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하나님은 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세계를 만드시지 않았나?'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자유롭게 구원받는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그러한 세계를 창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세계가 실현 가능했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창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유로운 창조물을 창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누군가는 하나님 자신과 그분이 애쓰는 모든 노력들을 자유롭게 거절하고, 따라서 구원받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왜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않고 구원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 세계를 창조했는가? 하나님은 창조된 인간에게 자신의 사랑을 나누고, 또한 교제하길 원했다. 하나님은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거절하여 구원받지 못함을 의미한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은혜를 자유롭게 받아들여 구원을 받게 될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행복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거절하는 사람으로 인해 제한받아선 안 된다.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자유롭게 거절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세계를 창조할 것인지에 대해 거부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자비 안에서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를 최대로 증가시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를 최소화시키며, 구원받은 자와 받지 못하는 자의 최적의 균형을 조정했을 수 있다.
일반계시는 거부했어도 만약 복음을 들었다면 받아들였을 법한 사람들에게 왜 하나님은 복음을 주지 않았는가? 그러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섭리를 통해 복음을 들었다면 반응했을 사람만이 복음을 듣도록 세계를 조정했다. 통치하는 하나님은 복음이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뻗어 나가도록 인간의 역사를 조정했고, 복음을 들었다면 반응했을 사람을 섭리를 통해 그곳에 두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과 자비를 통하여, 복음을 믿을 모든 사람이 그것을 듣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태어나게 했다.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계시와 양심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복음을 들었다 해도 거기에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역사적 혹은 지정학적 우연 때문에 구원을 잃지 않는다. 구원을 원하거나 구원을 원할 모든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복음주의 변증학>(CLC)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