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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영성

바버라 애런라이크, ‘불안감에 근거한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작성자Stephan|작성시간16.07.22|조회수127 목록 댓글 1


1.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지도 않고 가장 부유한 것도 아니라면 어째서 그토록 긍정적인 자아상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실은 긍정성이 실제 상태나 기분이 아니라, 세상을 설명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이데올로기의 일부라는 것이 이 물음의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데올로기란 ‘긍정적 사고(positive thinking)이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지금 이대로 아주 좋다는, 긍정적인 생각 그 자체를 뜻한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려고만 한다면, 시련에서 전화위복의 계기를 찾으려고만 한다면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는 낙천주의이지, 희망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희망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감정 상태이자 갈망이다. 반면 낙천주의는 인지 상태이며 의식적인 기대이므로 누구든 수련을 통해 개발할 수 있다.  

긍정적 사고에 담긴 두 번째 의미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데에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낙천적인 감정을 갖게 될 뿐 아니라 실제로 행복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인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그런 결과가 생겨날까? 심리학자들은 낙천성이 건강과 개인의 능력, 자신감과 유연성을 증진시켜 목표를 더 쉽게 달성하게 해준다고 설명한다. 

한편에서는 합리성과 거리가 먼 이론도 유행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물질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으로, 부정적인 생각은 아무튼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긍정적인 생각은 건강과 부, 성공이라는 형태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이론과 신비주의 이론 모두 긍정적 사고를 위한 노력에 시간과 관심을 쏟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적절한 책을 찾아서 읽고, 세미나에 참석하고, 정신수련법 강의를 듣고, 좋은 직업과 매력적인 배우자와 세계 평화 같은 바람직한 결과에 생각을 집중해 혼자 수련을 하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는 불안이 놓여 있다. 긍정적 사고가 올바른 것이어서 모든 일이 좋아질 것이고, 우주가 행복과 충만함으로 향하고 있다면 굳이 긍정적 사고 훈련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저절로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해진다.


긍정적 사고를 위한 훈련은 수많은 모순적인 증거에 직면한 상황에서 믿음을 주입하기 위한 것이다. 긍정적 사고 훈련의 교사를 자처하는 이들(코치, 설교가, 갖가지 명목의 권위자들)은 이런 훈련에 ‘자기 최면’, ‘마인드 콘트롤’, ‘생각 조절’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는 불쾌한 가능성과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차단하려는 쉼 없는 노력, 곧 고의적인 자기 기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참으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 이 세상과 화해하고 자신의 운명과 화해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통제하거나 검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긍정적 사고는 개인 및 국가 차원의 성공과 결부된 미국적 행동 양식의 정수이지만 그 근원에 놓인 것은 무시무시한 불안감이다. 






2.

모든 면에서 볼 때 요즘 가장 잘나가는 설교사들은 긍정적 사고를 전파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더 이상 죄를 언급하지 않으며 기독교 우파의 단골 속죄양이었던 지옥의 위협과 구원의 약속은 사라졌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신복음주의 초대형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찾아볼 수 없다. 

초대형 교회의(그리고 많은 작은 교회의) 새로운 긍정신학은 고난과 구원에 관한 참혹한 이야기나 가차 없는 심판을 접어두고 현생에서의,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한 부와 성공과 건강을 약속한다. 당신은 새 차와 새 집, 탐내던 목걸이를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번창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2006년 ‘타임’ 조사에서는 종파나 교회 규모를 막론하고 미국 기독교인들의 17퍼센트는 자신이 ‘번영신학’(prosperity gospel) 운동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며, 61퍼센트가 ‘하나님은 사람들이 번창하길 바라신다’는 서술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당신의 삶에 번영이 현시되도록 할 수 있는가? 기도와 같은 고전적 방법이 아니라 긍정적 사고를 통해 가능하다. 초대형 교회의 메시지에 관한 언론의 보도를 보자.

“동기 유발 강연과 유사하게 설교는 대개 성공적인 삶을 위한 방법, 다시 말해 ‘예수는 긍정적 사고의 힘을 마중한다’는 내용이다. 들뜨고 고무된 신도들은 음악이나 비디오에 맞춰 한 몸처럼 움직인다. (이런 식으로 예배가 진행된 후에 청중이 가장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암울한’ 설교인데) 초대형 교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설교 내용은 좋은 마음가짐을 유지하라, 부정적이거나 신랄한 태도를 버려라, 단호히 결심하라, 떨쳐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등이다.”

TV 설교사 조이스 마이어(Joyce Meyer)는 “우리가 살아갈 삶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태도라고 나는 믿는다”고 썼다. 경건함이나 신앙심이 아니라 ‘태도’라고 했다. 마이어는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긍정적이시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부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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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teph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7.22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만 가지면 모든 일이 잘 될 거란 생각이 교회 안에도 많이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내가 할 일을 하나님께 떠넘기고 좋은 결과만 얻겠다는 기복주의 태도와도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이러다보니 믿음마저도 누구든 수련을 통해 개발할 수 있는 삶의 태도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쉬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 작가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미국 초대형 교회들을 포함해 미국 사회의 객관적인 자료와 세태들을 근거로 긍정적 사고의 진짜 속내를 파헤친 책 ‘긍정의 배신’의 한 대목을 함께 나눕니다. “고의적인 긍정적 사고의 뿌리에는 무시무시한 불안감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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