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것 같아요
- 강 문 석 -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보면 젊은 세대일수록 말에 ‘~같아요’가 많이 붙는 것을 보게 된다. 말하는 사람으로선 좀 더 예의를 갖춘 겸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검다’나 ‘희다’가 아닌 ‘검은 것 같다’나 흰 것 같다‘로 말한다면 상대가 어떻게 그 색깔을 이해할 수 있을는지를…. 만약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이성 간에 남의 말을 전하듯 ‘사랑하는 것 같아요’나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을 때 상대가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한창 패기만만한 나이에 이러한 말버릇이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입에 달라붙어 있다면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표현은 겸손한 표현이라기보다 자신감의 부족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그러고 만약 본인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취업면접에서 버릇대로 그런 투의 말이 튀어나왔다간 낭패한 결과를 당할 건 불문가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국립국어원이 있긴 하지만 우리말과 우리글이 날이 갈수록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망가지는 쪽으로 흐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세대들이 아무 생각 없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제멋대로 재단해 SMS로 주고받는 기괴한 문자들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지각없는 어른들은 이러한 잘못을 바로 잡을 생각은 않고 그렇게 따라하면 자신에게 청춘이 다시 찾아온다고 믿는지 덩달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어 걱정이다. 이러한 잘못은 그 범위가 워낙 넓고 심각하여 신문이나 방송이 지속적으로 계도하면서 어른들도 잘못을 고치는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일제의 강점기가 끝난 지도 7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벌써 두 차례나 세대가 바뀌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말과 우리글을 말살했던 암흑기의 일본말 잔재가 얼마나 혹독했으면 지금까지 전승되어 사라질 줄 모르니 대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생활 속에 뿌리내린 일본말은 산업체의 생산라인이나 토목 건설공사 현장, 전통시장 같은 데서 많이 접할 수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일본말 나부랭이로 그렇게 떠들어대면 자신이 유식하게라도 보이는가 싶어서 거드름을 피운다. 일전에 문학단체의 책을 만들면서 최종교정을 위해 출판사에서 만난 문단의 원로는 신문의 기사 제목을 여러 개 오려붙여 꼬깃꼬깃 서류가방에 보관하고 있다가 나에게 들켰다.
뭐냐고 물었더니 겸연쩍게 씩 웃으며 “그런 게 있다”고만 했다. 알고 보니 신문사에 시정을 촉구하기 위해 보낼 한글맞춤법, 특히 띄어쓰기에 어긋난 것을 스크랩한 것이었다. 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거창할 필요 없이 이렇게 소소한 것에 깃든 애국심이 아쉬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국어맞춤법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소위 글을 쓴다는 작가들에게도 자유롭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없이 자신에게 채찍을 들어 오류가 없는 글로 독자를 만나야함에도 그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글쟁이들이 적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예로부터 ‘모르면 손자에게도 배운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한 학습은 또 요즘처럼 득실거리는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니 새겨들을 일이 아닐 수 없겠다. 30여 년 전 현직 당시 직장의 상사는 서류가방에다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을 늘 휴대하고 다녔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그것도 법대를 나온 수재가 쉰을 넘은 나이까지 어학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사에게 전력판매를 담당하던 우리 부서에서 업무보고를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상사는 엉뚱하게도 봉사담당 간부가 대외홍보용 ‘플랭카드’를 시내의 곳곳에 내걸었다는 말에 크게 노하여 보고자를 강하게 질책했다.
보고자도 현수막이 ‘플래카드’란 걸 모르지 않았겠지만 늘 써오던 입버릇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실 플래카드는 현수막이 아닌 '내림막'이고 우리가 가로로 펼쳐 붙이는 것은 ‘펼침막’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날 업무실적 비율을 잘못 나타낸 ‘프로’란 말에도 상사는 역정을 내면서 보고자를 나무랐다. ‘프로’가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이냐고 했다. 혹자는 ‘퍼센트’면 어떻고 ‘프로’면 어떠냐고 어깃장을 놓기도 한다. 그날 업무보고 때문에 나에겐 지금까지 ‘플래카드’와 ‘퍼센트’는 머리에 깊이 박혀 떠나질 않는다.
종편방송에 나와 거침없이 ‘프로’를 내뱉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스포츠 경기 해설가들 그리고 때로는 드라마 속의 탤런트들까지도 국적불명의 ‘프로’란 말을 자주 내뱉는 걸 보면 참 답답하다. 10여 년 전 입주한 신축아파트에는 건설사에서 공용시설마다 간판을 붙여 놓고 있었다. 그 중에서 ‘휘트니스’란 표기는 맞지 않다는 걸 알렸더니 ‘피트니스’로 고쳐 몇 년을 지냈다. 그랬는데 어느 날 원래대로 다시 바뀌어 있었다. 영문자 ‘에프’를 원어민 발음에 가깝게 내려면 윗니로 아랫입술을 가볍게 내리물고 발음해야 하는데서 나온 난센스란 걸 알 수 있다.
‘에프’의 발음표기가 잘못된 경우는 수없이 많지만 ‘파일’과 ‘파이팅’을 ‘화일’과 ‘화이팅’으로 잘못 쓰고 있는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외래어가 아닌 우리말에서도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같지 않은 것’과 ‘맞지 않은 것’은 그 의미가 확연히 구분되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뒤죽박죽 섞어서 쓰는 것이다. 자기나라 말을 가장 잘 가꾸면서 그 긍지도 세계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다. 시집보내는 딸을 사위에게 소개하면서 아버지가 건넸다는 인사말 “다른 것은 잘 몰라도 아름다운 우리 프랑스 말 하나만은 잘 가르쳐놓았네”를 우리도 한 번 새겨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