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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영성

필립 얀시,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다'

작성자Stephan|작성시간18.04.21|조회수64 목록 댓글 0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전도서를 본뜬 풍자문을 쓴 적이 있다. “내가 보니 인생의 의미는 생계를 든든히 하는 것이요, 그 목표는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요, 사랑의 소중한 꿈은 상속녀와의 결혼이요, 우정의 축복은 재정적인 곤경에 처했을 때 얻는 도움이요, 지혜는 다수가 옳게 여기는 바요, 열정은 연설에나 필요한 요소요, 10달러의 손해를 무릅쓰는 것이 용기이며, 친절은 저녁 식탁에서 많이 드세요하고 말하는 것이요, 경건은 1년에 한 번 성찬에 참석하는 데 있도다. 이것을 보고 내가 웃었노라.”

 

현대에도 이와 유사한 가치관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몇 분만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면 허벅지 살을 빼준다거나 금세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광고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중잡지에 실린 광고를 살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정말 가글액이나 맥주를 바꾸면 고독이 해소되고 지금껏 찾지 못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고 믿을까? 그러나 또 다른 세계에 비춰 내 삶을 살펴보면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내 행동이 보이는 세계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것을 따르고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보이는 세계 한복판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주위의 문화에서 벗어나 함께 모여 살면서 기도와 예배를 중심으로 하루를 꾸려나가는 수도사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하루 종일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려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그 역사 속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을 잊지 않는 데만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평신도 수도사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는 일에 대한 책을 썼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함은 물론이고 아예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 때가 많은 듯하다.

 

-필립 얀시, <수상한 소문>(포이에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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