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녹수의 치마를 밟았다고 해서 목이 잘린 기생 '옥지화'
장녹수를 아십니까? 연산군 시절 연산군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장녹수' 연산군 11년(1505) 에는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나!!!.
연산군 11년 11월 7일 연산군의 유흥을 위해 동원된 기생 중에서도 하급인 운평에 속하는 옥지화라는 기생이 연산의 후궁인 장녹수의 치마를 밟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입 싼 장녹수가 잠자리에서 몰래 일렀는지 왕은 신하를 불러 모아 옥지화를 처벌하도록 했다. 그러자 영의정, 좌의정, 좌찬성, 우찬성, 각조 판서 할 것 없이 나서서 옥지화의 죄가 참으로 크니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진언했다(속담에 나무라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이 말을 들은 연산의 답변 또한 걸작이었던지 [연산군 일기]에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 【원전】 14 집 27 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정론-정론(政論) / *사법-재판(裁判) / *예술-음악(音樂) / *신분-천인(賤人)
연산 060 11/11/07(무자) / 운평 옥지화가 숙용의 치마를 밟았다 하여 밀위청에 데려다 형신하게 하다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운평 옥지화(玉池花)가 숙용(淑容)의 치마를 밟았으니, 이는 만상 불경(慢上不敬)에 해당하므로 무거운 벌을 주고자 하니, 승지 강혼(姜渾)은 밀위청(密威廳)에 데려가 형신(刑訊)하라. 또 이 뜻으로써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한성부(漢城府)·대간(臺諫)에게 수의하라.”
하니, 영의정 유순(柳洵), 좌의정 박숭질(朴崇質), 좌찬성 김감(金勘), 우찬성 김수동(金壽童), 좌참찬 신준(申浚), 호조 판서 이계남(李季男), 공조 판서 한사문(韓斯文),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민효증(閔孝曾), 대사헌 반우형(潘佑亨), 호조 참판 박열(朴說), 예조 참판 안윤량(安允良), 공조 참판 정광세(鄭光世), 한성부 우윤(右尹) 김무(金珷)가 의계(議啓)하기를,
“옥지화(玉池花)의 죄는 지극히 만홀(慢忽)하오니, 위의 분부가 지당합니다. 명하여 참(斬)하소서.”하니,
전교하기를,
“옛말에, ‘그릇 때문에 쥐에게 돌을 못 던진다.’고 하였으니, 천하에 지극히 천한 것이 질그릇이나, 이것으로 요강을 만든다면 진실로 천하지만, 만약 어전(御前)에 쓸 물건을 만든다면 천하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숙용(淑容)이나 숙원(淑媛)은 말할 것도 없고, 비록 취홍원(聚紅院)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운평(運平) 등이 감히 저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조금이라도 혹 능멸함이 있다면 불경하기가 막심하니, 이런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치죄하여야 한다.”하였다.
노비 출신인 장녹수를 염두에 두고 할 말이다. 결국 옥지화는 치마 한 번 잘못 밟은 죄로 목이 베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