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도 시의 일부분一部分이다. 제목을 다는데 시와 산문의 경우는 차이가 있다. 산문의 경우는 내용의 중점을 요약하는 단어이며, 시의 경우는 내용을 보완하는 경우가 좋다. 따라서 시의 제목은 시의 내용이 추상적일 때는 구체적으로, 내용이 구체적일 때는 추상적인 것이 관행慣行이다. 독자가 시를 읽을 때 먼저 제목을 읽은 다음에 내용을 읽게 되므로 시의 제목에서 독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그런데 아래 시의 제목은 너무 친절할 뿐만 아니라, 클라이맥스에 해당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제목으로 설정함으로서 결말을 미리 알고 읽는 추리소설처럼 재미가 반감되고 있다. 【예문70】김현의 「상처가 아름다움을 만든다」 칠기의 맑고 투명한 빛이 나기까지 옻나무는 얼마나 많은 진액을 흘렸을까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상처가 빛을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시의 클라이맥스는 종장인데 그것이 벌써 제목에 누설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시는 언어의 축약縮約이어야 하는데, 제목과 내용이 겹치면 언어의 낭비가 된다. 더구나 시조는 45자 내외인데, 10자가 겹쳤으니 표현에 있어 얼마나 손해를 보고 들어가는가? 【예문 71】김영애의 「연화산의 가을」 저마다 더 많이 채우려 법석인데 땀 흘려 품었던 생 미련 없이 쏟아놓고 허허허 가벼워 좋다는 빈 밤송이 너털웃음. 위의 시에 제목을 붙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밤송이’ 또는 ‘빈 밤송이’라고 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인은 슬쩍 비켜서서 그 밤송이를 보았던 산 이름과 계절로 제목을 정했다. 얼마만큼 시의 외연外延을 확장시키고 있는가? 【예문 72】김사인의 「코스모스」 누구도 핍박해 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제목이 왜 ‘코스모스’인가 하는 초보적 의문은 접어두어도 좋다. 정보전달이나 의견개진을 위한 문장에서는 제목이 내용을 충실하게 드러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학 작품의 표제는 그리 한정적일 필요가 없다. 상징적이고 간접적이면 그만큼 작품세계의 폭이 넓어질 수도 있다. 코스모스를 보고 고향을 생각하고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심정을 적었으니 ‘코스모스’란 제목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유발하는 자체가 이 시의 덕목이다.(유종호의 ‘시 읽기의 방법’) 참고로 위의 시를 새롭게 배열하면 훌륭한 시조작품이 된다. 누구도/핍박해 본 적/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우리는/고향에/돌아가 그간의/일들을 울며/아버님께/여쭐 것인가 제목달기의 유형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은유적 제목으로 시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예 -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 2. 상징적 제목으로서 시적 대상을 가리키는 예 - 유치환의 ‘깃발’ - 이육사의 ‘광야曠野’ 3. 직설적 제목으로서 내용전달에 치중한 예 -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 김상용의 ‘南으로 窓을 내겠오’ 4. 설의적 제목으로 의미전달 내지 공감영역 확대에 중점을 둔 예 - 신석정의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 신석정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5. 형상적 제목으로 친근감 있는 소재로 새로운 의미부여 - 김소월의 ‘진달래꽃’ - 김광균의 ‘와사등瓦斯燈’ 6. 역설적 제목으로 의미의 역설을 통해 시를 심화시키는 예 - 한용운의 ‘님의 침묵’ - 한용운의 ‘나는 잊고자’ 7. 기원적 제목으로 소망과 염원을 제시한 예 - 모윤숙의 ‘그 꿈을 깨치소서’ 8. 돈호법에 의해 영탄적 호소와 감동을 형상화한 예 - 변영로의 ‘오, 날개여’ - 변영로의 ‘오, 나의 영혼의 旗여’ * 돈호법 [頓呼法] :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불러 강하게 관심을 일으키는 수사법 (박제천, 강우식의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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