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경의 사실성

존 D. 커리드, '성경의 창세기는 정말 고대 근동 신화들의 창조 이야기를 표절한 것인가?'

작성자Stephan|작성시간22.07.15|조회수67 목록 댓글 0

성경의 창세기는 정말 고대 근동 신화들의 창조 이야기를 표절한 것인가?

 

1

구약과 고대 근동 문헌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성경 연구 분야에서 많이 논의되는 어렵고 복잡한 주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둘이 서로 정확하게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관해서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못한다. 그중에는 분명히 극단적인 견해도 있다.

 

한쪽 극단에 있는 학자들은 고대 근동 연구가 구약을 이해하는 데 거의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며 사실 성경에 위해를 끼친다고 믿는다. 다른 극단에는 구약이 독특하지 않으며 단지 신화와 전설, 민간전승에 근거한 고대 근동의 문헌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진리는 두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다. 성경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배경이 고대 근동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며, 그 시대에 관한 연구는 구약에 대한 이해를 더욱 증진시켜준다. 그러나 구약의 세계관이 고대 근동에서 독특한 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구약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유일신 사상으로 즉시 확인된다. 이 맥락에서 현대인들이 품게 되는 의문은 구약과 고대 근동 문헌과의 관계가 정확하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2

창조주의 본질과 관련해서, 히브리 사회를 제외하고는 고대 근동의 사회들은 모두 다신론을 갖고 있었다. 신들은 내재적이었다. 즉 그들은 우주의 여러 능력과 요소 안에서 의인화되어 있었다. 이 신들은 전능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의인화하는 자연 요소의 능력만큼 그 힘이 제한되어 있었다. 또한 신들의 기질은 종종 인간의 본성을 반영했다. 따라서 신들은 부패하고 비뚤어지게 행동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히브리인의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로 제시된다. 즉 우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존재로 제시된다. 하나님은 우주 안에서 일하지만 우주의 일부분은 아니다. 우주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이 아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인간 본성이 지닌 단점들을 보이지 않는다.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 하나님이 인류의 형상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순수하고 공의롭고 의롭고 진실하시다. 야웨는 거룩하며, 전적 타자이시다.

 

고대 근동의 신들은 창조주-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이 신 기원설(theogony, 그리스어로 ‘신들의 출생’)은 신들의 계보, 기원, 그리고 신전과 계급 구조 안에서 신들이 가지는 위치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우주 창조 신화들에 중심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야웨는 실재하는 유일한 신, 영원한 신, 우주의 창조주로 묘사된다. 야웨는 신들을 생겨나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창세기 기사는 급진적인 일신론이다.

 

3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절정은 인류의 창조였다(창 1:26-28). 하나님은 인류를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만들었으며, 인류에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 땅을 지배하는 지위를 부여하셨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창조된 질서를 주관하는 특권을 주셨다. 인류 창조의 이런 목적은 다른 고대 근동의 창조 기사와 확연하게 다르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신들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단지 신들이 배정해준 노동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집트인들은 인간 창조에 대한 단독적인 혹은 정교한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의 기원에 대한 언급은 다른 주제들을 중심으로 한 문헌의 일부분이나 단순한 하나의 파편으로 발견된다. 이집트의 우주 창조설 안에서 인류의 창조는 히브리 기사에서처럼 중요하지 않았다.

 

4

고대 근동 우주 창조설의 저술 형태는 ‘신화적 내러티브’로 가장 잘 묘사된다. 이 용어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창조 기사들이 사실이나 역사에 확고한 근거를 두지 않은 전설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신들의 영역을 주로 다루는 원시 시대의 상징적 이야기다. 그것들은 이야기가 수직적으로 앞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만 내러티브이며, 역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 내러티브의 목적은 현 상태의 우주 질서와 의미를 설명하는 데 있다.

 

그와 달리, 창세기 1-2장은 히브리 역사 내러티브의 특징들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본문은 독특한 사건을 묘사하며, 그래서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다. 그 본문은 고상한 문체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역사적 내러티브다. 존 콜린스(C. John Collins)는 창세기 1-2장을 ‘고양된 산문 내러티브’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그것은 창세기 1-2장의 장르를 가장 잘 묘사한 명칭일 것이다. 이 묘사는 그 기사의 순서와 연대기 및 역사성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한편, 동시에 그것의 예외적 성질을 강조해준다.

 

5

창세기 1장 16절에서는 광원체들에게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순히 ‘큰 광원체’, ‘작은 광원체’, ‘별들’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그러한 성체들이 신의 이름을 가진 신격이라고 믿는 고대 근동의 세계관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종교를 명확하게 구분해준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는 여러 형체를 가진 태양신이 신들의 우두머리다. 여러 문헌에서 이 신은 자기 자신을 창조한 다음, 우주의 작은 신들을 생겨나게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히브리인들은 광원체가 생명을 갖고 있지 않은 단순한 물질이며 그것을 결코 숭배하면 안 된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신명기 4장 19절을 보라). 하젤(Hasel)이 말한 것처럼 “그것들은 모든 피조물의 피조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치적인 신성을 갖고 있지 않다.” 창세기 1장 14-19절은 고대 근동의 다른 문화에 반하는 의식적이고 강한 논쟁이다.

 

게르하르트 폰 라트(Gerhard von Rad)는 생각을 같이하여 “14-19절 문단 전체는 반(反)신화적 정서를 강하게 뿜어낸다”라고 말한다. 성경 저자들에게 있어서 광원체는 단지 창조된 것에 불과하며 단순한 물질이고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6

창세기 1장은 어둡고 신화적인 다신론과 완전히 대비된다. 성경 기사는 모든 실재의 유일한 하나님, 곧 한 분인 창조주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것을 그 주된 목적으로 한다. 창조에서 물은 분명히 신이 아니며(창 1:2), 물리쳐야만 하는 하나님의 적도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손 안에 있는 재료에 불과하다.

 

창조를 이루기 위해서 야웨와 혼돈의 신들 사이에 전쟁은 없다. 야웨는 주권자이며, 창조의 모든 요소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창세기 1-2장은 일신론을 철저하고 열렬하게 지지한다. 이 문헌은 다른 신들이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명백한 논쟁으로 그것들에 대항한다.

 

-존 D. 커리드,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새물결플러스)에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