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鑑賞] 김중일의 [물고기] / 박성준(시인)
물고기
김중일
나는 물고기였으니
어머니가 살집을 다 발라내시면 드러나는
잃어버렸던 앙상한 열쇠였으니
물속에서 온몸을 비틀어
물의 금고를 열었던
열쇠의 형상을 한 물고기였으니
금고 속엔 물거품과 백지만 가득했으니
몸속에 꽁꽁 숨겨온 자물통 같은
어머니 자궁 속에 꽂힌,
한 늙은 극작가가 불행 속에 쓴
희극의 첫 막을 열었던 열쇠였으니
그리하여 여기 발밑에 버려진
오래된 극장의 열쇠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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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鑑賞] 박성준(시인)
과도한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시대. 시인은 독특하고 유연한 지각 방식을 통해 이미지의 철학적 권위를 복귀시킨다. 대개 시에서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대립되는 것들이 갖는 저마다의 격차를 환기시키며 우리들의 사유 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다. 여기서 시인은 존재의 재창조를 꿈꾸며, 그런 언어의 극단들을 통해 의미의 하층부를 드러낸다. 특히 이 시에서는 유사 이미지들의 조합과 교환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머리만 남겨두고 살을 발라낸 물고기의 모습은 열쇠의 형상과 닮아 있다.
즉 시인 스스로가 자처한 물고기란 제 몸에 열쇠 하나쯤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존재라서, 바닷속을 헤엄쳐왔던 삶의 모든 운동성들이 “물의 금고”를 여는 고행의 과정이다. 바다, 물, 자궁과 같은 태초의 근원적 공간을 열어보고 말겠다는 시인의 굳은 의지들을 경유하고 나면, 늙은 극작가의 한 생애 희로애락이 담긴 서사극과 오래된 극장의 문을 여는 또 다른 열쇠가 탄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 시인 자신이 사용하는 말은 다른 세계의 무대를 여는 최초의 시도가 될 것이라 암시하고 있다. 언어가 경험을 초월하는 순간을 담을 수 있다면 나는 그 경험하지 못한 과격한 혁명을 무작정 믿고 싶다. 언어 노동자가 갖는 그 불우한 희망에게 오늘도 미래를 맡긴다.
―<http://cafe.daum.net/poet48/AsB2/437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