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이 WCC 노선과 동일하다며 비난하는 분들에게 공유하는 글...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해묵은 논쟁의 영역에서 특히 조심할 부분'
작성자Stephan작성시간24.07.30조회수62 목록 댓글 0(로잔이 WCC 노선과 동일하다며 비난하는 분들에게 제가 쓴 짧은 댓글을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 이 공간에도 공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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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와 로잔을 함께 반대하는 분들은 제가 보기에 정동수 목사님처럼 환난 전 휴거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지지하되 현 시대에 방언 같은 성령의 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환난 전 휴거에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교회 다니는 기독교인이면 예외없이 누구나 다 들림받는 것이지 신자들 중에서도 깨어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은 신실한 이들만 휴거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 없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결국 방언을 인정치 않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의 신조를 고스란히 아주 강력하게 붙잡고 사는데, 저로서는 이 두 부분만 놓고 본다 해도 이들의 신조는 성경적이지 않다는 게 거의 명백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그 연장선상에서, 개인 구원만 주로 강조한 근본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종교 통합적이고 종교다원주의를 용인하는 WCC와 구별되기 위해 시작된 복음주의자들의 로잔 역시 도매금으로 매도하려 하는 건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겠지만, 그것이 온전히 성경적인 입장이냐 하는 부분은 보기에 따라 얼마든 정당하게 의문시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신복음주의)의 오래 묵은 논쟁의 영역이기 때문에 새삼 여기서 더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구약의 아모스서나 미가서 같은 책들에서 강조되고, 복음과 함께 떡도 제공하라는 주님의 말씀에도 구체적으로 제시된 복음의 사회적, 선교적 책임에 대한 실천 여부는 결국 주님 앞에 설 때 각자가 판단받게 될 신앙 양심과 복음적인 나눔의 삶의 영역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가톨릭에 포용적이고 타종교의 구원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빌리 그래함에 동조하지 않고, 지옥에서의 영혼 멸절설을 주장한 존 스토트의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이 WCC와는 다른 복음주의적 선교를 강조하기 위해 1970년대에 주창한 로잔까지 반대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 대회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선교 정책들이 제시되어 한국의 보수 교회들이 채택해온 발자취를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하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로잔의 두 주창자들이 그후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변질되었을 수도 있고, 향후 로잔 역시 변질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로잔 본부 측에서 자신들은 WCC와 노선이 다르며, 연합 차원에서 그쪽 사람들이 로잔에 참가했다고 해서 로잔이 WCC에 동조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근본주의적으로 일관된 입장을 기계적으로 이 부분에도 그대로 적용해서 반대할 뿐만 아니라 로잔 역시 WCC 노선과 같은 종교통합운동이라며 비난하려고만 하는 건 자칫 하나님 앞에서 부당하게 형제를 참소하는 중대한 범죄가 될 위험성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자신을 어떤 오염도 안 묻히고 깨끗하게 지키려는 소원 때문에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에게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 주의 복음을 전하려는 복음주의 형제들의 수고와 선교적인 노력을 너무 쉽게 폄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대적한 배교라고까지 비난하려는 것은 아직 너무 이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보다 더 경솔한 태도가 될 수도 있다고 느낍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로잔 역시 현재 복음주의자들의 대다수가 그러하듯 마지막때의 징조들에 둔감하고 종말론에서도 무천년주의가 많아 환난 전 휴거에도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훗날 얼마든 변질될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로잔 스스로 WCC와 다르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하며 많은 기도와 수고로 '복음 선교'를 위한 세계적인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함부로 자신들의 근본주의적 잣대 하나만 갖고 무차별하게 비난하는 태도로 일관하려는 것은 어쨌거나 아직 주님이 세상의 심판주로 오시기 전인 지금 이 땅에서 복음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증거되고 그로 인해 주의 나라가 한 뼘이라도 더 확장되기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도 합당하고 신중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제가 최근에 나눈 로잔에 대한 영상 아래의 댓글을 여기에 다시 공유해봅니다. 지금 이 문제에 대해 균형 잡힌 이해를 갖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들에 깨어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이 이것 저것 다 배격하고 기성 교회들의 대다수까지 다 배교의 무리로 몰고는 동굴 안에서 주님만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동성애와 같이 노골적인 세상의 배도나 자유주의, 다원주의를 용인하는 교회의 배교의 흐름에는 단호하게 저항하면서도 세상에서 교회가 맡은 빛과 소금의 역할과 같은 사회적 책임을 최대한 지혜롭게 잘 감당하면서도 영적으로 개인적으로 깨어 경건한 예배자,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 되어야겠지요.
