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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영성

할렐루야교회 김승욱 목사 설교론 인터뷰, '목자의 소명에 충실한 확신 넘치는 강해'

작성자Stephan|작성시간16.03.09|조회수375 목록 댓글 1


김승욱 목사 설교론 인터뷰


목자의 소명에 충실한 확신 넘치는 강해



1. 가장 인상적인 설교 피드백이 있다면 어떤 것을 드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나에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이런 피드백을 들을 때 가장 감사합니다. 이런 반응을 접할 때 신학자나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양을 먹이는 목자로서 설교가 제대로 준비되고 전달되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거던요.


하나님께서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 말씀을 주고자 하실 때 보통 '목자'라는 미디엄을 통해 전달하십니다. 예언자를 통해 예언을 전하시고 선교사를 통해 선교하시고 신학자를 통해 신학을 세워나가신다면, 목양의 말씀은 목자를 통해 전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피드백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행복합니다.



2. 설교자로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설교자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습니까?


주로 미국교회 설교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과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을 통해서는 본문 중심의 강해설교가 지닌 매력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가 성도들 앞에서 정말 파워풀하고도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실천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통로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것도 배웠지요.


달라스신학교 총장을 지낸 척 스윈돌 목사님을 통해서는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적절한 단어 선택, 그리고 살아 있는 적용이 잘 배합된 강해설교의 모범적인 모델을 접했고, 잭 헤이포드 목사님을 통해서는 목자의 마음을 갖고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저는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을 때 그 중심의 ‘하트’(heart)와 ‘스피릿’(spirit)을 포착하고 느끼는 데 집중합니다. 머리로 분석하려 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받아들여 영감을 얻는 데 초점을 두지요.


개인적으로 미국교회 설교자들의 설교가 마음에 더 와닿지만, 우리 교회에 부임해 2기 사역을 시작하면서 한국교회 설교자들의 설교도 많이 들으려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설교자는 김삼환, 옥한흠, 김진홍 목사님입니다.


김삼환 목사님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수수한 설교를 하시면서도 영감이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자의 소명(calling)에 충실한 설교를 하십니다. 옥 목사님께는 설교자의 소명감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가진 자세가 너무도 뚜렷해서 설교자로서의 무겁고도 진지한 사명을 늘 새롭게 일깨워줍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삶의 영성에서 흘러나오는 설교, 깊은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통찰을 느끼게 해주는 설교를 하시지요.



3. 설교자로서 그동안 어떤 변화와 성숙의 과정을 거쳐 오셨는지요?


설교는 실제로 많이 해보면서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28세 때부터 담임목회를 해오면서 원하든 않든 꾸준히 어른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해왔습니다. 부족하지만 그 시간들 자체가 저를 한 사람의 설교자로서 빚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설교자로서 나의 성품과 성향, 기질, 나의 음성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데, 설교는 나에게 주어진 바로 그 독특한 은사와 '칼라'(color)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설교자에게 중요한 자세 세 가지를 나름대로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목회자로서 설교자는 성도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compassion)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 없이는 목자로서 설교할 수 없습니다. 신학자나 웅변가의 연설은 할 수 있어도 설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설교자인 나 자신이 확신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설교에다 잡다한 액세서리를 집어 넣으려 합니다. 안 그러면 불안해지니까요. 그러나 설교자로서 말씀 자체를 신중하게 연구해서 전하면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십니다.


무엇보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보내는 1주일 동안 삶의 현장을 통해 영감을 주셔서 설교를 만들어가게 하십니다. 정해놓은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묵상해가는 동안 내가 접하는 뉴스나 목회자로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의 간증 등을 통해 예화가 연결되고 설교의 인사이트가 풍성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이렇게 목회자와 설교자로서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삶 자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설교를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준비하는 설교자는 일상적인 자신의 삶과 사역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한 주간 내내 읽은 책과 만난 사람, 접한 뉴스들이 주말쯤 설교를 정리할 때 모두 제자리를 찾아 들어옵니다.


