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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세상을 살아가는 4가지 원리(존 맥아더)

작성자Stephan|작성시간12.06.12|조회수555 목록 댓글 1

엔터테인먼트 세상을 살아가는 4가지 원리

 

나는 할리우드에서 16km 정도 떨어진 교회에서 40년을 목회하고 있다. 그러므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가 어떻게 우리 문화를 잠식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나는 평생 세상의 문화가 스포츠나 독서 같은 여가활동을 포함한 활동적이고 지성적인 놀이에서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 게임, 인터넷 같은 수동적이고 기운을 떨어뜨리는 유흥들로 방향이 바뀌는 것을 주목해 왔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 사회의 여러 요소를 개선하긴 했지만, 반면에 강력하고 새로운 수많은 유혹을 창출해 내는 것도 목격한다. 근본적으로 죄는 여전히 죄다( 2:16 참조). 그런데 예전에는 결코 알 수도 접근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죄들이 지금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빈번히 행해지는 것을 본다.

 

경제적 혹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엔터테인먼트의 세상은 엄청난 범위의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예로 오늘날 흥행에 성공한 영화나 유행하는 비디오 게임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텔레비전 방송국이나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수천만 명의 시청자들과 청취자들에게 수없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음악을 파는 가게들은 수천만 종류의 노래들을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온라인을 통해 미디어를 구매할 수 있게 만든 프로그램은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미디어 접근은 인터넷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더 수월해지고 빨라졌다. 상업적 호기심으로 문을 연 인터넷 시장이 시작된 지 20년 만에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15억만 명에 이른 것을 보면 그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과학기술들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기술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고 정의를 장려하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심하게 타락한 이 세상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적들의 영향 아래 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모든 엔터테인먼트가 영적으로 중립적이고 안전하다고 순진하게 단정하며 행동할 수는 없다. 세상에 제공하는 많은 것들에 우리의 마음이 잠식될 수는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영적으로 흠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엔터테인먼트가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권위에 순종하도록 부름 받았다.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하여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하나님의 권위 앞에 드려져야 한다.

 

아래에 소개하는 4가지 원리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엔터테인먼트 선택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하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다

 

 

1.     그리스도의 주재권은 신실한 청지기적 책임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시간, , 은사, 힘과 같은 제한된 자원을 주셨다. 그리고 그 각각에 대해 신실한 청지기적인 삶을 요구하셨다( 5:1; 13:11; 25:14-34; 12:30 참조). 예수님은재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6:21)라고 하셨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들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가진 자원을 자기만을 위한 여가나 오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복음 사역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최근 연구에서 미국사람들은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텔레비전을 시청한다고 한다. 이는 인생을 70년으로 환산했을 때 거의 12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어떤 프로그램들은 교육적이고 또 기분전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통계를 보면서 예수님은 인생의 1/6 이상의 시간을 바보상자를 쳐다보며 낭비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 궁금해진다( 14:10-12).

(놀랍게도 텔레비전 시청은 사람들이 즐겁게 시간을 낭비하는 수많은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인터넷에도 거의 비슷한 시간을 소비한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영화를 보고 비디오 게임을 즐기며 보낸 시간과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데 투자한 시간을 비교할 때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유익을 주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얼마나 많은 돈을 순간의 유흥을 위해 사용하였는가?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영원을 위한 투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내 욕심이나 내가 계획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열정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며 일한 섬김 중 과연 어느 편에 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더 투자해 왔는가? 이것들은 모든 믿는 자들이 생각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왕의 일을 맡은 청지기로서( 25:14-30) 우리는 자신의 유흥보다 더 값진 것을 위해 부름 받았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주재권은 불순하고 세속적인 것을 고발한다

 

이 문제에 대해 정말 좋은 말씀이 에베소서 5 3-4절에 기록되어 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이 두 구절만으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엔터테인먼트가 전달하는 성적 타락과 부도덕, 음란한 농담, 어리석은 말과 감사하는 태도를 약화시키거나 탐욕을 부채질하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사실상 위의 말씀에 언급된 이런 나쁜 목록들은 현재 온 세계에서 행해지는 미디어의 잘못을 보여주는 명백한 예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영화는 일반적으로 언어, 폭력, 성적 요소 및 주제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많은 영화가 비기독교적(non-Christian)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반기독교적(anti-Christian)이다. 그렇다고 그런 영화가 공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공격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영화가 더러운 언어와 음란한 유머를 사용하고( 3:8; 2:6-8), 평화보다 폭력을 찬양하고( 1:7; 요일 4:7-8), 거룩함보다 정욕과 부도덕을 더 매력적으로 포장해서 표현하고(살전 4:3-5; 벧전 1:16), 감사보다 불만과 욕망의 감정을 가르친다( 5:20; 딤전 6:6). 그렇게 성경과는 정반대의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조장한다(고후 19:5).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영화를 절대로 보지 말아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어떤 것을 담을지는 정확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도록 부름 받았다( 12:2; 4:23; 3:16). 그러므로 만약 마음을 세상의 오물들로 계속 채우고 있다면 자신에게 영적으로 엄청나게 몹쓸 짓을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3. 그리스도의 주재권은 바른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미디어에 이끌려 다니는 우리의 문화는 행복추구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사랑스러운 가족, 하얀 울타리가 둘린 예쁜 집으로 상징되었던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순간의 명성, 끝없는 부, 책임 없는 사랑, 꿈의 실현을 보장하는 백지수표 등으로 목표가 바뀌어버렸다. 이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행복의 기준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리얼리티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발달로 발생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문제는 인간의 마음에 존재한다.

