얻은 루벤스는 유럽 각지에 파견되는 대사로서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유럽 이 곳 저 곳을 정신 없이 다니는 루벤스의 모습이 만화처럼 떠 올라 웃음이 납니다.
(거울을 든 여인 Woman with a Mirror / 1640)
작품이 제작된 1640년은 루벤스가 세상을 떠난 해입니다. 그림 속의 여인의 이름이 없어서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루벤스의 둘째 아내 헬레나와 닮았습니다. 혹시 헬레나를 모델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도 하지만 지난 세월을 비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거울을 드려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거울 앞에서 몸과 마음이 부산해질 때는 원래의 자신의 모습을 바꾸거나 꾸밀 때뿐입니다. 루벤스는 모델을 통해서 자신이 지나 온 길을 돌아 본고 있는 것 아닐까요?
외교관으로서의 루벤스 이야기는 건너 뛰겠습니다. 루벤스는 그 후 판화 제작에 힘을 기울입니다. 그가 제작한 판화는 유럽 곳곳으로 수출되었습니다. 요즘은 보편화 되었지만 루벤스가 그 당시 그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행사했다고 하니까 대단합니다.
법률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요? 판화에 대해 그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느냐 하면 그의 작품을 판화로 제작하는 화가를 닦달하는 바람에 판화 화가가 루벤스를 죽일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루벤스 선생님, 자신도 모르게 목숨을 잃을 뻔 하셨군요----.
하긴, 요즘이라고 뭐 다르겠습니까? 저도 하루에 여러 명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데.
(마르세이유에 상륙하는 마리 드 메디치 The Landing of Marie de Medici at Marseilles / 1623~1625)
메디치 가문의 마리가 프랑스의 왕비가 되기 위해 도착하는 장면입니다. 바다에서는 인어가, 하늘에서는 천사가 여왕의 도착을 알리자 마중 나온 사람들이 왕비를 환호하고 있습니다. 좀 낯 간지럽게 도착 장면을 묘사했지만 루벤스 특유의 화려한 색상과 작품 속 인물들의 움직임 때문에 작품을 보는 저도 마리 왕비의 도착을 환영하는 기분입니다.
이런 미화는 바로크 미술에서 꽃을 피웠고 그 것이 유럽의 권력자들이 바로크 미술을 후원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1621년 파리에 있는 뤽상부르 궁전을 장식할 작품 의뢰를 받습니다. 의뢰인은 앙리 4세의 미망인 마리 왕비 였습니다.
21점으로 구성 된 이 작품은 마리 왕비와 남편의 일생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죠.
결국 마리 왕비의 일생을 그리고 난 다음 이 작업은 중단되었습니다. 아들 루이 13세가 어머니를 국외 추방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 왕후는 쾰른에서 숨을 거둡니다. 쾰른은 루벤스와도 인연이 있었던 곳인데 ----.
(삼미신 The Three Graces / 1639)
정숙과 청순, 사랑을 뜻하는 심미신은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입니다.
서 있는 형태도 비슷해서 등을 보이고 있는 한 사람과 얼굴이 보이는 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루벤스 말년의 작품답게 역동성이 사라진 대신 원숙하고 차분한 느낌이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여인은 그의 두 번째 아내인 헬레나이고 오른쪽 여인은 첫 번째 아내였던 이사벨라입니다.
자기와 함께 했던 아내들을 삼미신의 주인공으로 그린 루벤스의 재치가 부럽습니다. 물론 헬레나는 기분 나빴겠지만요.
스페인과 영국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자 스페인 합스부르그가에서는 루벤스에게 스페인과 영국 사이를 오가는 대사의 역할을 맡깁니다. 결과를 보면 영국과 스페인은 전쟁을 하게 되지만 루벤스가 활약할 당시 전쟁은 그의 노력으로 억제되고 있었습니다.
이 공로로 스페인과 영국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 받습니다. 아마 외교관 생활만 계속했어도 루벤스는 성공하지 않았을까요?
스페인 마드리드에 머무는 동안 벨라스케스를 만납니다. 뜻이 통한 두 사람은 다음 해 이태리 여행을 같이 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루벤스가 안트워프로 돌아 가는 바람에 벨라스케스 혼자 이태리 여행을 합니다.
