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기독교 신앙과 영성

박영선, ‘도덕적 당위와 나의 생각에서 출발한 기독교 신앙으로 살고 있진 않는가?’

작성자Stephan|작성시간22.11.17|조회수51 목록 댓글 0

박영선, ‘도덕적 당위와 나의 생각에서 출발한 기독교 신앙으로 살고 있진 않는가?’

 

저는 도덕성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 많은데, 제가 그들을 없애 버리지 않는 이유는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참고 있는 것입니다. 도덕성 때문에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주이시며 대장이시기 때문에 대장 앞에서 꼼짝 못하는 것뿐입니다.
 
납득이 되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꼼짝을 못해서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합니까? 제가 하나님이라면 싹 쓸어버릴 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없이 참고 있습니다. 저는 납득이 되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분을 믿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옳다는 생각으로 믿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원수만 보면 배 속에 회충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참으라고 하셨기에 할 수 없이 참습니다.
 
거룩해서 참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를 잘 압니다.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꺼져가는 등불’임을 압니다. 오늘도 저를 살펴보면 좌절할 것밖에 없습니다. 모골이 서늘해지는데도 하나님이 참으라고 하셨기에 이를 악물고 참습니다. 내가 납득한 것이 내 신앙의 근거가 아닙니다. 이것은 권위와 관련된 것입니다. 저는 다만 권위에 복종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사람들 앞에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신성한 일의 대변자입니다. 그래서 훨씬 훌륭하고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언행과 심성이 훌륭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 중에 괜찮은 조건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증명하는 직업이 목사이기도 합니다. 물론 목사는 많은 부분에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더 충성하여 성도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로 하나님 앞에 부름받아 나온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좌절할 수 없음을 깨닫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희를 영광과 존귀의 자리로 불렀노라”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가 그 자리에 도달할 자격이나 능력이 있지 않음을, 그것은 우리가 싸워서 쟁취해야 할 열매가 아님을 먼저 가르쳐 줍니다.
 
목사는 그 부분에서 한 걸음도 앞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제 제가 꺼져가고 있습니다. 제 심지가 거의 다 타버렸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끄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실지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배짱이 있습니까? 이것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적용하지 않을 사람은 예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신앙이 아니면 자기기만, 자기최면, 자기 위로에 불과합니다. 단지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져서 평정심을 얻고 싶은 정신적 도피에 불과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방법에 삶을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자리에 있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잘난 자리에 있을 때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출발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시작하셔서 우리를 끌고 오신 중간 지점입니다. 어디서부터 끌고 오셨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출발 지점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거기서부터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삶을 과감하게 맡길 수 있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 결심이 없다면 죽는 날까지 생을 허비할 것입니다. 그런 불행도 없습니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오늘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며 목적지를 향해 어떻게 가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이끄실 것입니다. 이는 신자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배짱입니다. 이 약속을 받지 않은 자들은 그 길이 두렵겠지만, 신자에게는 한없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여 목적하신 자리로 이끄신다는 약속보다 더 큰 위안과 자랑은 없습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을 믿고 삽니까? 도덕적 당위와 나의 생각에서 출발한 기독교 신앙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제가 이 꼴인데도 그런 약속을 선포하십니까?” 하는 아우성이 없는 사람은 아직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좌절할 일이 아닙니다. 이 지점이야말로 신앙으로 들어가는, 필연적으로 지나야 하는 관문입니다. 여기를 통과하십시오. 이 자리는 불신앙의 자리가 아닙니다. 나를 버리고 하나님 품에 뛰어들기 전에 딛는 디딤돌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복된 자리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새로운 출발 지점이 되고 새로운 힘이 된다는 사실을 성경이 증명합니다. 이 신앙을 시작하십시오.
 
-박영선, <구원 그 이후>(무근검)에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