 

우리는 만족, 성취, 기쁨을 추구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그런 열망들은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다. 하지만 타락한 세상은 그런 열정을 돈, 로맨스, 명성, 그 밖의 세속적 쾌락들로 대체해 놓았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궁극적인 기쁨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세상은 결코 지속적인 만족을 가져다줄 수 없다. 솔로몬 왕은 이 교훈을 어렵게 체득하였다.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경험한 후 솔로몬은 마침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하나님 없이는 누구도 진정한 기쁨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25-26; 11:9; 12:13-14).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행복, 로맨스, 검소, 남자다움, 정의, 성공, 성취 등에 대한 개념을 세울 때 엔터테인먼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할리우드가 아니라 말씀과 성령이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설교 말씀보다 자신들이 관람하는 영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그리스도를 닮는 것보다 비디오 게임이나 텔레비전의 스포츠 이벤트에 더 뜨거운 열정을 드러낸다.

 

또한 그리스도의 풍요로운 말씀에 거하는 대신 자신들의 마음을 라디오 프로그램의 지저분한 잡담들로 가득 채운다. 영화나 텔레비전 속의 배우들이 행복을 보장하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죄를 쫓아가는 내용을 연기할 뿐이다. 사람들은 그런 배우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으로 세상의 쾌락을 탐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고 보면 그 배우들도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불행하기는 마찬가지고, 결국 정신을 차리고 보면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잡지사만 도와주는 셈이다.

 

우리의 우선순위와 열정과 계획과 목표를 향한 추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오직 그분 안에서만 진정한 만족을 발견할 수 있고( 11:28; 7:37 참조) 그분을 섬김으로만 우리의 영원한 보화를 하늘에 쌓을 수 있다( 6:20). 그분께 기쁨을 드리고 영광을 돌릴 때 우리는 삶의 가장 위대한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고후 5:9 참조).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감정과 포부와 소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14:7-8; 2:20; 1:20-21 참조). 히브리서 저자가 권면하듯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인생의 경주를 해야 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2:1-2).

 

 

4. 그리스도의 주재권은 세계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분명하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영원성의 본질을 이해하고 경건한 사고방식을 통해 바른 세계관을 가지면 올바른 우선순위와 거룩한 열정을 소유하게 된다. 만약 세상이 이 땅에서 끝난다면 재물을 축적하고 현재의 생활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세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 알려진 실재는 순간적인 쾌락이나 내 욕심과 세속적인 추구와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광범위하다. 하나님은 실존하신다. 하나님의 말씀도 진리다. 천국과 지옥도 존재한다. 복음도 사실이고 예수님도 실제다.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도 모두 사실이며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인생이 순간인 것도 사실이고 죽음의 필연성도 사실이며 미래에 상을 주신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영원한 멸망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가 가르치는 세상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엔터테인먼트는 정확히 묘사할 수도 없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세계관은 할리우드식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재에 근거해야 한다. 사람들은 실재를 거부할 수 있다. 스스로 망상이나 환상을 만들어 자신의 주의를 혼란하게 만들고 헛되고 세속적인 삶을 계속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언젠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9:27). 그리고 그 순간에는 부도, 쾌락도, 이 세상 그 어떤 성취도 그들에게 아무 소용이 될 수 없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무모하고 근시안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놀라운 실례다. 누가복음 12 16-21절에서 예수님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셨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지만 지난번 봤던 영화의 주인공을 하나님보다 훨씬 더 실제로 느끼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경종을 울린다. 끊임없이 울리는 영적인 자명종 시계 소리를 무시해 온 사람들은 이제 깨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고 그 중요한 일에 당장 집중해야 한다( 13:11 참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순간보다영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잠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는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늘 인식해야 한다.

 

 

당신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인가? 세상에 속한 자인가?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비디오 게임, MP3, 인터넷 등과 같은 매체들과 그 외에 다른 온갖 형태의 대중 매체들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과학 기술은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볼 수 없다. 다른 모든 여가 활동의 형태들 또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도리어 재미와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에게서 온 선물이라 말할 수 있고 또 누려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 속에도 미디어가 이끄는 엔터테인먼트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를 둘러싼 이 사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구별됨은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영역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사악한 정욕과 죄로 가득한 유흥에 따라 흘러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거룩한 길을 걷도록 초청받은 사람들답게 굳건히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라 할 수 없다( 17:14-16). 이것은 우리가 모든 종류의 영화를 선별하지 않고 보거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든 우스갯소리에 즐거워하거나, 새로운 음악을 전부 다운로드하거나, 모든 온라인 비디오를 클릭하거나, 모든 인터넷 페이지를 찾아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율법주의자로 살아가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자리에서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묵상해야 한다는 말이다.

 

-존 맥아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담임목사, ‘세상보다 나은 기독교’(생명의말씀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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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에스더 | 작성시간 12.06.13 평소 엔터테인먼트와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내게 허락된 시간과 물질, 주신 재능 등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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