물론 그 주일 설교 주제와 관련된 책을 의도적으로 골라 읽기도 하지만,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에 목회자로서 행하는 모든 일, 곧 독서와 심방, 가르침 등 모든 활동이 설교의 재료가 됩니다. 지금 저는 우리 교회에서 사역반 4개, 순장반 2개를 맡아 가르치는데,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이런 가르침의 사역까지도 설교 준비 과정에 들어간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주석 앞에만 있어서는 제대로 설교를 준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목회를 열심히 하다보면 그 모든 것이 설교 준비 과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삶과 사역에 충실한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씀 그 자체로 돌아가 실제로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주석이나 다른 여러 자료들을 전문적으로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하고, 엉덩이를 의자에 단단히 붙이고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죽는다”는 각오까지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자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말이나 어떤 성현의 말이 아닌 위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연구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일주일 내내 삶과 사역으로 하나님께서 준비시켜오신 것에다 말씀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결합되어 한 편의 살아 있는 목회자의 설교가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셋째, 특정의 본문 말씀을 들고 특정한 시점에 설교자가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가운데서 행해지는 일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설교자가 전하는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성도들이 바로 그 시점에 꼭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에게 이런 확신이 없으면 권위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 전하는 이 말씀이 성도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그들이 바로 지금 반드시 듣고 행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확신이 있어야 설교에 권위가 섭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설교 본문을 정하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철저한 준비를 거쳐 강단에 섰을 때 비로소 그 설교가 가치있게 된다고 믿습니다.


설교자에게 이런 확신이 있는가 없는가는 설교를 듣는 청중들이 다 느낍니다. 설교자 자신도 "이 말씀은 내가 준비한 설교다"라는 정도의 자세만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한다면 그것은 '원만한 설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권위있는 설교는 다릅니다.


이런 권위가 없을 때 설교자에게 일탈 현상이 나타납니다. 인간적으로 감동을 주고 웃기고 '엔터테인먼트'를 전달하려는 쪽으로 기울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에서는 때로 이런 양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유머나 예화가 정도를 넘어 설교의 주된 흐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설교를 들은 성도들에게서 "좋은 설교, 감동적인 설교였다"는 말은 들을지 몰라도 "오늘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내게 말씀해주셨다"는 말은 듣지 못할 겁니다. 그저 '좋은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의 차이는 마치 강물에 작은 돌을 던지는 것과 큰 바위를 던지는 것의 차이와도 같다고 믿습니다.


설교자는 늘 청중들의 삶의 필요가 무엇인지, 무슨 일로 도전받고 고민하고 부대끼며 살아가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의 삶의 컨텍스트에 맞게 충실히 전하기 위해 그들의 삶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설교하는 것과 그들 자체에 포커스를 두고 그들에게 감동을 끼치려는 목적으로 설교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나 목자로서 청중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확실하게,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그 틀 안에서 보조적으로 돕는 것이라면, 유머든, 흥미로운 예화든 그 어떤 것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오버'하지만 않는다면요.



4. 설교를 발전시키기 위해 평소 어떤 피드백 장치를 활용하고 계십니까?


설교자는 가까이에 영성이 깊은 사람들을 두고 자신의 설교에 대해 정직한 피드백을 정기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내가 신뢰하고, 또 내가 듣기에 어려운 말까지도 서슴없이 해줄 수 있는 사람, 진실한 조언자를 두어야 합니다.


물론 잘한 부분에 대해 칭찬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쳐야 할 부분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충언을 듣다보면, 사람들의 울고 웃는 반응, 은혜 받았다고 말해주는 반응 등에 상관없이 그것을 초월하여 설교에 대해 굉장히 자유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피드백이 갖는 힘이지요.


개인적으로 필라델피아에서 목회할 때 선배뻘 되는 협동목사 한 분이 제게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정말 큰 도움이 되더라구요.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어떻게 하면 말씀에 진지해질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해 귀한 깨달음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언자는 반드시 영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기도를 많이 하고 평소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그분의 임재의 영광을 맛보며 그 실체가 어떤 것인지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진실한 임재가 있었는지 여부를 정확히 피드백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5. 실제로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이 참고하시는 자료는 어떤 게 있나요?


