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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속에 담긴 복음

[스크랩] 십자가의길 순교자의 삶/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작성자김의천|작성시간09.11.13|조회수629 목록 댓글 0

 

 

 

 

 

 

 

 

십자가의길 순교자의 삶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드오리아(D’Auria)의 소설 중에

영화로 유명해진(케리쿠퍼주연)
‘하이눈’(High Noon)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보안관은 마을의 법질서를 사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늘 악당들은 그의 생각과 반대로 법질서를
무시하고 마을을 공포 속으로 끌고 갑니다. 어느 날 주인공인 보안관은
악당들과의 결투를 앞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함께 악당들과 싸울 사람을
구하면서 이렇게 도움을 간청합니다.

“저는 총 잘 쏘는 사람을 구하지 않습니다.
네가 필요한 사람은 “ 이 일이 나의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 명도 나서지 않아 결국 보안관 혼자서 결투를 보이게 된다.
“이 일이 나의 일이다” 라고 믿는 사람이 마을에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이 나의 일이다”라는 말은
“내가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다” 는 뜻을 말합니다.

비록 총을 잘 쏘지 못한다 할지라도
비록 공부를 잘 못한다 할지라도
비록 배운 것이 없고 학력이 낮다 할지라도
비록 갖은 것이 없다 할지라도
비록 건강이 좋지 않더라도………

“나는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 일이 나의 일이다”.
“이것은 내가 해야만 한다”는 그런 열정으로 일 하는 자에게는
세상이 감당할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기 위하여 전 국토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던
유대교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그 순간부터
그의 생명은 이미 다메섹 도상에서 죽었고
지금의 생명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생명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그렇습니다. 바울은
“나는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 일이 나의 일이다”.
“이것은 내가 해야만 한다” 는 그런 열정으로 '복음 선교'를
고귀한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 굶고,매 맞고,도망 다니고,
옥에 갇히고,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겼습니다.
그의 말대로 몸에 온통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몸의 할례[남근]을 자랑하던 갈라디아의 유대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이제 이후로는 “나를 괴롭히지 마라
내 몸에는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망 다니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로는 “이 일은 나의 일이다” “이것은 내가 해야만 한다”는
사명을 발견하고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주를 향한 열정적인 사랑이 있었고
그들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가득했었고
그들의 눈에는 주의 눈물이 가득했었습니다.
비록,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끝까지 다짐하면서……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칼에 맞아 순교하고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길바닥에 끌려 다니다가 순교하고
누가는 그리스에서 올리비 나무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부끄러운 죄인이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바로 죽을 수 없기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숨졌습니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내던져진 후 매맞아 죽고,
안드레도 십자가에 매달렸는데 그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설교했습니다.
맛디아와 바나바는 모두 돌로 맞아 순교하였으며.
바울은 네로에 의해서 로마에서 교수형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입술에는 죽는 날까지 찬양의 향기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삶까지 예수의 흔적 남겼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어려운 악천후 속에서도
그렇게 불타는 인생을 살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명자”의 성령 충만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더라도
어떠한 사고를 당할지라도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겠노라는
“십자가의 삶” “순교자의 삶” 이었습니다.

행 20: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성령의 불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7월 26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돼 피살된 것으로 확인된 샘물 교회 배형규 목사의 친구인
낙도 선교회 박원희 목사가 배 목사 납치 직후인 20일과 21일
선교회 홈페이지에 배 목사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 담긴 글의 일부입니다.

내 친구 배형규 목사는 참 신실한 형제였습니다.
후배들과 선배들을 늘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지나가지 못하는 형제였습니다.
사모님도 백혈병에 걸린 사람을 위하여 골수 이식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성함이라도 알려달라는 환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교를 교세 확장이나 영웅 심리나 무용담으로
선교하지 않는 형제였습니다.
정말 이슬람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형제였으며
열방의 영혼들을 사랑하는 형제였습니다.

형규를 볼 때마다 저는 늘 자신이 초라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도저히 보통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는 형제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테넷글들 속에
그리스도인들을 폄하하는 글들을 보면 더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내 친구 배형규는 제가 그와 동행하면서 살아온 날들 가운데
영혼이 투명하고 깨끗한 형제였습니다.
내 목숨을 대신하여 살리고 싶은 형제이며
저의 심장을 꺼내 주고 싶은 형제입니다.
어쩌면 제가 죽어야 할 자리에 형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 형규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이웃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했으며
사랑과 섬김이 많았던 형제인지 말해주십시오.
내 영혼이 증인입니다.
기도해주십시오……………………………………


-박원희 목사 올림-


참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을 어떻게?
온 세상은 이 사건으로 시끄럽습니다.
세상은 그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보다는
그의 “선한 죽음” 앞에 인간의 생각과 지성의 한계를 저울질할 뿐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나타난 모든 현상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 안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며 크고 높습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만 분별할수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저희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미련하게 보일 뿐이고 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사람이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이 사역은 우리 모두가 똑같지 않으며
또 우리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사역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어떤 이는 교회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어느 곳에 무슨 사역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특별한 임무를 주십니다. 임무라기보다는 “짐” 이라는 표현이 더 가깝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사역을 맡겨주실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사역과 함께 지워주시는 짐이 있습니다.
그 짐은 우리 “마음의 짐” 뜻합니다.”사랑의 짐” ”희생의 짐”입니다.
희망이 없는 이들을 위하여 동정심을 …….
남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그래서 어떤 사람은 ‘중보의 기도는 우리의 무릎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소망과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쓰러져가는 영혼과 어려운 교회가 여러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순간에도 수 많은 영혼이 예수를 만나지 못하여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제자들의 순교와, 사도 바울의 열정적 희생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영생의 축복과 천국 복음”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큰 빚진 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인으로서의 거룩한 책임과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에게 편리할 때만 또는
자기의 계획에 알 맞는 때에만 봉사하려고 합니다.
참된 봉사란 때와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거룩한 부담을 갖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그곳이
참된 봉사가 이루어지는 사역 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을 살려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27)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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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많은 영혼들에게 깊은 은혜로 다가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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