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포토에세이 [백두산의 겨울]

작성자강문석|작성시간19.11.25|조회수344 목록 댓글 0

백두산 겨울

강 문 석

    


 

에메랄드빛을 띤 꽁꽁 얼어붙은 산정호수 빙판이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중천에 머물고 있는 태양이 천지에다 눈부신 햇살을 쏟아 부어 만든 풍광이다. 냉혹한 영하 28기온에다 눈보라까지 가세하여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틀 전 내린 폭설은 영하의 기온으로 녹지 못한 채 그대로 쌓였다가 폭풍에 휩쓸리면서 눈보라로 휘날렸다. 얼굴을 때리는 눈보라는 사막에서 모래폭풍을 만난 것처럼 따가웠다.


이곳은 천문봉 지프차 종점 대합실에서 경사진 비탈을 백여 미터 내려서면 나오는 백두산 북파였다. 제대로 천지를 감상하려면 천문봉을 올라야하지만 휘몰아치는 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지 사람들은 그 아래쪽으로만 몰렸다.

악천후 속에서도 지프차로 백두산을 오른 사람들은 천지관광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꺼운 외투로 완전무장을 하고 강풍에 휘청대며 줄지어 천지에 도착한 사람들이지만 곧바로 실망하고 돌아선다. 천지 빙판에서 강렬하게 반사되는 빛이 카메라에 닿으면서 기대했던 백두산 사진은 꿈도 꾸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눈으로 조망하기도 반사가 심하여 힘든데다 몸을 날릴 듯 강풍이 달려들었다.


내가 처음 백두산을 오른 것은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고 그날로부터 몇 년 간격으로 세 차례나 올랐지만 계절은 모두 여름이었다. 그래서 백두산의 가을을 만나보고 싶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한 해를 달포 가량 남긴 시점에 백두산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한반도 남녘은 온통 단풍천지였지만 도착한 백두산은 딴판이었다. 가을은 흔적도 없고 폭설에 파묻힌 한겨울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바뀔 줄 알았던 눈보라가 똑같은 형상을 반복하는 게 신기했다. 골짜기를 훑는 바람의 세기나 방향이 같아서 생긴 모양이었다. 눈보라 형상을 관찰하다가 바닥에 내려쌓인 눈도 녹기 전 바람을 타고 한번쯤은 더 은빛으로 찬란하게 반짝이면서 하늘을 날아보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손발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혹시라도 눈보라가 보여줄지 모르는 기이한 형상을 고대하며 카메라 렌즈를 천문봉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차량으로 하산한다는 것도 잊고 소년처럼 하늘에서 함박눈이라도 펑펑 쏟아지길 바라기도 했다.

백두산에서 세 번째 높다는 천문봉은 눈코 뜰 새 없이 휘몰아치는 눈보라에도 늠름한 표정을 견지했다. 탐방객들은 눈보라가 따갑게 얼굴을 할퀴어도 연중 백두산을 오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은지라 산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눈치였다.


나이 쉰을 바라보던 날까지도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애국가나 사가社歌 속에만 존재했고 내 생은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그랬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기적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졌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중국과 민간교류를 시작하면서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관광의 문이 열렸다. 1990년대 초반 동서냉전은 끝났고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일반인들도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오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직장산악회는 1997년 여름 백두산 등정에 나섰다. 버스 두 대에 맞춘 인원은 부산시내 배전사업장과 송변전사업장 발전소 보급소 전산소를 망라했다. 그때도 백두산엔 경사가 급한 구간을 지프차가 오르내렸다. 승객이 적은 탓으로 지금처럼 차량은 많지 않았고 가끔씩 먼지를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철판이 낡은 차량이 털털거리면서 오르내렸다.


우리는 민족의 영산에 오른다는 감격에 따갑게 내려쬐는 태양 아래서도 배낭에다 회사사장이 새겨진 깃발을 꽂고 줄지어 행군했다. ‘백두산 줄기 따라 한라산까지사가를 목청껏 외치다가 감정이 북받치는지 눈시울을 붉히는 선배도 보였다. 그 장면들은 귀국하여 제작한 <중국으로 찾아간 백두산> 영상물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면서 하나의 역사로 남았다.


오늘 천문봉 지프차 운전사들은 모두가 몸이 다부진 젊은이들이었다. S자 커브를 수도 없이 틀어야하는 산길은 경사까지 심한지라 체력과 운전 실력을 갖춘 베테랑들을 뽑은 모양이었다. 낭떠러지 쪽 상처투성이인 철판방벽이 아찔했던 순간들을 말해주고도 남았다.

자칫하면 천당이나 지옥행일 텐데도 난 카메라에다 오르내리는 차량과 풍광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에 동승한 일행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지 내릴 때까지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를 내려 생각하니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참아준 운전사에게 고맙고도 미안했다.