루벤스는 이태리를 떠난 후 다시 가보지를 못했죠.
큰 눈과 꼭 다문 입술, 참 예쁜 얼굴입니다. 루벤스의 나이 어린 두 번째 아내인 헬레나입니다.
루벤스와의 사이가 좋았는데 루벤스의 첫 번째 아내가 그려진 그림에 대해서는 몹시 신경질적이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루벤스가 그린 이사벨라의 그림을 보이는 대로 없애버렸다고 하는데 --- 믿어야 할까요?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죠.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그 사람의 아픔까지도 가져 가는 것인데 말입니다.
루벤스가 49살이 되던 해 첫 번째 아내 이사벨라가 세상을 떠납니다. 둘 사이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죠.
금슬도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죽고 4년 뒤 루벤스는 친구이자 안트워프의 비단 상인인 다니엘 프르망의 딸 헬레나와 결혼을 합니다. 금슬 좋은 부부가 배우자를 잃으면 혼자 못 산다던가요?
헬레나는 그 전에 루벤스 작품의 모델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신랑은 53살, 신부는 16살 -----,
몸은 통했지만 말과 생각이 통했을까요? 모를 일 입니다.
(스텐 성 Chateau de Steen)
플랑드르 지방은 특별한 지형이 없어서 화가들이 풍경화를 그릴 때 하늘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루벤스 이후 시간이 좀 지나서 등장하는 풍경화를 보면 하늘의 구름과 빛에 대해 놀랄만한 묘사를 보여 주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루벤스의 이 작품은 넓게 펼쳐진 구릉과 하늘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당기고 있습니다.
종교나 신화를 주제로 그린 작품에 비해 힘은 빠졌지만 대신 그 자리를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루벤스는 외교관 일을 그만두고 그림에만 전념합니다. 58세가 되던 해 안트워프 근처에 있는 스텐 성을 구입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냅니다. 그리고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풍경화만큼은 본인이 직접 그렸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의 불 같은 정열은 줄어들었지만 대가로서의 여유로움은 더 해졌죠.
관절염과 통풍으로 루벤스는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8개월 뒤 두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 다섯 번 째 아이가 태어납니다.
둘째 아내와 같이 보낸 시간은 10년, 그 동안 아이는 다섯 명---.
루벤스 선생님, 제작한 작품 수만큼 왕성하셨군요.
(털 코트를 입은 비너스 Venus in Fur Coat / 1630~1640)
참 매력적인 그림입니다. 검은 털 코트와 흰 피부가 대비되면서 여인의 몸이 도전적으로 다가 오는데, 아내인 헬레나의 누드입니다. 루벤스는 크지만 탄력 있는 엉덩이, 큰 젖가슴, 탱탱하고 굵은 허벅지, 긴 머리카락과 목을 가진 여인을 이상적인 여인으로 생각했습니다. 앞 서 본 ‘삼미신’ 속의 여인들이 대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죠.
이 작품은 루벤스가 너무 아끼던 작품이어서 죽을 때까지 본인이 가지고 있다가 유언으로 아내에게 물려준 작품입니다.
루벤스가 그린 초상화를 모으면 서유럽 17세기 귀족들과 명사들의 기록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태리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그리고 라틴어 등 5개 언어와 고대 고전에 능통했고 우아한 행동거지를 가진 그를 유럽 상류 사회에서는 대환영이었습니다. 작은 크기의 작품보다는 대작에서 능력을 발휘한 루벤스 선생님, 군주들의 화가이자 화가들의 군주라는 평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루벤스와 그의 아내 헬레나 그리고 아들 피터 폴
Rubens, his wife Helena Fourment and their son Peter Paul / 1639)
루벤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아내가 거대한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으면 찬바람이 부는 정말 큰 훌라후프입니다. 루벤스의 그림을 보더니 ‘아깝다, 내가 바로크 시대에 태어났으면 가장 이상적인 몸매를 가진 여인이 되었을 걸--’
물론 제 주위에는 바로크 시대가 원했던 몸매를 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제가 바로크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