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거리가 없다는 사람은 일상에서는 도통 하나님을 못 만나는 사람이다
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예수님은 아주 세밀한 잣대로 신자가 행한 대로 갚으신다. 세상이 좋아하는 명예와 물질, 쾌락을 좇아 사는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잣대다. 아직도 이런 것들이 좋으면 상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다.
2
사랑에 빠지면 늘 그 대상을 생각한다. 그로 인해 기쁘다. 외적 상황이 좋을 때 기뻐하는 사람은 안 좋을 때는 슬퍼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면 그의 구원과 생명으로 인해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의 이유를 놓칠 수 없다. 그 내적인 기쁨이 겉으로 나타나든 안 나타나든 그것이 진짜 기쁨이다.
3
내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겸손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인데도 정말 겸손하셔서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 후부터 이 경이로운 신비를 잊어버린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니 잊고 싶어도, 그래서 적당히 남몰래 교만을 좀 떨고 싶어도 잊지 못하게 하신 것 같다.
4
교회사를 보든 내 주변을 보든 진리의 길은 외롭고 소수였다. 예수님이 그러셨고 제자들이 그랬다. 주님의 교회가 세력을 얻어 권력화되면 십자가의 제자도가 설 자리를 잃거나 이상하게도 차츰 약화된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눅 12:32)는 주의 위로가 아쉽지 않다면 제 자리 점검이 필요하다.
5
유명 목회자들의 성 범죄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드는 아쉬움이 있다. 그들이 믿음 이후 성경에 있는 대로 이미 이룬 것은 잊어버리고 구원의 푯대를 향해 날마다 경주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렇게 미끄러졌을까. 한 순간의 죄는 오랜 시간의 기회들을 유기해온 결과다.
6
"난 지옥이 별로 안 두려운데요. 그런 비현실적인 데가 정말 있기는 할까요?" 신자들 중에도 이렇게 물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지옥에 대한 관심 자체가 별로 없는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강조한다는 게 얼마나 무력한가. 지옥을 말하면 성경도 문학작품의 일종이 된다.
7
행함 있는 믿음에 깨어 있고 죄를 민감하게 피하려 하는 자들일수록 예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더욱더 깊이 잠겨야 한다. 은혜가 모든 성화 과정의 원동력이며 시작과 끝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깊이 맛보고 누려야 한다. 그래야 자기 의나 자랑에 빠지지 않는다.
8
기도가 습관화되어야 일상에서 주께 지속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모든 일에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은 기도로만 가능하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시 55:23).
9
내 모든 상황과 아픔과 염려를 주께 아뢰는 게 왜 힘든가? 하나님보다 나를 더 의지하고 주변 사람들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교만인지 모른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의 기본, 곧 피조물의 자리를 항상 인정하는 태도를 줄곧 무시하며 살아간다.
10
작은 일도 주께 먼저 아뢰는 것이 큰 믿음이다. 거창하고 훌륭한 기도까지 안 가도 된다. 모든 일을 놓고 하나님께 가장 먼저 아뢰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다. 세상에서 복을 구하지 않고 주께 복을 구하는 영적 감수성이 이타적인 삶을 촉진시킨다.
11
기도의 길을 모르고, 기도하려고 하면 할 말이 별로 없다는 사람은 일상에서 주와 동행하는 훈련이 미비한 사람이다. 일상과 골방이 통해 있으면 골방은 기도로 바빠지고 일상은 기도로 가뿐해진다. 기도할 거리가 없다는 사람은 일상에서는 도통 하나님을 못 만나는 사람이다.
12
모든 일을 주께 아뢰는 기도는 일상에서 주의 성품을 계속 묵상하게 하며 그의 말씀과 동행하게 한다. 염려나 타성에 젖어 그저 닥치는 일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모든 일로 기도하면 그 일을 하나님과 연결지어 묵상하는 것으로 일 자체에만 매이는 데서도 자유로워진다.
13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기도 따로 삶 따로인 사람들은 하나님이 골방에만 사시는 줄 안다. 내 삶의 길에 주를 인정하는 기도로 첫 자리를 내어드리면 그분이 인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분이 가실 길을 내가 앞장서 다닌다.
14
기도와 일상을 연결짓는 실제적인 경건의 훈련 없이 교회만 다니며 설교 듣고 책 읽고 성경만 배운다고 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게 아니다.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거기에 무엇을 구체적으로 채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준다. 지, 정, 의의 균형은 기도가 잡아준다.
15
"하나님, 저는 오늘 이런 일들을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아뢰지 않아도 하나님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아신다. 내가 이렇게 아뢰는 이유는 내 믿음을 위해서다. 내가 그 일을 실제로 할 때 나 자신이 기도와 말씀에 깨어 있어 때마다 주의 임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16
올바로 기도하지 않는 삶의 주된 징후는 염려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염려의 진짜 근원은 일상의 고단하고 빠듯한 삶이 아니다. 하나님께 내 짐을 맡기지 못하는 영적인 덫에 걸려 있으면 상황이 좋아져도 염려는 남는다. 염려는 영적인 처방 없이는 안 없어진다.
17
일상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동행하는 삶은 결국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으로 성취된다. 문자 그대로의 기도가 아니라 일상의 일들을 주께 맡기며 주께 하듯 해나가는 그 삶의 기본 자세가 이미 큰 기도다. 몸에 붙은 기도는 골방이 아닌 치열한 일상의 현장에서 완성된다.
18
동네 버스정류장 노점에 강아지 세 마리가 있다. 한번은 내가 앉아 손짓을 했더니 먹이라도 주는 줄 알고 우르르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얘들은 지조도 없이...' 아무것도 떨어지는 게 없자 금세 흩어지는 대형으로 돌아선다. 사람이 먹을거리로 보이는지.
19
예배나 기도는 바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다. 경쟁사회에서 큐티는 시간 낭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배는 의도적인 시간 낭비다. 여기서도 살고자 하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큐티를 하찮게 여기면 개인이든 교회든 눈에 띄게 메말라져간다.
20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세대에는 말씀보다 쾌락을 살 수 있는 돈이 더 좋다. 큐티할 시간이 없다는 건 하나님보다 돈이 더 좋다는 것이다. 큐티할 때마다 돈을 준다면 기분 나쁠 일이다. 큐티할 시간이 없다는 건 경건을 돈벌이처럼 여기는 태도다.
21
"진정 하나님을 따르기 원한다면 내세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에이든 토저의 말이다. 나는 음모론을 안 좋아한다. 그러나 성경의 복음을 땅의 복음으로 끌어내려 내세보다 이땅의 정의와 평화를 더 부각시키는 신학은 거대한 음모다.
22
살아계신 하나님을 정말 두려워한다면 저러진 못할 텐데 하는 일들이 요즘은 많다. 하나님보다 사람과 집단과 세력을 믿는다는 증거다. 어쩌면 기독교 안에서도 따로 전도할 일이 많아진다. 대상자가 하나님의 말씀도 알고 교회 소속의 종교인이라는 점이 다르다.
- 안환균 목사의 SNS에 수 년 전 어제 나눈 단상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