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解憂所[Q&A · SOS]

[도움]Re:군자불기(君子不器)에 대한 제현의 견해

작성자선비|작성시간03.09.06|조회수840 목록 댓글 1
군자불기(君子不器)

爲政第二(위정제이)

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해설>
'군자불기'의 불기(不器)의 뜻은 그 능력이 두루 통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군자는 근원적으로 器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즉 군자는 본질적으로 器로 규정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군자불기'는 器의 부정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器에 의하여 한정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어떤 본질적 위상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器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器가 이로 인하여 드러나게 되는 자리라는 것이다. 즉 불기(不器)는 器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器를 포괄하는 자리이다. 군자는 단순히 도덕적인 인격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는 리더를 말하며, 그는 器가 아닌 器를 부리는 자이다. 그러므로 器는 수많은 신하를 말하는 것이요, 군자란 임금을 말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신영복 교수의 글에서
공자가 말한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것이 보편주의적 가치이든 그렇지 않든 일단은 귀족들만의 특권적 품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공자에게 있어서 군자와 소인의 구별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계급적 신분적 구분이 아닙니다. 군자-소인의 구분은 윤리적 기준으로 나누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군자불기(君子不器)의 명제는 공자의 인간학과 관계되는 것이며 나아가 동양학의 인간학과도 직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참조 : 도올과 베버의 대화
http://www.yesu.kimc.net/33dolbe.htm
[일부는 아래 전재. 위 사이트를 방문하여 논문 전체를 읽어 보시는 게 도움이 될 듯합니다]

★ 도올은, "군자불기(君子不器)란 기(器)를 부정하는 언급이 아니라, '무본'(務本)의 뜻을 표방하는 것이다. 소라이(荻生조徠, 1666-1728)의 비판에 의하면 막스 베버의 '군자불기'(君子不器) 비판은 근본적으로 과녁이 빗나간 것이다. 근원적으로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다. 불기(不器)는 기(器)의 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라 하며 소라이의 '大低學以成器'(대저학이 성기)를 인용하며, 모든 배움은 기(器)를 이루고(成器), 이 성기(成器)를 통하여 기(器)를 부리는 대도(大道不器)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도올논어(2), p.155]

도올은 이런 불기(不器)의 논리에 의하여,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로 인하여 동양사상이 얻어 먹어야 했던 베버의 욕지거리를 독자들은 실컷 얻어 먹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도올논어(2), p.149]라고 하며, 베버의 판단을 불쾌히 여겼고, 나아가서 베버의 군자불기(君子不器) 비판을, '근본적으로 과녁이 빗나갔고, 근원적으로 해당사항이 없다'고 일축했다.[도올논어(2), p.155]


★ 막스 베버의 텍스트

●자료 : 유생들의 방심치 않는 자기제어, 즉 수신의 목적은 외면적 제스츄어나 고상한 매너의 품위를 유지하는데 있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수신은 기본적으로 심미적인 것이었으며 본질적으로 부정적 성격의 것이었다. 그 자체로서 위엄있는 품행, 아무런 실질적 내용이 없는 공허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품행만이 존중되고 욕망되었다.(The watchful self-control of the confucian was to maintain the dignity of external gesture and manner, to keep "face." The self-control was of an aesthetic and essentially negative nature. Dignified deportment, in itself devoid of definite content, was esteemed and desired.)



●자료 : 유자들에게는, 세분화된 전문직종은 그것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인가를 불문하고, 진정으로 긍정적인 권위를 갖는 위치로서 인식될 길이 없었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공자가 "논어"에서 한 말, 문화적으로 교양을 쌓은 인간들 즉 군자는 하나의 기(器)로 국한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 즉 군자는 이 세계에 대한 적응 즉 처세나 자신의 완성을 지향하는 수신의 방식에 있어서, 그는 그 자신이 최종적 목적이라고 생각할 뿐, 어떠한 기능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교윤리의 이러한 핵심은 전문직종의 분업을 거부했으며, 근대적 전문직의 뷰로크라시를 거부했으며, 전문직종을 위한 특수훈련을 거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사상은 이윤의 추구를 위한 경제학의 훈련을 거부했던 것이다.[For the confucian, the specialistic expert could not be raised to truly posetive dignity, no matter what his social usefulness. The decisive factor was that the "cultured man"(gentleman) was "not a tool"; that is, in his adjustment to the world and in his self-perfection he was an end unto himself not a means for any functional end. This core of confucian ethics rejected professional specializaton, modern expert bureaucracy, and special training; above all, it rejected training in economics for the pursuit of profit.(RC, p.246)]

※기본개념의 이해문제

(ㄱ) 군자(君子)와 전문직(Professional Specialization)