장백폭포나 천문봉에서 자주 만나는 적색과 청색 롱코트는 돈을 내고 빌려 입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그 코트를 멋스럽게 걸치고 기념촬영을 해서 추억으로 남기고자 빌리는 모양이었다. 보증금 18,000원에 대여료는 6,000. 그리 비싸진 않았지만 간자체 글자가 박힌 때문인지 한국인들은 그 옷을 빌려서 입는 걸 볼 수 없었다.


천문봉 정상 밑 주차장엔 다용도 대합실이 붙어있었다. 백두산 기념품과 간식을 파는 매장에선 방한복과 우의를 대여해주기도 했다. 대합실은 이곳에서 갑자기 태풍이나 폭설과 같은 악천후를 만난다면 산을 오른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산장이나 대피소가 되어야할 터이다. 그런데도 규모는 산을 오른 사람들의 일부만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한 편이었다. 작은 대합실은 영하의 추위를 피해 찾아든 사람들이 바글거리면서 북새통을 이루었다


중국에서 만드는 공산품은 품질 때문인지 기념품매장은 조용했다. 대신 추위를 이겨보려고 핫도그와 라면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처럼 매장 진열장을 차지한 우리나라 신라면이 자랑스러웠다. 중국은 가짜 쌀도 만들 정도로 짝퉁 잘 만들기로 소문난 나라가 아니던가. 백두산 기념품매장을 미리 체험한 사람들이 블로그에 백퍼센트 가짜로 보면 틀림없다고 올린 글이 떠올랐다.


까만 바탕에 밤하늘별처럼 반짝거리는 점들이 박힌 크고 작은 부석들이 진열장에서 눈길을 끌었다.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오는 분출물이었다. 백두산은 서기 94611월 초 분출이 마지막이었는데 그동안 부석을 어떻게 보존해 왔을까가 궁금했다.

화산 폭발로 생긴 백두산인지라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없는 환경인데도 천문봉 오르는 구간 저지대 도로 양쪽으론 눈밭에 선 자작나무 군락이 나타났다. 귀공자처럼 하얀 수피가 백두산 이름에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만 혹독한 계절을 견디느라 전부가 꼬부라지고 오그라진 모양새다.


지금 11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내년 봄까지는 몰아치는 북풍한설에 모진 고난의 세월을 견뎌내야 할 나무였다. 그러나 어린 날부터 길러온 내공 때문인지 나무들은 다부진 모양을 견지하고 있었다.

산 중턱 도로가에는 제설용 대형불도저도 버티고 있었다. 돈벌이를 위해 중국 당국이 하루라도 더 운행코자 준비한 장비 같은데 욕심이 과하면 화를 자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장비 때문인지 여행사에선 연말 가까이에도 백두산을 오르는 상품을 보내오고 있었다.


백두산 등정코스는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북파코스는 중국 쪽에서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는 코스로 가장 먼저 개발되었다. 정상 부근 기상대까지 지프차로 오른 후 5분이면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코스다. 오늘 우리가 올랐지만 산행이 아닌 관광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비룡폭포로도 불리는 장백폭포 좌우로 한정된 부분만 밟을 수 있다. 백두산을 산행하려면 중국 쪽에서 걸어서 올라가는 서파코스가 좋다. 중국에서 생태여행코스로 개발하여 보존된 원시림을 볼 수도 있다.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여 지프차에서 내려 청석봉 아래 37호 경계비가 있는 천지에 40여분이면 오를 수 있고 천지에서 청석봉까지 오르는 코스와 북파까지 종주하는 코스도 있다. 이 코스에는 서파 37호 조중경계비와 그 주변 경치 등 볼거리가 비교적 많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한이 실효 지배하는 땅을 밟을 수 있는 코스로 등산객들이 조중경계비인 서파 37호 근방의 몇 백 미터 북한 양강도 삼지연 땅도 밟을 수 있다. 남파코스도 중국에서만 오를 수 있다.


비교적 근래에 홍보하는 코스로 개마고원을 조망할 수 있고 북한과 근접한 코스라서 안전문제로 개방과 폐쇄가 반복되고 있기도 하다. 관광시설이 부족하지만 북파와 서파에 비해 천지에 가깝게 접하다 보니 인근 주민들이 선호하고 북파나 서파에 비해 입장료도 비싸다. 동파코스는 북한에서만 오를 수 있는 코스로 우리는 갈 수 없는 곳이다. 최고봉인 장군봉을 넘어가는 코스로 관광용으로 개발했다. 차량으로 이동 가능한 산중턱부터 정상인 향도봉까지 지상궤도열차가 있고 향도봉에서 천지까지는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다. 지상궤도열차는 1989년 설치되어 2킬로미터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가이드는 천문봉 밑 주차장에 지프차를 내리자 천지까지 10분간만 다녀오라고 했다. 거리는 2백 미터에 불과했지만 백두산 오른 목적이 천지관광인데 하며 사람들은 투덜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지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워낙 매서워서 오래 서있으라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천지 다녀오는데 반시간, 대합실 안에서 시끄러운 중국 사람들과 마주하며 반시간을 보낸 후에야 우린 하산 지프차에 오를 수 있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