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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도 흔한 '민속신학' 가운데 전라도나 경상도 사람이 어떻다느니, 무슨 띠나 혈액형은 성격이 어떻다느니...

작성자Stephan|작성시간24.04.06|조회수75 목록 댓글 0

교회 안에서도 흔한 '민속신학' 가운데 전라도나 경상도 사람이 어떻다느니, 무슨 띠나 혈액형은 성격이 어떻다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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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도 자영업의 일종이라서인지 누구한테 월급 받고 일한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일이 없다면 없고, 있다면 한없이 많다. 특히 행정상의 업무 외에 말씀을 준비하거나 글을 쓰는 일 같은 건 해도해도 끝이 없는 일 같기도 하다. 놀 때 놀아도 정해진 월급 그대로 나오던 직장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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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도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 가운데 각 개인이 무한히 주를 닮아 더욱 성장해나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도 교육이 있고 예배는 물론 설교도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설교자였던 이들이 거기서도 설교하게 된다면, 설교자로 부르심받은 영광은 실로 말할 수 없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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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말씀묵상에서 결국 중요한 건 적용이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 상황과 지금 내 상황을 연결짓는 변함없는 공통점이 적용에 들어 있다.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어 주의 말씀의 통치에 순응하는 결단이 없다면 신앙 따로 삶 따로를 극복할 수 없다. 그날 묵상에서 적용 한 줄만 딱 건져도 큰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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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날 주신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곧 하루 종일 묵상하는 삶이 시편에 등장하는 주의 백성들의 표준적인 삶이다(시 1:2). 이러한 분명한 삶의 얼개 없이 데면데면 자기 맘대로 사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정규적인 삶이 아니다. 훗날 주 앞에 섰을 때 상상 밖의 아주 낯선 판결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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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가 일주일 내내 기억되기는 처음이다. 연속 드라마처럼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새신자 청년이 심방중에 전해준 간증이다. 설교가 좋아서라기보다 그 청년의 마음밭이 좋아서라고 칭찬해주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각자의 신앙 양심과 경험과 영적 갈급함에 따라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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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공예배에 자주 지각하는 이들은 첫 단추가 제대로 안 꿰어진 예배를 드리기 쉽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인데 매번 단정하게 주님을 맞기보다 조금씩 바람을 맞힌다. 정시보다 조금만 일찍 와도 예배가 훨씬 더 안정되고 풍성해진다. 그 차이를 모르면 예배에 늦는 몇 분이 그저 몇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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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때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차창 밖을 유심히 관찰하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나 얼굴의 표정을 살피다 보면 거기에 세상이 다 있었다. 요즘은 늘 뭔가를 하느라 그만한 여유는 없지만 그때 담아둔 세상을 잠시 꺼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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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에 진학한 딸이 요즘은 학원도 마다하고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데 맛을 들인 모양이다. 우리에게 좋은 대학은 '거리의 대학'이다. 가족과 함께 살며 다닐 수 있는 거리의 대학만 가주면 된다. 굳이 멀리 가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미리 떠나 보내는 연습을 하게 될 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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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내게 상처를 받으라고 해준 말에 내가 상처받지 않으면 일종의 실례다. '상처라도 받아 내 억울한 사정 좀 알아주라'는 속마음을 무시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원리적으로만 적용하려 하면 남의 아픈 속사정을 공감해줄 여지가 없다. 때로 상처를 잘 받는 것이 성숙한 신자의 감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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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7). 모든 진정한 권위는 희생과 섬김에서 나온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삶의 무게를 결정하는 건 일생 동안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얼마나 주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겼는가다. 