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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환균 소장, '목회와신학' 북 리뷰 '생명의 씨앗 살리는 걸림돌 제거법'

작성자Stephan|작성시간13.09.30|조회수352 목록 댓글 1

 

 

북 리뷰 전문가의 책 읽기/ 「생명으로 인도하는 다리: 현대인을 위한 기독교변증」(알리스터 맥그라스 지음, 김석원 옮김, 서로사랑 펴냄, 384쪽, 15,000원)

 

 

 

 

 

 

생명의 씨앗 살리는 걸림돌 제거법

 

 

현대를 감성(feeling)과 상상력(fiction), 여성(female)이 중시되는 3F의 시대라고들 한다. 기존의 권위적인 패러다임으로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기독교변증은 경직된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의 눈높이와 언어에 맞춰 복음을 전하려는 성육신적 섬김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다리」는 이러한 섬김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자들에게 복음주의 진영의 대표적인 석학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 교수가 전하는 기독교변증 활용 매뉴얼이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Intellectuals Don’t Need a God and Other Modern Myths」다. 거창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이 책에서 전통적인 기독교변증 관련 이슈들을 두루 다룬다. 모두 2부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접촉점 활용과 장애물 제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접촉점을 창조질서에 담긴 하나님의 흔적과 창조 이후 타락한 인간이 드러내는 갖가지 후유증으로 정의한다. 저자에게 기독교변증은 창조론과 구원론을 접촉점의 근거로 삼아 사람들의 세상적 관점을 기독교적 관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저자 자신이 강경한 무신론자로 성장하다가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며 무신론의 논리적 적합성에 의심을 품던 끝에 회심을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어조 하나하나에 강한 설득력이 배어 있다. 지면의 한계로 여기서는 목회자들이 교회 안팎의 말씀사역 현장에서 지침으로 쓸 만한 세 가지 핵심만 간추려 본다.

 

첫째,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접촉점들을 설교에 활용하면, 일반설교에 약간의 변증적 요소를 가미하거나, 위로나 양육 중심의 목양적 설교와 복음 선포의 교리적, 변증적 설교 간에 적절한 균형을 잡는 데 유익하다. 이 책에 소개된 6가지 접촉점은 채워지지 않는 욕구, 인간의 합리성, 우주의 질서, 윤리, 실존적 불안과 소외감, 유한성과 죽음에 대한 의식이다. 특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나 실존적 불안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영적 죽음의 증상들이다.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C.S. 루이스의 말은 하나님 외의 다른 것으로 만족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향한 접촉점 설교의 좋은 예가 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글이나 음악들을 신뢰할 때 그들은 우리를 배신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들 속에 있지 않고 단지 그것을 ‘통해’ 올 뿐이다. 그들은 단지 우리가 본 적이 없었던 꽃의 향기며, 들은 적이 없었던 음악의 음률이고, 갈 수 없었던 곳에서의 소식 같은 것이다”(73쪽).

 

우주의 질서나 인간의 합리성도 접촉점의 좋은 소재다. 인간의 정신이 가진 합리성과 우주가 드러내는 질서정연함에는 공통분모, 곧 창조의 하나님이 계시다. 물론 기독교가 인정하는 합리성은 합리주의적 접근법, 즉 이 세계는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전적으로 파악된다는 관점과는 다르다. 진정한 합리성은 하나님의 본질과 일치할 때 가능하다. 경험적 이성은 반드시 죄의 한계를 자각해야 하며, 하나님을 바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변증적 설교자는 사람들의 일상 경험에 깊은 관심을 갖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세상사람들은 믿음을 요구하거나 교리 자체가 비합리적이어서라기보다 단지 기독교에 대한 오해 탓에 기독교를 거부한다. 사역자들은 주변의 비신자들이 어떤 경험을 가진 사람인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그들의 말을 충분히 경청해야 한다.

 

변증은 신앙 자체를 만들어내진 못하지만 명확한 논리와 창조적인 상상력을 통해 신앙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저자는 변증은 곧 대화라고 강조한다. 변증은 이슈 논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다. 사람 중심으로 이뤄져 결국 사람을 얻는 것이어야 한다. 이때 접촉점을 이끌어내기 위해 청중의 언어를 읽고 신학의 모든 요소들을 일상용어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갈릴리 농촌지역의 일상을 반영한 예수님의 비유야말로 복음을 대중의 일상생활 경험을 통해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에 등장하는 친숙한 일상사들은 예상 밖의 ‘꼬임’에 의해 묘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 시간 동안 일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과 똑같은 품삯을 받는다.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거룩한 바리새인이 아니라 죄인 된 세리였다. 여기서 ‘평범함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나라’가 나타난다.

