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호텔의 원조는 연산군이었다.
요새 한창 사회적 물의가 되고 있는 러브호텔. 그 러브호텔의 원조격은 바로 조선의 폭군 연산군이었다. 연산군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폭군, 최근에 역사드라마 왕과비가 생각날 것이다. 연산군은 1494년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 왕이 되자 제일 먼저 한 것이 사슴을 죽여 불고기 파티를 연 것과 자신의 스승 조지서를 죽인 일이었다. 연산군이 죽인 사슴은 선왕인 성종이 무척 아끼던 것으로 연산이 이 사슴을 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선왕으로부터 야단을 맞았던 그 사슴이었으며, 스승 조지서는 연산의 선생 가운데 가장 엄격하게 연산을 지도했던 사람이었다.
연산군의 악행이야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사냥 놀이를 위해 민가를 쓸어 버리고, 창덕궁에서 노는 것이 보일지 모른다 해 남산 밑의 집들을 철거했다. 몇 천 명의 처녀들을 잡아들여 노리개로 삼는가 하면 사대부의 부인은 물론 종친까지도 범하는 패륜을 일삼았다.
- 【원전】 13 집 641 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연산 054 10/06/25(갑신) / 윤은로의 아내를 간음하고 누구의 딸인지 이계맹에게 묻다
전교하기를,“윤은로(尹殷老)의 아내는 누구의 딸인가?”하매,
승지 이계맹(李繼孟)이 아뢰기를,“전 금천 현감(衿川縣監) 김복(金復)의 딸입니다.”하였다.
사람들의 말로는 왕이 간음하고서 기쁜 까닭에 물은 것이라 한다.
연산의 하루하루는 사람 죽이기 아니면 궁녀들과 노는 것이었다고 [연산군 일기]는 적고 있다. 노는 방식도 상식을 뛰어넘기 일쑤였다. 연산은 길가에서 간음하는 데 쓰기 위해 아예 이동식 러브 호텔을 지어 행차 때는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1505년 6월 18일 [연산군 일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연산 058 11/06/18(신미) / 금중에 방을 많이 두어 음탕한 놀이 하는 곳으로 삼다
왕이 금중(禁中)에 방(房)을 많이 두어 음탕한 놀이를 하는 곳으로 삼았다. 또 작은 방을 만들어서, 언제나 밖으로 나가 즐길 때면 사람들을 시켜서 들고 따르게 하여, 길가일지라도 흥청(興淸)과 음탕한 놀이를 하고 싶으면, 문득 이것을 설치하고서 들어갔는데, 그 방을 이름 붙여 ‘거사(擧舍)’라 하였다.
- 【원전】 14 집 7 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거사라니 '들고 다니는 집'도 되거니와 '일을 저지르는 집'이란 뜻도 될 것이다. 이동식 러브 호텔의 이름치고는 제법 운치가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거사에서 놀던 연산은 바로 10개월 뒤에 진짜 거사(擧事)를 만나 쫓겨나게 된다.
거사 좋아하다 거사로 망한 왕이다. 역시 사람은 뿌린대로 거두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