희생한 만큼 가치 있게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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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자가 예수님을 닮지 못하고 치우쳐서 특정인에게 잘해줄 때 그건 정말로 잘해주는 게 아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본성으로 작동되는 것이어서 나중에 언젠가는 탄로난다. 따라서 그때 잘해주는 것을 미리 막아서 오직 예수님을 보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그의 인생의 시간만 더 낭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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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와 사역자 모두에게 최고의 덕목은 겸손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겸손을 놓치면 다 놓친다. 겸손이 무뎌져 영적으로 교만해지면 그 위에 어떤 걸 세워도 불안하다. 바닥끝까지 겸손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은 거기에 없다. 겸손하면 어떤 일을 이뤄도 내 일이 아닌 주님의 일로 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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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설교는 다른 게 아니다. 하나님과 나와 이웃과 세상을 해석하고 새롭게 발견하는 통로로 성경을 풀어내고자 하는 설교다. 그래서 항상 지식적으로 새롭게 배우는 게 있지만, 감성적으로 주의 사랑을 느끼거나 의지적으로 새로운 삶을 결단하게 하는 데에도 올바른 지식을 활용하도록 돕는 설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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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형제로 있다가 최근에 연달아 결혼하면서 신혼 부부가 두 쌍이나 교회에 참여하게 되어 자연 증가의 혜택을 톡톡히 본다. 젊음은 그것을 잃기 전에는 그 가치를 모른다고 했는데, 이 청년들을 볼 때마다 그래도 교회 안에서 믿음의 가정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후회 없을 인생의 큰 복이다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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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 혼용하는 서구의 어떤 국가도 우리처럼 지금도 이념으로 분단되어 있는데다 과거의 주사파 운동권이 전향도 않고 정치권에서 버젓이 활동하는 나라가 없다. 합리적 의심을 해볼 만도 한데 평소에 '혐오와 배제'를 혐오한다는 이들이 유독 이 의심만 한다싶으면 눈에 불을 켜고 배제 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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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도 흔한 '민속신학' 가운데 전라도나 경상도 사람이 어떻다느니, 무슨 띠나 혈액형은 성격이 어떻다느니 하는 게 있다. 그렇게 출신지나, 일본과 한국에서만 하위문화처럼 통용되는 혈액형별 성격 유형에 솔깃해지면 사탄이 그걸로 장난칠 틈을 내줘 영적 미혹에 의한 선입견으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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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는 넥타이는 거의 다 아내가 골라준 거다. 내 맘에 드는 넥타이도 아내의 승인 절차를 대충이라도 거쳐야 무사히 내 목에 걸 수 있다. 나는 아내의 안목을 과신하는 편인데, 사려고 보면 분명히 내 눈에는 좋은데 사고 나면 오래잖아 아내의 평가가 맞다는 게 드러난다. 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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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적으로 자신이 끌리는 사역에만 관심두면 균형을 잡기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자신만의 성향을 중화시키며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다. 사역자에게도 약간은 색깔이 다른 공동체 교제 모임이 정기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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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는 기독교 신앙의 지성적인 면을 중시하는 이들은 내세나 역사적 종말, 성령의 은사에 관심이 적고, 이 분야에 관심있는 이들은 지성적인 면이나 사회참여의 복음을 덜 강조한다. 성경은 분명히 둘 다를 중시한다. 복음은 한 쪽으로만 치우치기엔 너무 깊고 넓고 포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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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무천년설은 마지막때의 환난을 상징적으로 인류사에서 경험된 자잘한 교회의 고난으로 본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과거사로 치부하는 것과 비슷한 이런 종말관은 있으나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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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때에는 종말에 깨어 있는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기름을 준비한 가운데 주를 맞으려는 일은 다섯 처녀만큼의 공동체가 큰 도움이 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예수님의 엄연한 말씀을 자기 아젠다로 제껴놓는 모든 사람들이 곧 큰 낭패를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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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신앙 고백과 순전한 사랑을 정말로 가졌는지에는 관심없고 그들이 교회에 잘 출석하고 헌금을 잘 내고 봉사에 열심인지만으로 구원 받은 신자인지 여부를 가리려는 것이야말로 행위구원이다. 목회자가 한 영혼에 마음을 쓰지 못하면 주의 목회는 없다.

- 안환균 목사의 SNS에 수 년 전 엊그제와 어제 나눈 단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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