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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산책

[스크랩] 안견 - 조선전기화가

작성자孤雲|작성시간10.04.15|조회수162 목록 댓글 0

안견 [安堅]

 

 

 몽유도원도


본관은 충청도 서산 지곡(池谷)으로, 호는 현동자(玄洞子)· 주경(朱耕)이며 세종(1419-1450)과 문종(1451-1452)전후에 활약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호군(護軍)을 지냈으며 화원의 신분이었다. 화원으로 종6품 선화(善畵)를 거쳐 정4품 호군(護軍)에 올랐다.

1400년경을 전후하여 태어나 세종대에 활동하고 세조연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측될 뿐 정확하게 그에 대한 생몰기록은 없다.


현재 몇 작품들이 전해오나 그중 일본 천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몽유도원도〉만이 확실한 진작으로 전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사시팔경도 四時八景圖〉 등은 전칭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북송대의 이곽파(李郭派) 화풍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경물들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구도적 특색을 비롯하여 공간개념과 필법 등에서 한국적인 특징을 짙당시 많은 화가들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안평대군의 절대적 후원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의 소장품을 감상하면서 더욱 더 식견을 넓혀 중국의 여러 유파를 직접 대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그의 화풍은 이른바 이곽파(또는 곽희파)라고 불리 우는 북송대 북방산수의 독특한 수지법과 준필을 즐겨 구사하였으며 험준한 산세의 포치나 대국적인 스케일에 의한 화면 운용 등은 그가 당시 중국의 화풍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참고로 조선초기의 화단은 고려시대에 축적된 중국 회화가 다수 전승된 이외에 연경을 중심으로 하여 명과의 회화 교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화풍은 당시 많은 화가들이 추종하여 조선 초기의 대표적 화파인 안견파를 형성시켰으며, 석경(石敬)·정세광(鄭世光)·신사임당(申師任堂)·이상좌(李上佐)·이불해(李不害)·강효동(姜孝同)·김제(金褆)·이정근(李正根)·이흥효(李興孝)·이정(李楨)·이징(李澄)·김명국(金明國)·이성길(李成吉) 등 조선 초기는 물론 중기의 화가들에게까지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한 슈우분[周文] 등을 통해 일본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수묵산수화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으로는

1442년 안평대군(安平大君) 초상을 비롯하여 〈이사마산수도 李司馬山水圖〉(1443)·〈팔준도 八駿圖〉(1446),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1447)·〈대소가의장도 大小駕儀仗圖〉(1448)·〈동궁의장도 東宮儀仗圖〉(1448) 등을 그려 세종대 화단의 제일인자로 활약했다. 사람됨이 총민하고 정박(精博)했으며, 안평대군의 후원으로 옛 그림들을 많이 보면서 그 요체와 여러 대가들의 좋은 점을 취하고 절충해 자신의 화풍을 이룩했다. 인물·화훼·매죽(梅竹)·노안(蘆雁)·누각(樓閣)·경작(耕作)·말[馬]·해청(海靑) 등을 잘 그렸으며, 특히 산수화를 잘 그려 당시 필적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 ]

1447년(세종 29) 작.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 106.5×38.7 cm. 일본 천리대학 중앙도서관 소장.

이 그림은 세종대왕 셋째 아들이며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도원을 몽유한 후 안견에게 꿈에 본 바를 설명하여 그리게 한 것으로, 1447년 4월 20일에 착수하여 3일 만인 23일에 완성한 그림으로 도연명의 《도화원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 양식도 여러 가지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 큰 특징은 그림의 줄거리가 두루마리 그림의 통례와는 달리 왼편 하단부에서 오른편 상단부로 전개되고 있으며 왼편의 현실세계와 오른편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큰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왼편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보고 그렸으나 오른편의 도원세계는 부감법을 구사하였다. 안평대군의 발문을 보면, 안견은 이 그림을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며, 거기에는 안평대군의 제서와 시 한 수를 비롯해 당대 20여 명의 고사(高士)들이 쓴 20여 편의 찬문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림과 그들의 시문은 현재 2개의 두루마리로 나뉘어 표구되어 있는데, 이들 시문은 저마다 친필로 되어 있어 그 내용의 문학적 성격은 물론, 서예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그림은 안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 후의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시팔경도 [四時八景圖] 


견본담채(絹本淡彩), 8폭 화첩. 각 1폭 28.5×35.2cm.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안견의 작품으로 추정되고있다.  이른 봄부터 늦은 겨울까지 각 계절마다 2폭씩 8폭으로 짜여져 있다.   한 폭의 그림은 몇 개의 흩어진 경물(景物)들로 구성되었는데 경물들 사이에 넓은 수면(水面)과 안개를 채워 넣어 시원한 공간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구도상의 특색은 조선 전기 안견파 화풍에 자주 나타나는 한국적 특징들과 연결된다. 필법(筆法)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필법에 가까운 고식이며 계절에 따라 강약비수(强弱肥瘦)가 적절히 구사되었다. 이러한 《사시팔경도》의 구도 ·공간개념 ·필법은 후대의 회화뿐만 아니라 일본의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의

 수묵화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적벽도(赤壁圖) 

 

 


이 〈적벽도〉는 안견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전해오는 여러 그림들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비단에 담채하였고 크기는 161.5cm x 102.3cm이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며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산의 형태와 그 밑의 무성한 나무들의 모습은 〈몽유도원도〉에서 보여주었던 안견 특유의 필치와 비슷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인물 표현이 뛰어나지만 안견이 인물화를 잘 그린 예를 찾지 못하여, 이 그림은 인물화에 더 능숙하고 안견풍의 화풍을 구사한 다른 화가의 그림이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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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아침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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