실제로 책상에 앉아서 설교 아웃라인을 잡고 원고를 쓰고 하는 과정에 들이는 시간은 약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 됩니다. 일주일 중 대체로 목요일 낮부터 토요일 밤까지 준비합니다.


설교 본문이 정해지면 저는 본문을 개인적으로 읽고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본문의 맥락과 주된 테마를 잡기 위해 'NIV 스터디 바이블'과 'NIV Application(적용) 바이블'(시리즈)을 주로 참조합니다. 이 책들은 본문이 왜 그 자리에 있고, 기록될 당시의 청중들에게 무슨 말씀을 주려 했고, 오늘날의 청중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록되었는가를 알게 해줍니다.


또한 본문의 맥락을 살피는 가운데 강조되는 단어들에 대해 원어를 찾아보면 당시의 컨텍스트에서 본문의 맥락이 던져 주는 특유의 뉘앙스와 흐름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원어 연구의 큰 장점이지요.


'NIV 스터디 바이블'은 최초의 컨텍스트에서 본문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게 해주고, 'NIV Application 바이블'은 그 전체 맥락에서 현재의 청중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맥락과 흐름을 잡는 데 귀한 인사이트를 줍니다. 거기서 더 깊이 '다이빙'해 들어갈 해석상의 문을 열어주고 동기를 부여해주는 거지요.


그러나 참고자료는 본문의 기본적인 맥락과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데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본문을 연구할 때 주석부터 먼저 참조하는 것을 피합니다. 처음부터 너무 관점이 좁혀지고 창의적인 상상력이 제한되어버리기 때문이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본문 말씀을 통해 나에게만 직접 주시는 은혜를 놓치게 합니다.


이것은 제가 설교를 준비할 때 큐티의 역할을 특별히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설교자의 마음에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소원'(heart)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특정한 때, 특정 교회의 목회자로서 설교자가 먼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아야 할 은혜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 은혜를 개인적인 묵상의 시간을 통해 누려야 한다는 거지요.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 주석은 그야말로 참조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설교의 내용에 혹여라도 신학적인 오류나 오해는 없는지,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는지를 살피는 도구이지요. 개인적으로 'BST(Bible Speaks Today)' 시리즈나 틴데일(Tyndale) 주석과 같이 말씀 자체를 원어에 충실하게 풀어주되 학적으로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 주석을 즐겨 봅니다. 신학자의 주석보다는 실제로 현장에서 강해설교를 깊이있게 하시는 목회자들의 주석을 선호하는 편이지요.


 

6. 그러면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설교 원고를 완성해나가시는 과정을 설명해주시지요.


본문이 정해지면 본문을 여러번 읽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을 설교 본문으로 정했다면 3장이나 5장에는 무슨 내용이 있고, 갈라디아서 전체에서 이 본문의 자리는 어딘가를 살핍니다.


개인적인 묵상을 진행하며 스터디 바이블도 함께 참조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그 본문을 통해 내게 주시는 '메인 포인트'(main point), 즉 주된 요지와 테마가 무엇인지를 찾게 됩니다. 저는 설교 초반에 성도들에게 이 과정을 말해주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뜻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제게 전해주셨는가를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거지요. 그만큼 설교중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첫 번째 과정이 끝나면, 두 번째 과정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본문의 메인 포인트가 어떻게 정해진 본문 전체에서 발전되고 심화되어 있는가를 찾는 과정입니다. 메인 포인트를 먼저 잡고 나면 그것이 본문 전체에 어떻게 유기적으로 녹아 있고 스며들어 있는가를 찾는 과정에서 '서브 포인트'(sub point), 그러니까 부차적인 요지들을 자연스럽게 발견하여 정리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이것들을 성도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게 할 것인가를 찾는 마지막 과정을 밟게 되지요. 기본적으로 저는 적용 포인트가 너무 많으면 성도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이 그 날의 전반적인 설교 가운데서 쭉 감동을 받아왔다면, 그 자체로 나름대로 결단하고 적용하는 데 충분한 도전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메인(main) 적용은 마지막에 하나로 던지면 충분하다고 보는 거지요.


