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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10월호

[설교편] 12.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유3, 20~22)

작성자진리사랑|작성시간17.09.16|조회수14 목록 댓글 0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

 

- 유 3, 20~22 -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홀로 가는 길이 아니요, 신앙 노선의 정로가 있는 반면에 곁길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 정로를 가기 위해서는 곁길을 가는 자들과 자동적으로 싸우는 일이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신앙 정로가 있는 가운데 곁길이 있게 하는 것은 싸워서 이기는 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신앙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는 것을 알 것 (3)

 

  믿음의 도라는 것은 인간 편에서 저술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미리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대로 실천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 나타난 것이 구원을 완성한 십자가의 도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하신 역사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그 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서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고, 구원을 완성하고,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죄를 사해 주고 구원하는 일은 이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 그대로 사람에게 주는 것을 속죄와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도라는 것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와 구원을 완성하신 것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거저 받게 되는 것이다.

 

 

 

 

  2.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할 것 (20상반절)

 

  믿음이라는 것은 거룩한 것이다. 인간이 행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고, 거룩한 성부, 성자, 성신이 행하시는 역사이니 그 역사를 믿음을 통하여 받게 될 때에 ‘나’ 라는 자체는 그 역사를 믿는 신앙에서 날마다 발전하여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내가 믿으므로 내가 완전해 진다는 것보다도 거룩한 믿음 위에서 ‘나’ 라는 것이 전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거룩한 인격을 하나님께 은혜로 받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으니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하면서 거룩한 생활을 등한히 하는 것도 탈선이요, 내가 예수를 믿으니 내가 행한다고 장담하는 것도 탈선이다. 오직 우리는 거룩한 믿음 위에서 조금이라도 불의를 용납지 말고, 싸워 나가는데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계속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이기는 생활을 할 때에 자아라는 인격은 자아의 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믿음 위에서 날마다 향상되는 것이다.

 

 

 

 

  3. 성령으로 기도할 것 (20하반절)

 

  우리의 싸움이라는 것은 성령으로 기도하는 생활이 없이는 아무런 힘조차 얻지를 못하게 된다. 언제나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이 있으므로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 승리를 이루게 되어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기도하는 영계에 들어가려면 조금이라도 불의를 용납하지를 않아야 된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 위에서 불의와 싸워 나갈 때에 성령의 기도는 내게 강하게 역사하므로 완전 승리의 인격을 이루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4.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킬 것 (21상반절)

 

  우리는 ‘나’ 라는 것이 스스로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게 될 때에 ‘나’라는 자체는 완전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려면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된다. 조금이라도 속화된 일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생활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바라본다든지 자기의 어떤 욕망을 채워 보려는 것은 참된 신앙에 들어간 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 거룩한 믿음인 동시에 인격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 안겨지는 것을 기독교인의 신앙의 정로라고 한다.

 

 

 

 

  5. 긍휼을 기다리는 것 (21하반절~22)

 

  긍휼이라는 것은 게으른 자나 타협을 하는 자나 교만한 자에게는 있을 수 없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는 긍휼함을 기다리고 나가는 것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불의와 타협하면서 “주여,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라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이 될 것인가!

 

 

 

 

  결    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 원수가 누구냐 하는 것을 말한다.

 

  첫째 : 정욕대로 행하는 자.

 

  둘째 : 기롱하는 자.

 

  셋째 : 당을 짓는 자.

 

  넷째 : 육에 속한 자.

 

  다섯째 : 성신이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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