 

셋째, 효과적인 변증은 개인이나 모임 각각의 독특한 문제와 정황에 초점을 둔 ‘맞춤답변’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죽음에 대해 유별난 공포를 가진 자에게는 복음이 어떤 의미로 다가가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신앙을 가로막는 6가지 지적 장애물, 즉 사람이 만든 하나님, 고난, 종교다원주의, 부활, 예수의 신성, 죄와 구원과 같은 걸림돌에 대한 저자의 대응논리가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정신의 희망사항을 인격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포이에르바하나, 종교를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노이로제의 변형된 형태로 규정한 프로이드의 투영논리에 대한 저자의 반박은 탁월하다. 현대 무신론의 원조 격인 이들의 억지스런 편견은 오히려 인간이 가진 욕구나 희망은 그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공인된 상식보다 훨씬 더 비상식적이다.

 

또한 고난의 문제를 다루며 저자는 데카르트가 인간의 자비심에서 추출된 전지전능이나 선함의 속성만 골라 정교하게 개념화한 이상적인 신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대비시킨다. 철학자들에 의해 완벽한 존재로만 과대선전되던 신은 20세기 초반 인류사의 끔찍한 전쟁과 악과 고통의 실상을 맛본 인간들에게 처절한 실망을 안겨주며 도리어 무신론 사조를 확산시킨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회복시키려고 그 세상의 고통과 슬픔과 비탄 한가운데로 들어오신 분, 그래서 고통의 문제에 대한 답을 이론이 아닌 실물로 보여주신 분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의 경쟁자들로 대두된 6가지 세계관, 즉 계몽주의적 합리주의,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세계관,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비판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주도에 따라 진리의 개념이 달라진다는 주장으로 상대주의 사상을 배태시킨 막시즘은 지금도 포스트모더니즘 안에 살아 있다. 한때 막시즘에 깊이 심취했던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무신론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일개 가정에 불과하다고 못박는다.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소지한 과학자 출신답게 저자는 과학과 과학적 물질주의를 예리한 안목으로 구분해낸다. 과학은 하나의 학문으로서 물질세계의 구조를 관찰하는 방법인 반면, 과학적 물질주의는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관찰 가능한 것만이 진짜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을 배제시킨다고 보았다.

 

재미있는 건 과학자들이 자연법칙에 집착하는 것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다는 사실. 둘 다 근본적인 전제나 믿음에 속한다. 저자는 철학에서도 비슷한 패러독스가 자주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인정한 대로 철학에서도 전제는 경험이 검증하는 대상인 동시에 검증의 기준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저자의 결론은 이 책의 백미라 할 만하다.

 

“기독교와 과학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진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근본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생각해보자. 이 믿음은 자연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 특별히 자연의 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으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경험만 가지고는 증명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자연과학자가 실험 결과 하나만으로 자연의 법칙성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다른 각도에서 그 실험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처럼, 신학자들도 불협화음이 가끔 발견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통의 문제 같은 경우가 그렇다”(298쪽).

 

이 책에는 기독교변증의 필수 장비들이 용도별로 잘 구비되어 있다. 물론 여러 테마를 한꺼번에 다루다보니 디테일하게 학문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콘사이스 변증 사전 같은 이런 유의 책도 꼭 한번은 읽어둘 만하다.

 

20세기가 전문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통섭과 융합의 시대로 불린다. 목회자에게도 세상과 복음, 삶의 현장과 신학을 창조적으로 잇는 융합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목회자에게 변증은 주로 설교와 관련된다. 바울이 강조한 ‘전도의 미련한 것’(고전 1:21)은 케리그마 선포, 곧 설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변증은 기독교인의 지적인 자기설명이기도 하다. 지정의가 고루 균형잡힌 신앙을 격려하고 교회 안의 명목상 기독교인들을 신실한 주의 제자로 세우는 양육전도에도 변증적 전도와 설교는 꽤 요긴한 도구다. 변증전도는 영적, 지적 걸림돌을 제거해주면서 눈에 얼른 보이는 결과보다 기다림의 인내 가운데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꾸준한 과정을 더 중시한다. 교회 안팎의 사람들은 이제 목회자에게서 그러한 ‘한 영혼’을 향한 진정성을 보기 원한다.

 

 

-안환균/ 변증전도연구소장. '목회와 신학'(두란노) 2013년 10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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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teph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30 '목회와 신학'(두란노) 10월호에 제가 기고한 알리스터 맥그라스 교수의 책에 대한 북 리뷰입니다. 기독교변증의 전반적인 흐름과 컨텐츠를 훑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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