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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화백의 수묵화를 보고 / 정태갑

작성자이청산|작성시간26.06.13|조회수48 목록 댓글 0

박대성 화백의 수묵화를 보고

 

정 태 갑

 

  수묵화水墨畵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대구의 한 갤러리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작품의 크기 때문이었다. 높이 7미터, 폭 3미터에 달하는 박대성 화백의 그림 「폭포」를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본 순간, 실물을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갤러리 전시회가 끝나기 며칠 전, 전시실에 들어서자 대각선 방향으로 대작大作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걸린 「폭포」, 그 앞으로 바로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작은 그림들을 보며 「폭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폭포」 앞에 서자, 거대한 절벽과 두 줄기 폭포수가 나를 압도한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위에서 아래로 찬찬히 뜯어본다. 왼쪽 절벽 중간에서 조금 아래쪽에 정자가, 오른쪽 절벽 맨 아래에 집 한 채가 있다. 숨은그림찾기 할 때처럼 눈을 크게 뜨고 봐야 보인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 정자에 서 보기도 하고 집 마당에 서 보기도 한다. 그림을 보는 내내 수직으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그림 아래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로 쓴 화제畵題가 보인다. 수십 줄이나 됨직한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득한 절/벽 위로 흘러/내린 흰 빛/물결 천근 바/윗돌 위로 바/람처럼 스며/들어…….’ 화가가 예술적 감각으로 고안한 한글체여서 읽기가 쉽지 않다. ‘아’를 ‘’로 쓰고, ‘어’를 ‘ㅣ-ㅇ’ 처럼 좌우로 뒤집고, ‘마음’을 ‘마’의 ‘ㅁ’안에 ‘음’을 쓰는 식이다. 글 중간에 ‘……천/길 l:l:l 랑 타고/내려 오는 저/물기둥은……’이란 구절이 있는데 ‘l:l:l’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집에 가서 다시 알아보기로 하고 휴대폰으로 화제 사진을 찍는다.

  전시장에는 대작 하나가 더 있었는데, 높이 2.5미터, 폭 7미터 크기의 「덕수궁」이다. 그림은 눈 내린 덕수궁 담장, 담장 밖 나무에 앉아 있거나 날고 있는 까치들, 까치를 바라보는 고양이를 담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무에 앉은 까치를 올려다보는 고양이가 인상적이다. 어릴 적 눈 온 날의 고향 집 풍경이 떠오르면서 고요함, 평화로움, 그리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림 아래에 세로글씨로 둥글게 쓴 화제가 있는데, 글씨체가 독특해서 떨어져서 보면 그림처럼 보인다. 끈기 있게 읽어 보니 이런 내용이다. ‘까치는 날기를 멈추고 고양이는 뛰기를 잊었다. 눈빛은 닿고 발끝은 멈춘 채 두 마음이 엇갈린다. 사냥도 도망도 없는 이 정적의 춤.’

  화제를 읽고 보니 그림 감상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빛은 닿고, 두 마음이 엇갈린다.’라고 했으니 고양이와 까치가 마냥 평화롭게 노니는 풍경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다시 그림을 들여다보니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 같다.

  전시회에 다녀와서 알아본 화가의 삶은 남달랐다. 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 그는 1945년 청도에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4살 때 빨치산의 습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도 팔 하나를 잃는 불행을 겪었다. 학교는 중학교까지만 다니고, 독학으로 수묵화를 공부하여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연속 8년 입선하고,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아 수묵화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누가 독학을 했다고 하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뭔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화백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화백은 작가로서 기량을 키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을 뿐 아니라 동서양의 철학, 종교, 역사, 문학을 독학하거나, 전문가를 찾아가 배움으로써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틀에 박힌 미술교육을 거치지 않고 혼자 공부한 것이 독자적 예술 세계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한때 경주 화실의 이름을 불편당不便堂이라 짓고 겨울에도 냉방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지인들이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머리가 맑아야 작품이 나온다. 불을 지펴 따뜻해지면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다. 치열한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인생의 출발점부터 불편함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 한 손으로 일상생활을 하고, 한 손으로 그림 그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자기 키의 몇 배나 되는 화폭 위에 올라가 대작을 그리는 일은 또 얼마나 불편한가. 그는 불편함을 묵묵히 견디고, 그 불편함이 오히려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왜 대작을 그리느냐는 물음에 화백은 이렇게 말한다. 작은 그림은 개인이 소장해서 혼자 보지만, 큰 그림은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다고. 화백의 안목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폭포」보다 더 큰 대작이 경주의 한 미술관에 있다 하니, 경주에 가면 꼭 한번 보고 싶다.

  전시회에서 풀지 못한 글자는 뜻밖의 장소에서 풀렸다. 아내가 마트에 가자고 해서 주차장에 내려주고, 차 안에서 휴대폰에 저장한 「폭포」 화제를 읽는데, 눈길이 ‘천길 l:l:l 랑 타고’에 이르자, ‘l:l:l’이 또렷하게 ‘벼’자로 보이는 게 아닌가. 유레카! ‘천길 벼랑 타고’ 이다. 고고학자가 상형문자 하나를 해독한 만큼이나 기쁘다. 나를 수고롭게 한 아내가 고맙기까지 하다.

  시의 마지막 부분을 나지막이 읽어 본다. ‘천길 벼랑 타고 내려오는 저 물기둥은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이라 불러도 되리니 푸른 이끼 낀 바위조차 그윽하네.’ 수묵화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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