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으로 인해 갇힌 자의 믿음... '덜 떨어진 놈 같으니라고, 다 잘 믿는데 왜 넌 못 믿어?'
“여호와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 사로잡힌 백성들을 모른 척하지 않으신다”(시 69:33, 우리말성경)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시 69:33, 개역개정성경)
오늘 함께 묵상할 이 시편 69편 33절 말씀은 제가 구도자로 방황할 때 제게 직접적으로 아주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말씀입니다. 그때는 우리말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개역성경으로 읽었는데요,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나니”라고 번역되어 있었던 말씀으로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 곧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바로 제 옆에서 직접적인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만큼 생생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 궁핍한 자는 다 하나님의 법도에 신실하기 위해 세상의 방법대로 살지 않으려는 삶 때문에 가난하고 궁핍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법도에 매인 자,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경외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소원 때문에 이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당하는 불이익이나 자발적인 고난 가운데 처해 있는 자를 가리켜 ‘사로잡힌 백성’ 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갇힌 자’라고 여겨주십니다.
구도자로 있을 당시에 저 또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찾는 것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자 하는 자로 여겨주셨기 때문에 제게도 ‘하나님으로 인해 갇히고 수금되고 사로잡힌 자’의 한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저한테 “덜 떨어진 놈 같으니라고, 다 잘 믿는데 왜 넌 못 믿어?”하고 나무라시지 않고 오히려 이런 위로의 말씀으로 격려해주셨습니다.
제가 구도자로 있을 당시만 해도 저는 하나님을 떠날 수도 없고, 하나님께 완전히 속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어중간한 상태마저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갇힌 상태라고 표현해주시면서, 그렇게 어중간한 상태에 있던 당시의 저 같은 사람도 멸시하시지 않고 귀하게 봐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제게는 실제로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나의 어중간한 상황을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 그 자체가 참 큰 힘이 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금 상태는 아직 풀려날 때가 안 되어서 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 해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그런 느낌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일상을 살면서 크고 작은 고난이나 문제로 우리가 낙망하고 낙심할 때, 그때조차도 우리 각자의 삶이 하나님 나라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으로 인해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지금 나로 인하여 갇히게 되었구나"하고 말씀해주시며 위로해주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때가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와 그 하나님의 때가 일치하기까지는 자주 인내로 기다려야 할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하나님께서 때로 아무런 힘도 희망도 없이 낙심 가운데 기다리고 있는 나를 멸시하시거나 하찮게 여기시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사실 그것 하나로 다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에 있는 나를 멸시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멸시할 만해 보인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나를 보기에도 스스로 자조하거나 자책하고 멸시할 만한 상황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하나님께서만은 나를 멸시하시지 않는다면 그것 하나로 다 된 것입니다. 조롱하고 멸시하는 주위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중도에 꺾일 필요가 없습니다. ‘중꺾마’, ‘중도에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말이 얼마 전 축구 대표선수들 사이에서 나온 거 다들 아시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에는 반드시 믿음이 요구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스스로 자신을 멸시하고 싶은 낙심에 빠지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을 구하고 있다면, 그리고 구도자일 때뿐만 아니라 신자로서도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하나님을 늘 갈급해하는 상황이라면, 하나님은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갇힌 바 된 나를 멸시하시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런 상황에서 꼭 필요하고 또 하나님께서 내게서 보시길 원하는 믿음이라고 믿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갖고 인내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 사람들이 나를 멸시할 만한 상황을 거뜬하게 견뎌내고 마침내 온전히 이겨낼 수 있게 해주신다고 믿습니다.
다만 이럴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을 멸시하고, 그래서 영적으로 의기소침해지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의심하는 불신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 내가 선택하는 것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더 깊이 구하고 갈급해하는 것으로 인해 이런저런 궁핍한 형편을 견뎌내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 길에 서 있는 나를 결코 멸시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해야 끝까지 이 길을 올곧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신앙의 좁은 생명길을 걸어가는 중에 예기치 못한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해서 내가 그 길 위에 있는 나를 멸시하고 자괴감에 빠진다면, 그것은 모양만 좁은 길이지 실제로는 좁은 길 위에 있지 않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초라해 보일 수 있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가운데 내게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감사가 없다면, 아무리 사람들이 보기에 거창하고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참 생명의 좁은 길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탄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결국 내가 나 스스로를 무너뜨리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방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궁극적으로 나 자신 외에는 내가 가는 좁은 생명길을 방해하는 자가 없다면, 타인의 언행에 대한 내 반응으로 나를 실족시키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타인은 나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단지 내가 그 타인으로 인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것이 문제가 될 뿐입니다.
우리를 속박하고 가두고 감금하는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세상은 우리와 같은 신자들을 그렇게 가두고 속박할 아무런 명분도, 능력도 없습니다. 오직 신자들만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감금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갇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 갇혀 올바른 신앙의 좁은 생명길을 올곧게 걸어가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정말 우리 각자의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생명의 근원을 지키는 것이라는 잠언 4장 23절의 말씀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고, 늘 그분을 갈급해하며, 내가 내 죄로 인해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가 방해받지 않도록 그분과의 건강한 관계를 내 삶의 최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면, 사람들이야 뭐라 하든 내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 하나님께서는 나를 멸시하시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이번 한 주간도 힘 있게 소망 가운데 그분과 매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축복드립니다.
- 안환균, 온누리교회 전도통합팀 화요기도회 묵상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