도올은 TV강의에서 군자(君子)를 공자 시대에서는 사(射), 서(書), 예(禮), 악(樂)등을 갖춘 도덕적 지도적 인격자로 지칭했다. 이것은 고대희랍(Greece)의 프라톤(Plato, B.C.427-347)의 이상국(The Republic)에서 말하는 지배자계급(gold class)인 엘리트(Elite, 주로 도덕적 철학자)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공자의 군자(君子, cultured man, gentleman)와 근대 서구의 전문직(Professional)과는 그 개념이 같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도올 자신도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공자언명의 맥락이 과연 근대사회적 특징을 이루는 전문직종에 대한 종사의 거부가 군자(君子)됨의 특징이라고 하는 의미의 맥락으로 사용된 것인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고 말했다.[도올논어(2), p.p.150-151] 공자는 다만 자기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을 말한 것이지 2000여년 후인 오늘의 군자상(君子像)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ㄴ) 불기(不器)와 제네랄리스트(generalist)

도올은, '기(器)는 분명 한 그릇의 국한된 기능'이나, 불기(不器)는 무본(務本)과 대도(大道)의 경지라 설명했다.[도올논어(2), p.151, p.155]

즉 불기(不器)는 기(器)의 세계의 부정이 아니다. 기(器)를 포용하는 대도(大道)이며, 제네랄리스트(generalist)라는 의미를 암시했다.[도올논어(2), p.156]

즉 소라이와 도올은, '대저 배움이란 기(器)를 이루지 않음이 없다.(大低學以成器)라고 하여 인간의 모든 배움이 기(器)를 이루고(成器), 이 성기(成器)를 초극하여 대도(大道)에 이르는 것이 불기(不器)의 경지요, 제네랄리스트(generalist)라 했다.[도올논어(2), p.155]

이런 뜻이라면, 공자의 기(器)는 지행적 실용인(知行的實用人)이 아니라 다만 현학적(衒學的) 지식인에 불과한 것같다. 그러나 근대자본주의 사회의 스페시알리스트(Specialist)는 근대 분업사회의 직업(Beruf, Vocation)인이다. 그리고 도올이 말하는 제네랄리스트(generalist)는 무엇인다? 도올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근원적 통찰력과 전체적 조망'을 갖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 당대의 모든 스페시알리스트는 불기(不器)의 스페시알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도올논어(2), p.156]



★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공자의 언명의 맥락이 과연, 근대사회적 특징을 이루는 전문직종에 대한 종사의 거부가 군자(君子)됨의 특징이라고 하는 의미의 맥락으로 사용된 것인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기"(器)는 분명 한 그릇의 국한된 기능이라는 뜻이다. 황간(皇侃)의 소(疏)에: (p.150)

此章明君子之人, 不係守一業也. 器者, 給用之物也. 猶如舟可汎於海, 不可登山; 車可陸行, 不可濟海. 君子當才業周普, 不得如器之守一也.

이 장은 군자된 사람은 모름지기 하나의 업을 지키는데 매달리지 말아야 함을 밝힌 것이다.그릇이란 인간에게 한 쓰임을 제공하는 물건이다. 예를 들자면 배는 바다에서는 두둥실 떠 갈 수 있지만 산을 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수레는 육지를 다닐 수는 있어도 바다를 건널 수는 없는 것이다. 군자는 당연히 그 재능과 업적이 두루 넓게 통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릇이 한 기능을 지키는 것과 같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 오규우 소라이(荻生조徠, 1666-1728)는 이러한 류의 논의에 대하여 재미있는 제도사적 반론을 제기한다.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언명도 반드시 소인기(小人器), 군자불기(君子不器)식의 이원론적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주(古注)에서 포씨(苞氏)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p.151)

器者, 各周其用. 至於君子, 無所不施也.

그릇이라는 것은 하나의 쓰임에 국한되는 것이다. 군자에 이르게 되면 베풀지 아니하는 바가 없다.


★ 주자(朱子)가 "기자(器者), 각적기용(各適其用), 이불능상통(而不能相通). 성덕지사(成德之士), 체무불구(體無不具). 고용무부주(故用無不周), 비특위일재일예이이(非特爲一才一藝而已)." (그릇이란 각기 쓰임이 있는 것이요, 서로 통할 수 없는 것이다. 덕을 이루는 선비는 그 몸이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기능이 통달하지 아니함이 없다. 특별히 한 재능, 한 기예에 국한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한 것도 결국 고주(古注)를 베낀 것인데 이러한 주석은 근원적 제도사적 맥락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라이는 "예기" "학기"의 마지막에 나오는 재미있는 구절을 인용한다.

鼓無當於五聲. 五聲弗得不和; 水無當於五色, 五色弗得不章.

북 그 자체는 궁.상.각.치.우 다섯가지 소리에 해당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다섯가지 소리는 북이 없이는 조화로운 소리를 낼 길이 없다. 물 그 자체는 청.적.황.백.흑의 다섯가지 색깔에 해당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다섯가지 색깔은 물이 없이는 그 찬란한 색깔을 드러낼 길이 없다.(p.152)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가가멜 | 작성시간 03.09.09 황공하옵게도 이런 정성 깃듯 답변을 하신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 길어서 읽다가 눈이 빠지뻔 했지만,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