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를 알리는 나팔 소리는 그 사건이 일어날 때만 울리지 않는다
1
세상 경영에서도 디테일에 충실할 때 가치 있는 성공을 거둔다고 한다. 영적으로도 작은 일에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고자 할 때 틈새가 안 난다. 아주 작은 거짓말도 자꾸 소홀히 하다 보면 그 구멍으로 큰 보물까지 다 새나간다. 하나님은 디테일의 하나님이셔서 사람이 못 보는 것까지 다 보신다.
2
"예수님, 나는 잘하는 게 없어요. 나는 주님밖에 없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주님을 잘하네요." 말도 안 될 것 같은 기도가 나왔다. 머리로만 알던 주님에 대한 지식이 가슴으로, 손발로 이어져야 '주님을 잘하는' 것인데, 주제 파악도 못하고 말이 앞섰다. 간구의 기도니까 주님이 아직은 많이 봐주신다.
3
매일 매순간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 내 일상의 중심에 있기를 원한다. 이것이 불가능해보이기만 한다면 오랜 신앙생활의 연륜조차 무색해진다. 일상에서 주의 임재와 동행을 사모하는 바탕에서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며 내 존재의 목적이다.
4
지금 복합적으로 짜맞춰지는 IT기술을 포함한 첨단 테크놀로지의 끝은 완벽한 전체주의적 적그리스도 체제다. 이 체제는 세계정부주의자들이 만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 배후에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성취해가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가 있다. 음모론은 없다. 성경 예언의 정확한 성취가 있을 뿐이다.
5
휴거는 지상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영생의 부활체로 변화받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천국에 있는 모든 영혼들의 육체가 마침내 무덤에서 일어나는, 인류사와 교회사를 통틀어 최고의 영광스런 사건이다. 지금은 사탄이 '휴거'라는 말만 꺼내도 거부감이 들게 분탕질을 해놓았으니 얼마나 큰 속임수인가.
6
휴거를 알리는 나팔 소리는 그 사건이 일어날 때만 울리지 않는다. 영적으로는 그 전에 마지막때에 깨어 있고자 하는 이들의 외침으로 수많은 나팔 소리가 먼저 울려 퍼진다. 이 나팔 소리가 들리고 이해되고 그에 따라 깨어나는 과정이 주어지기에 휴거는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7
백신의 효능이 몇 개월짜리고, 여전히 감염 위험이 있어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고, 변이가 계속 나타나 나중에 또 다른 백신을 맞아야 할 수도 있고, 부작용이 언제 날지 모르는 백신을 한 번 맞으면 여러 번 맞아야 한다. 합당한 이유도 안 따져보고 남이 한다고 무조건 다 따르지 말 것.
8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이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종류의 쾌락이나 오락, 즐거움을 능가하는 엄청난 기쁨을 예비해놓으셨는데, 사람들은 그 천국의 파편 몇 개를 붙들고는 누구나 취할 수 있는 그 영생을 잠깐의 팥죽 한 그릇에 다 날려버린다. 영생의 자격이 너무도 흔해 땅에선 쉽게 못 알아본다.
9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쁜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논어>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눅 6:26)라는 말씀의 중국판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주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고도 안 한 척하기 쉽다.
10
주님이 맡기신 일은 대체로 외로운 일이다. 가끔 뭔가 조명을 받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이 즐거워하지 않는 말을 하고 꺼려하는 일을 계속 환기시켜야 한다. 주의 진리에 세속이 끼어들면 중대한 가치가 계속 희석되어 어중간한 지점에서도 뭔가 있어 보인다. 일종의 출처 모를 착시현상이다.
11
생활의 수준을 줄이는 게 바쁘게 사는 것보다 낫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 더해주시는 덤은 세상이 정해둔 삶의 수준보다 남루할 수 있다. 세상에서도 번듯하고 하나님나라에서도 부요한 경우는 드물다. 둘 다 취하려는 욕심 탓에 많은 신자들이 주님과의 교제를 내내 뒷전으로 두고 산다.
12
"나도 잘 모릅니다."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에 답해주겠다고 시작한 말씀사역에 매진할수록 이런 말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다. 성경에도 답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다. 그냥 신비라고만 대답해야 할 영역이 더 커지는 건지도 모른다. 답은 처음부터 인격이신 주님이지 문자가 아니었다.
13
모든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는 한 사람도 안 듣지만 한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듣는다고 한다. 어떤 것이든 얼마나 구체적으로 전하느냐가 소통의 관건이 된다. 목회도 대중을 상대로 하듯 하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 거기서 모든 종류의 목회가 다 나온다.
14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의 경제나 문화 생활의 하드웨어가 격변에 가까운 변화와 통제를 경험했다면, 코로나 백신 접종은 전 세계의 소프트웨어와도 같은 각 사람을 예외없는 통제의 타깃으로 삼는 것 같다. 지금이 적그리스도 출현 직전인 마지막때라고 믿는 성도에게 이런 상황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15
주님이 다시 오실 시대적 징조들에 깨어 있으라는 주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도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고,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나 때를 임의로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 불순종이다. 주의 엄중한 명령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축소하거나 과장하는 이 두 가지 극단의 종말 역시 동일할 것이다.
16
새벽에 잠이 깨어 다시 잠들기 직전에 나팔 소리를 들었다. '빠밧' 하는 짧은 소리였지만 생시에 분명하게 들었다. 천사가 내 주위에 있구나 하는 직감에 잠이 확 깼다. 꿈에 가끔 예수님을 만나고 천사도 봤지만 생시의 이런 교감은 드문 일이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살라는 주의 음성이었다.
17
휴거에 불참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은 주님이 신랑으로 다시 오실 휴거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거나 두려움이 있는 이들이다. 환난 전 휴거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 반대하지만 주의 재림은 사모하는 이들의 장래는 주님만 아실 것이다. 다만 휴거가 막연히 불안한 이들은 빨리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18
"하나님이 나를 지옥에 떨어뜨리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리라." 로렌스 형제의 말을 이렇게 바꿔본다. "하나님이 나를 지옥에 버리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진짜 사랑 고백은 상대가 날 어떻게 대하든 거기에 좌우되지 않는 게 아닐까.
19
지옥에 안 가려고, 지옥 가는 게 두려워 하나님을 이용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마음 다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을 계속 발견해나가는 게 신앙생활의 전부일지 모른다. 그 믿음의 여정에 하나님은 동행자이시지 방패막이가 아니시다.
20
“지옥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 죽어 봐야 알지!” 죽어 봐야 아는 건 아나마나다. 진실 여부 확인이 의미 있으려면 확인 후 자기 신념을 수정할 여지가 있을 때뿐이다. 지옥의 존재를 확인할 유일한 방법은 성경을 통해 미리 경고받는 길밖에 없다.
21
지옥이 없으면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힌다. 지상에서도 무의미하게 산 것이 된다. 신도 존중받고 인간도 존중받으려면 지옥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끝까지 존중하시기에 그를 지옥에 보내신다. 지옥 고통은 이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는 데 대한 대가다.
- 안환균 목사의 SNS에 수 년 전 엊그제와 어제 나눈 단상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