물론 경우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교를 하면 할수록 적용점을 복잡하게 여러 가지로 던져주려 하기보다 설교 전체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 한 가지 핵심만을 인상깊게 던져주는 게 가장 파워풀하다는 것을 더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그 하나를 드라마틱하게 마음속에 품고 돌아갈 수 있게 한다면, 그 적용점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야 할지는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설교를 작성하는 단계는 크게 다섯 가지 단계입니다. 첫째, 본문에서 메인 포인트가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둘째, 메인 포인트를 뒷받침해주는 서브 포인트들을 잡습니다. 셋째, 적용을 위한 아웃라인을 정리합니다. 넷째, 예화를 찾고, 마지막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저는 서론에는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때도 많고, 서론을 사용하는 경우도 노트를 해뒀다가 간단하게 제시하며 들어갑니다.



7. 설교 속의 예화를 찾는 데 목사님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주로 본문에서 메인 포인트와 서브 포인트, 그리고 적용을 위한 아웃라인까지 잡은 뒤 설교 준비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 가서 예화를 찾는 편입니다. 먼저 예화를 어디에 넣어야 할 것인지를 정하고 그 맥락에 맞는 적당한 예화를 찾습니다.


저의 삶에서도 찾고, 그 주간에 읽은 책 속에서도 찾습니다. 또 그 주간에 경험한 일들,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화제가 된 뉴스 등에서도 찾지요. 이런 예화거리들은 그때그때 접하는 대로 메모를 해둡니다.


책에서 예화를 발견하면 마크를 따로 해뒀다가 나중에 설교를 준비할 때 그 부분을 사용합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Our Daily Bread' 같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즐겨 활용합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예화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너무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이 많아서 그리 신선하거나 감동적이지도 않지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예화가 가장 좋고, 그 밖에 책들 속의 이야기나 특히 다른 목회자들의 칼럼이나 설교 같은 데서 실제적인 예화를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예화거리들을 선별하는 첫째 기준은 '먼저 나한테 은혜가 되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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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최종적으로 설교 원고를 작성하고 전달하는 과정에는 어떤 점에 특히 유의하십니까?


설교 원고를 쓸 때 저는 설교에서 전달할 한 마디 한 마디를 일일이 다 적습니다. 성도들의 입장에서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사용하는 데 특히 신경을 씁니다. 원고를 쓸 때 먼저 한국어로 다 쓴 뒤에 같은 설교를 영어로도 작성해서 HolyWave 예배에서도 전합니다.


저는 보통 설교 원고를 최대한 신중하게 다 쓴 다음에는 전체 원고를 세 번 정도 읽습니다. 원고를 완성한 후에는 그 단계를 거치기까지 이미 많은 연구와 묵상이 입혀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 때쯤엔 세 번 정도만 읽어도 거의 다 외워지지요.


그리고 그 원고의 내용을 토대로 전체 흐름을 그림으로 요약합니다. "이렇게 시작하고 이쯤 와서 메인 포인트는 뭐고 여기서는 이것을 전한다"는 식으로 전체 맥락을 통째로 외웁니다. 이것 또한 몇 번 훑어보면 저절로 외워지지요.


이렇게 설교의 전체 그림을 가슴속에 넣은 뒤에는 그냥 '렛고'(let go)해버립니다. 그 다음부터는 설교 원고로부터 자유해져버리는 거지요. 그러고 나서 강단에 서면 설교가 내 살 속에 배어 있어 그 살에서부터 직접 말들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원고 속의 문자들을 떠나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해주시는 흐름을 민감하게 따르면서 자유함을 누리는 가운데 설교하지요.


성도들을 향한 깊은 긍휼(compassion)과 확신(conviction)을 갖고 설교를 전하면 성령님께서 내가 준비한 만큼 빠짐없이 전하게 해주십니다. 말씀을 놓고 씨름한 만큼 성령님이 자유함을 주셔서 남김없이 준비한 것을 다 전하게 해주시는 거지요.

