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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서평

[스크랩] [詩鑑賞] 김중일의 [물고기] / 박성준(시인)

작성자최재경|작성시간26.06.05|조회수17 목록 댓글 0



[詩鑑賞] 김중일 [물고기] / 박성준(시인)

 

물고기

김중일

 

나는 물고기였으니

 

어머니가 살집을 다 발라내시면 드러나는

잃어버렸던 앙상한 열쇠였으니

 

물속에서 온몸을 비틀어

물의 금고를 열었던

열쇠의 형상을 한 물고기였으니

 

금고 속엔 물거품과 백지만 가득했으니

 

몸속에 꽁꽁 숨겨온 자물통 같은

어머니 자궁 속에 꽂힌,

한 늙은 극작가가 불행 속에 쓴

희극의 첫 막을 열었던 열쇠였으니

 

그리하여 여기 발밑에 버려진

오래된 극장의 열쇠였으니

 

++++++++++++

[詩鑑賞] 박성준(시인)

 

과도한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시대. 시인은 독특하고 유연한 지각 방식을 통해 이미지의 철학적 권위를 복귀시킨다. 대개 시에서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대립되는 것들이 갖는 저마다의 격차를 환기시키며 우리들의 사유 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다. 여기서 시인은 존재의 재창조를 꿈꾸며, 그런 언어의 극단들을 통해 의미의 하층부를 드러낸다. 특히 이 시에서는 유사 이미지들의 조합과 교환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머리만 남겨두고 살을 발라낸 물고기의 모습은 열쇠의 형상과 닮아 있다.

 

즉 시인 스스로가 자처한 물고기란 제 몸에 열쇠 하나쯤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존재라서, 바닷속을 헤엄쳐왔던 삶의 모든 운동성들이 물의 금고를 여는 고행의 과정이다. 바다, , 자궁과 같은 태초의 근원적 공간을 열어보고 말겠다는 시인의 굳은 의지들을 경유하고 나면, 늙은 극작가의 한 생애 희로애락이 담긴 서사극과 오래된 극장의 문을 여는 또 다른 열쇠가 탄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 시인 자신이 사용하는 말은 다른 세계의 무대를 여는 최초의 시도가 될 것이라 암시하고 있다. 언어가 경험을 초월하는 순간을 담을 수 있다면 나는 그 경험하지 못한 과격한 혁명을 무작정 믿고 싶다. 언어 노동자가 갖는 그 불우한 희망에게 오늘도 미래를 맡긴다.

<http://cafe.daum.net/poet48/AsB2/437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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