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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심, 외경심, 존경은 영혼의 영양분이다.

작성자김혜경|작성시간19.08.15|조회수494 목록 댓글 0

  경외심, 외경심, 존경은 영혼의 영양분이다.

 우리 시대는 물질만 인정되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대세이다. 당연히 영혼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때,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역량은 영혼에서 비롯된다. 영혼이 건강하고 튼튼해야 이러한 역량이 나오는 것이다.


  영혼은 느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경외심, 외경심, 존경과 같은 느낌이다. '보잘것 없는 것에의 외경심'은 영혼을 튼튼하게 하는 매우 좋은 양분이다. -빵과 같은 물질을 먹었다고 영혼이 건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슈타이너는 영혼의 능력을 사장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허영심을 든다. 이때의 허영심이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특히 젊은이들에게 경고하는 '외부에서의 잘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능력이 오히려 작아지므로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그 허영심으로 인해 청년들 스스로 오늘날의 젊음에 존재하는 그 특성의 발달을 저지합니다. 그로 인해 자주 들어서는 현상이 바로 사명과 위대한 과제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논의하는 반면, 자신을 내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는 특수하게 작은 것들에 대해서는 애정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 극히 고루한 영역에서 였기는 하지만, 특정한 직관에서 회자되었던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서 다시금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보잘것 없는 것에 대한 외경심'입니다"(루돌프 슈타이너, 최혜경 옮김, 2008, 239).


  예컨대 예술가들은 오랜 시간 자신만의 능력을 갈고 딱는 시간이 반드시 있다. 내적으로 충실하여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능력이 외부로 누구나 표출되어 나온다. 그런 시간이 허영심으로 인해 사장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슈타이너로 하여금 이러한 말을 하게 한 것이다.  허영심을 가지면 이란 말은 '외부로 좀더 드러내보이고자 하면' 이라는 말이다. 


  특히 보잘것 없는 것에의 외경심이란 아주 작은 것에 대한 겸손, 존경하는 마음이다. 길가에 난 풀,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영혼의 양분이다. 이러한 느낌을 느끼는 시기, 0-7세- 길게 보아 14세까지 느끼도록 해주어야 평생 이러한 느낌이 유지되어 능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서울 편 1, 2(유홍준, 2019)을 읽다 보면 순간 순간 작가의 보는 눈-'안목'에 허를 찔림을 느끼고, 기분 좋은 충만함이 온 몸을 타고 돈다.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과 작은 부분에 대한 디테일까지. 조선시대를 자발적 사대라고 해서 정신적인 자주가 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 부분 작가는 슬쩍 넘어가면서  예술에 대한 분명한 자주(문외한이라서)를 설파한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 자긍심이 생겼음을 느낀다. 이러한 능력이 영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의 성장, 발달시기 중에서 공감시기, 특히 0-10세 까지는 모든 대상을 공감, 자신과 같은 존재로 여긴다.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것은 당연히 자신을 대하듯 사랑하고 존중한다. 예컨대 이 시기 주위환경이 어려운 경우, 이러한 감정을 갖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럴 경우 영혼의 성장, 발달이 저해되는 것이다.


  이 시기 학교에서도 교사 역시 -아이가- 작은 것에 존경심을 갖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 시기뿐 만 아니라 당연히 교사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갖지는 않는다. 문제는 아이가 힘들게 하는 것, -아이 자체가 장난이 심한 경우 말고 아이가 교사를 공격하는 경우는 교사 역시 감정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가 교사를 공격하는 경우 대부분은 부모의 영향이다. 아이 혼자서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부모 역시 교사를 공격하고자 함이 아니라 아이가 불만을 표출하니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아이가 편안해지기를 원하므로 문제를 교사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육의 효과는 절대적으로 없다. 지식을 조금 배울 수는 있지만 영혼의 성장, 발달은 이루어지지 않기때문이다. 영혼은 오히려 힘들어 질 수 있다.


   위에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예로 들었지만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세계정신의 깨달음'을 얻고, 어떤 사람은 다만 지식적으로 이해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공감시기에 존경심, 경외심, 보잘 것없는 것에의 경외심이 이러한 능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요컨대 아이가 교사를 존경해야 교육이 이루어진다. 특히 공감시기에 교사를 공격하는 경우, 아이의 영혼이 망가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안타깝지만 부모가 그렇게 자식을 안내하므로 교사가 해 줄 방법 역시 많지 않다. 평생 그러한 감정이 작용하므로 특히 공감시기에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감정은 무의식이라서 느끼는 자체도 쉽지 않다.


  길을 걸으면서도 아름다운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삶이 행복하다. 이는 공감시기에 경외심을 가져야 가능하다.


 슈타이너의 표현: 이러한 감정이 없으면 -영혼으로 보아서- "환경으로부터 더 이상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는 식물이 된다"(위책,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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