로잔 운동에 대해 말이 많은데, 잘못된 경향성은 지적하되 무조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 운동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바리새적으로 정죄하고 배척하려고만 하는 태도는 지양하는 게 옳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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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 프레임은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성향이 목격된 나름의 경험치나 데이터를 근거로 한 것이어서 단순한 프레임 걸기 수준만은 아니라고 보는데,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고 여겨지네요. 이 용어나 표현이 언짢게 느껴졌다면 사과드립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지금 이 주제는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해묵은 논쟁의 영역이어서 여기서 댓글 정도로 논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닐 듯합니다. 각자가 주님께서 불러주시고 알게 해주신 만큼 자기 자리에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시되 벌써부터 로잔 운동 때문에 복음주의 교회들이 예수님의 유일성을 조만간 타협하게 되기라도 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개개인의 성향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친 오버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식의 노파심이 지나친 경고나 위협 때문에 한국교회의 대다수 정통 교회들이 WCC나 WEF에 가입되어 있는 현실에서 일종의 이른 공포감으로 인해 멀쩡하게 교회를 잘 다니던 사람들이 막연하게 다니던 교회를 나와 가나안교인으로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비판이 지금은 많습니다.
이것이 대다수 한국교회를 미리서부터 배교의 무리로 몰아가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지나친 근본주의적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WCC나 WEF에 교단적으로 속한 교회들 가운데도 깨어 있고자 몸부림치는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도매금으로 일반화시켜 정죄하고 심판하는 지나친 바리새적 분리주의가 낳은 부작용이나 폐해가 비본질적인 영역에서 상상 외로 많다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마지막때에 주의 재림과 그 징조들에 깨어 있자고 말해야 할 신자들은 특히 이 부분에서 더욱더 신중해야 하고 말도 지혜롭게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쉽게 기성 교회들을 비난하고 정죄해버리는 가운데 마치 교회가 속한 세상을 등지는 게 성경적인 길인 것처럼, 스스로 세상 속의 빛과 소금으로 살기를 포기하는 것이 순결한 신부의 영성을 지키는 태도인 것처럼(그리고 때로는 세속적인 교회들 속에서 깨어 있는 빛과 소금으로 살기를 쉽게 포기하고 그 속에서 구분되는 힘든 길보다 거기로부터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나오기만 구하는 게 능사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 때문에 종말을 일깨우고자 하는 중대한 진리의 이야기도 함께 도매금으로 무시당하고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물론 로잔이 WCC와 다르다고 주장하려면 WCC를 탈퇴하고 그렇게 주장해야 한다는 데는 저도 공감합니다. 성경이 마지막때의 교회의 배교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독교 기구들은 그 흐름을 결국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지금의 상황에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래의 배교를 염려해 지금부터 안으로, 안으로만 계속 움츠러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아직 배교가 노골화되지 않은 지금은 바울의 말대로 어떤 방편으로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어 그들을 얻는 복음 전도에 주님 오시기 전까지 최대한 효과적으로 최대한 폭넓게 최선의 정성을 다해 힘써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이곳 지체님들의 복음을 위한 충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밖에서 보면 이런 측면도 있다는 걸 이쯤에서는 잠시 헤아려봐두는 것도 균형을 잡는 데 유익하리라 믿습니다. 주님은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눅 21:9)고 말씀하셨습니다. 징조가 임박해보일수록 호흡을 더 깊게 들이마시며 눈을 들어 멀리 내다보며 보폭을 좀더 촘촘히 가다듬는 부분도 동시에 준비해야 쉽게 시험에 들거나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며 끝까지 좁은 생명길을 걸어가게 된다고 믿습니다.
- 안환균 목사의 페이스북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