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설교문은 강경한 문장이었다. 그는 먼저 칼빈의 예정론을 요약한 다음, 칼빈주의의 주요 교리인 무조건적 선택론, 불가항력적 은총론, 성도의 견인론 등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그가 칼빈주의를 반대하는 근본적 이유는 그것이 반성서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성경이 예정론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진리라고 주장하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 성경적 근거는 살얼음 같이 약할 뿐만 아니라 참된 성경적 진리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특히 예정론이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권을 강조한 나머지, 그의 사랑과 정의가 무시되어 균형을 잃은 괴상한 하나님 상을 제시한다고 공격했다. 그의 설교문은 예정론을 규탄하는 한편, 구원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지고, 모든 것이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Free in all, Free for all)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모두 그에게 올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은총은 그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예정론을 반대하는 웨슬리의 설교문을 읽은 조지 휫필드는 격노했다. 아메리카(이때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에 잠시 가 있던 그는 거기서 웨슬리의 설교문을 읽었고,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이에 대한 반박문을 작성했다. 이 반박문은 그가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인쇄되어 1741년 2월 1일에 주물공장에 예배 보러 모인 웨슬리의 교인들에게도 배포되었다.
이것을 본 웨슬리는 설교를 마친 후 “나는 휫필드 목사가 여기 있었다면 이렇게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휫필드의 반박문을 찢어버렸다. 그러자 교인들도 그를 따라서 다 찢어버렸다. 웨슬리는 그날 반박문이 배포된 것은 휫필드가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열성 칼빈주의자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웨슬리와 그의 교인들이 그의 반박문을 찢었다는 소식을 들은 휫필드는 더욱 격분하여 노골적으로 웨슬리를 규탄하는 또 하나의 공개장 ‘웨슬리 목사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라는 설교에 대한 답변서’(A Letter to Rev. Mr. John Wesley in Answer to His Sermon Entitled Free Grace)를 발표했다. 웨슬리는 정당하고 공정한 논쟁을 반대할 이유는 없었으나, 그가 휫필드의 공개장을 유감스럽게 생각한 까닭은 휫필드가 웨슬리의 형제의 이름을 밝히며 정면으로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웨슬리 형제는 이것은 지나친 인신공격이며, 오랜 친구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행위라고 느꼈다. 그는 이 도전 앞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칼을 뽑았으므로 나도 칼집을 던지고 단호히 싸울 것이다.” 그의 의지는 결연했다. 휫필드와 웨슬리의 뜨거운 신학적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휫필드와 웨슬리의 논쟁은 단순히 두 사람 개인 간의 논쟁이 아니라 휫필드가 대표하는 칼빈주의와 웨슬리가 이끄는 웨슬리주의와의 충돌이었다. 그러면 칼빈주의와 웨슬리주의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쟁점은 무엇인가? 먼저 말해둘 것은 칼빈이나 웨슬리 둘 다 초대교회 시대부터 정통신앙의 표준이 되어 온 사도신경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두 신학 체계는 차이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일치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구원론을 제외한 나머지 기본적인 교리에서 두 신학 사이에 심각한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 다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고 정통신앙을 지키려는 마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범위한 두 신학 체계의 합의점에도 불구하고 구원론에서는 확연한 차이점이 나타난다. 칼빈의 구원론의 핵심은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와 멸망시킬 자를 예정하셨다는 소위 ‘이중선택론’이며, 웨슬리는 이것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칼빈과 웨슬리가 모두 정통신앙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사도신경에는 구원론에 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권위의 규범이 없는 상황에서 예정론을 주장하는 칼빈주의적 해석이나 이것을 반대하는 웨슬리주의적 해석은 다 사도신경의 테두리 안에서 성립될 수 있는 해석이다. 따라서 각자의 주장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신하는 두 진영의 정면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
예정론은 새로운 교리가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자를 예정하신다는 주장은 이미 4세기 어거스틴의 사상에도 나타나 있고, 루터의 입장도 이와 비슷했다. 그러나 아무도 칼빈처럼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뿐만 아니라 멸망시킬 자까지 예정했으며, 그 예정은 절대적이라는 극단적 예정론을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어거스틴도 칼빈처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오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 중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구원하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머지 사람들은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신다는 가혹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자들은 자의대로 하도록 허용하시고, 어떤 자들은 스스로 멸망하도록 방임하신다고 했으나, 누구를 멸망하라고 명령하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루터의 생각 역시 본질적으로 어거스틴과 일치한다. 그도 죄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며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사라는 것을 강조했으나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은혜를 주시기를 거절하신다거나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루터가 믿는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사랑의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뿐만 아니라 멸망시킬 자까지 예정하셨다는 극단적 예정론인 소위 이중 선택론을 주장한 사람은 칼빈이 처음이었다. 칼빈의 사상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계승되고 더욱 체계화되었다. 정통 칼빈주의의 표준교리로 알려진 이른바 ‘튤립’(Tulip) 교리는 1618년 네덜란드의 도르트(Dort) 회의에서 채택된 것이다. 이것은 야코뷔스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가 주도했던 칼빈 예정론의 수정운동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낳은 산물이었다.
칼빈주의자였던 아르미니우스는 목회하면서 칼빈의 강경한 예정론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인간의 자유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사람들을 무책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염려했다. 그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예정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예정이라고 주장하며 칼빈의 예정론을 수정하고 나섰을 때 많은 네덜란드인들이 그를 따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정통주의자들을 격분시켜 급기야는 도르트회의에서 배신자로 몰려 정죄되었으며, 회의는 그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다섯 항목의 정통 칼빈주의 신조를 선포했다. 이 다섯 항목의 영어 머리 글자를 합하면 TULIP이 된다. 이것은 네덜란드의 유명한 꽃 이름과 일치해 기억하기에 편리하다.
T: Total Depravity(완전 타락)
U: Unconditional Election(무조건적 선택)
L: Limited Atonement(제한적 속죄)
I: Irresistible Grace(불가항력적 은총)
P: Perseverance of the Saints(성도의 견인)
-남기철, ‘성령의 사람, 존 웨슬리에게 길을 묻다’(kmc: 기독교대한감리회 출판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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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teph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7.01.13 사도신경을 정통 신앙의 표준으로 고백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칼빈주의와 웨슬리주의의 신학 체계는 차이점보다 일치점이 훨씬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중예정론과 성도의 영원한 견인론을 포함한 구원론에서는 서로 간에 심각한 차이점들이 있고,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칼빈주의가 가진 이 부분의 문제점들을 강력하고도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을 그의 전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 복음주의 신학계와 한국교회 안에 행함 있는 믿음에 관한 관심이 점증하고 있는 이때에 존 웨슬리의 고전적인 칼빈주의 비판에 귀기울여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