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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비엔나 케른트너 스트라쎄(K?rntner Strasse)

작성자김의천|작성시간11.07.08|조회수176 목록 댓글 0

 

 

제시와 셀린이 교회를 나와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어느 무희의 춤을 구경하는 장소인 '케른트너 스트라쎄(K?rntner Strasse)' 거리는 예술의 거리라고 불리는 빈 명소 중 하나이다. 카페와 레스토랑, 유명 부티끄 등이 모여 있고, 쉴새 없이 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이 펼쳐지곤 한다. 정갈하게 이어진 붉은 벽돌 바닥과 아기자기한 건물이 잘 어우러지는 거리 모습에서부터 매력을 발산하는 곳이기고 하다.

 

비엔나(Wien)도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이 '케른트너 스트라쎄(K?rntner Strasse)'는 오스트리아 남단지방인 카린티아(Karntner)'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카린티아(Karntner)'는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에 가깝다기 보다는 슬로베니아에 가깝다. 카린티아(Karntner)'에는 슬로베니아어를 사용하는 주민들도 상당히 있다. 이들을 '카린티아(Karntner)'-슬로베나아 사람(Carinthian Slovenes)라고 부른다. '카린티아(Karntner)'는 슬로베니아어로 '코로스카(Koroska)'라고 부른다. '카린티아(Karntner)'는 알프스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산과 호수의 지방이라고 부른다. '카린티아(Karntner)'의 주요 산업은 관광이지만 공업분야도 활발하다. 현재 카린티아(Karntner)'에는 필립스와 지멘스의 대규모 공장이 있다.
 
'카린티아(Karntner)'라는 말의 어원은 켈트어라고 한다. ‘친구들의 땅’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인도-유럽어를 어원으로하는 '카란토(Karanto)'에서 비롯한 것으로 ‘돌’ 또는 ‘바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바위 위에 지은 성인 카른부르크(Karnburg)도 같은 어원이라는 것이다. 카린티아의 수도 겸 제1의 도시는 '클라겐푸르트(Klagenfurt)'이다. '카린티아(Karntner)'의 호수들인 '뵈르터 제(W?rther See)', '밀슈테터 제(Millst?tter See)', '오씨아허 제(Ossiacher See)', '화아커 제(Faaker See)'등은 모두 관광 1번지이다. 카린티아(Karntner)'의 겨울은 흐린 날씨가 거의 없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과거 슬라브공국에 속하여 있던 '카란타니아(Carantania)'는 745년 독일 바바리아 공국의 '오딜로(Odilo)'공작에게 흡수되어 '카린티아(Karntner)'가 되었고 그후 '오딜로' 공작의 아들인 '타씰로 3세(Tassilo III)'가 프랑크제국의 '샤를르마뉴 대제'에게 굴복함으로서 '카린티아(Karntner)'는 프랑크제국에 병합되었다. 843년 '베르둔조약(Treaty of Verdun)'에 의해 종전의 '카린티아(Karntner)' 영토는 '샤를르마뉴'의 손자인 '루이'가 통치하는 '동프란시아(East Francia')의 소유로 넘어갔다.

그후 1414년 강철왕 '에르네스트'가 '카린티아(Karntner)'공작으로 대관식을 가졌다.

 

976년 '카린티아(Karntner)'는 오토 2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당시에는 '카르니올라(Carniola)'가 '카린티아(Karntner)'의 영토에 속해 있었으나 분리하였으며 1180년에는 '슈트리아(Styria)'가 독립하였다. 그리하여 '카린티아(Karntner)'공국이 별도로 존재하게 되었다. 1335년 '카린티아(Karntner)'는 합스부르크의 '오토 4세'에게 이양되었다. 그리하여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가 '카린티아(Karntner)'를 통치하였다. 합스부르크의 종말과 함께 '카린티아(Karntner)'는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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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부뤼쉘 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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