 

9. 평소 설교자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오신 게 있다면 말씀해주시지요.


설교자가 성도들을 말씀으로 '조정'(manipulate)하려는 자세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전하는 설교를 통해 성도들의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보려는 도구로 설교를 사용해선 안 됩니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부흥사들이 흔히 하는 식으로 헌금을 강요하는 데 말씀을 이용한다거나 지나치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설교는 '영적인 협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강대상을 공개적으로 성도들을 나무라는 장소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거지요.


무엇보다 설교할 때는 설교자 자신이 아닌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게 해야 합니다. 설교자 자신이 나서서 성도들의 마음에 개입하려 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설교자의 인격과 '인테그리티'(integrity)로 설교를 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10. 그렇다면 목사님이 설교를 전하시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설교하는 동안 설교자는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강하게 임재하시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잘 압니다. 그 임재하심의 모멘트를 늘 갈망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그 순간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설교하면서 계속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는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 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친히 말씀해주십시오."


설교는 은사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설교자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불을 주십니다. 설교의 은사가 많은 사람이 설교할 때 불타지 않으면, 설교의 은사가 적은 사람이 설교할 때 불타는 것만 못합니다. 그 불은 설교자가 겸손할 때 주십니다.


설교자가 받는 가장 큰 시험 중 하나는 자기 스스로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게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를 전하기 전과 설교를 전하는 중, 그리고 설교를 다 전한 후에까지도 철저히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설교자 자신의 자아가 중심이 되는 교만한 설교와도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중에도 의식적으로 이 싸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계속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없어져야 합니다. 지금 교만해지려는 나의 마음을 다스려 주세요. 내가 없어지고 주님만 드러나고 높아지셔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다보면 이것이 마음속에서 거의 무의식적인 리듬처럼 자리 잡습니다. 이 리듬은 멜로디와도 같은 설교자의 음성과 합하여져 결국 설교를 기름부음이 넘치는 성령님의 통로로 지어가지요.


이것은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때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치다가 나중에는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연주해나가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설교자는 이런 식으로 교만한 마음을 없애달라고 설교중에라도 계속 간구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11. 이민교회의 1.5세 목회자로서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지요.


미국의 한인 이민교회 1.5세 목회자는 한국과 미국의 양쪽 문화를 다 이해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각 문화의 컨텍스트에 맞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민감하지요. 그만큼 설교할 때도 그들 각각의 정서에 공감하면서 예화나 표현들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양쪽 문화를 다 경험했다는 것이 양쪽 다 조금씩 부족하다는 핸디캡으로 작용하진 않는다고 느낍니다. 오히려 양쪽을 다 알기 때문에 그들 각자의 배경과 정서를 민감하게 살펴 접근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민교회의 1.5세 목회자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설교는 전형적인 한국인 설교도 아니고 전형적인 미국인 설교도 아닌 듯하지만, 이중문화 한가운데서도 한국인 특유의 맛과 향취가 녹아 있습니다. 1세는 1세 식으로 설교하고, 1.5세는 1.5세 식으로 설교한다고 말하기보다는 각자 받은 은사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족함 없이 충실하게 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 각자의 신학이 어떠냐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들에게 가장 큰 그림은 성경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성경론입니다. 또한 그 안에서 교회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교회론이 설교의 성격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그 바탕에다 각자의 인격과 기질, 자라온 배경, 자신만의 표현이나 분위기, 이런 것들을 강점으로 활용해서 설교를 전하면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말씀의 종으로서 모두가 다 귀하게 쓰임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글 / 안환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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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teph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3.09 제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사역자로 섬긴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꽤 오랫동안 함께 동역했던 김승욱 목사님의 설교론 인터뷰 기사입니다. 목사님은 당시만 해도 신출내기 사역자였던 제게 하나님 중심의 깨끗한 영성을 키워갈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많이 주셨던 분입니다. 이제 저 역시 한 교회의 설교자로 섬기게 되면서 다시 그때 제가 목사님과 만나 대담을 나누고 글로 옮긴 인터뷰 기사를 대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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