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정신의 전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리석다'라는 말은 결과가 저만큼 보이는데 결과를 알지 못하고 결과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사태를 보아도 한 아이를 '따'를 시켜서 그 아이를 괴롭힌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그것이 옳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그렇게 할까?
첫째,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따를 당한다. 둘째, 어리석어서 따라 한다. 예컨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다. 셋째, 가담하지 않고 소극적이다. 피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사태를 보면 대부분 세 부류로 나뉘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문제는 둘째부류아이들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르고 그냥 따라서 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으면 세부류 모두가 올바르게 변화해야 하지만, 두번째 부류의 아이들의 변화가 특히 어렵다. 교육을 받아도 정신의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들일수록 무모하고 선악의 구별이 없어 사회적인 범위의 한계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물론 교육이 일조하고 있다.
공교육이 시작된 계기가 노동자들이 기계 다루는 방법을 빠르게 습득하여 산업에 투입하는 것이었고, 현재는 기르기 위한 역량을 정해놓고 교육 방법을 투입하고 있다. 두 가지 모두 밖에서 투입한다는 점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준이 밖이라는 점이다. 밖에서 투입하는 교육방법이 점점 더 진화하여 이제는 개인-아이들이 내부에 집중할려고 해도 어려운 지경이 된 듯하다. 교육을 받을수록 인간의 내부는 봉쇄되고 외부만 열리는 구조이다. 이럴 경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 조금 과장하면 아이들이 밖에서 투입하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극의 인형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에는 그 강도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이렇게 할 경우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생각이 없으니 시키는 대로 하는 데에 익숙하다. 어려서-성인이 아닌 경우-는 활동이 많지 않고 피해를 주는 범위가 작지만, 성인이 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로 발전할 수 있다.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충동적이 되는 경우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많을수록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커질 것이며, 자신도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게 된다. 학교 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크게 보면 교육의 근간이 왜곡되었다고 본다.
둘째, 아이들의 내부를 봉쇄하고 외부로만 의식을 열므로, 의지 발현, 나아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못한다. 미래세대는 개인의 능력이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내부가 봉쇄되어서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달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으로 기를려고 하지만 나오지 않는다. 예컨대 정직이라는 역량을 기를려고 정직에 대한 지식을 투입-주입하지만, 아이들은 정직하지 않다.
셋째, 가장 큰 문제는 말-교육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을 알아들을려면 내부에서 생각을 해서 이해를 해야 하는 데에 이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기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 교육이 이해의 과정을 거쳐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다른 생각을 토의하는 과정을 거쳐서 받아들이는 과정인데 이해의 과정이 막혔으니,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러한 아이들도 답답할 것이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과정이 초등시기에 이루어지는 의식의 흐름으로 이 시기에 체험을 해야만 중학교에 가서 사고력을 통하여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자신의 생각을 낸다. 안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보이지 않는 정신작용은 반드시 체험을 해야만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 정신작용은 보이지 않는 '사랑'을 통하여만 전달된다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보면 초등 1학년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고 한다. -눈이 반짝이고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부가 봉쇄되는 강도가 커서 특히 6학년은 많은 경우 내부의식이 거의 막혀있다. 필자가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워하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교육의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필자가 관찰해보니 이러한 아이들-내부의식으로 들어가지 못하는-은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부의식으로 들어갈려면 '사랑,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한데 다른 사람 탓을 하니 자신의 내부의식이 막히는 것이다. 현실의 삶에 적응하여 본질의 파악이 점차 어려워진다고 해야 하나. 물론 교사의 잘못을 탓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상대를 탓하기 때문에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아이들 자신이 노력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점차 발전하여 나아갔다. 법륜스님이 말씀하시는 5가지 경우에는 엄격하게 결과를 처리하지만, 그 외에는 지켜보라는 말씀이 이 경우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5가지 경우: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훔치고, 성폭력이나 추행 등 모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다.
과거에는 교사가 중요한 존재로 인정되어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순간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컴퓨터가 나오고, 교육공학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도 부모님이 아이들을 사랑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부모님의 정신을 이어받는다. 요즈음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교사를 사랑하는 경우가 점점 악해진 만큼, 딱 그만큼 아이들은 정신을 이어받지 못한다. 교사가 교육은 하지만 정신은 전달하지 못하고 다만 지식만 전달하므로,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는 전철을 계속 밟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이란 내부의식으로 들어가 아이들의 의식의 흐름이 이루어지고, 결과 자신의 생각을 도출하면 정신이 전달되는 것이다. 내부의식의 열쇠는 마음, 사랑이다. 가정에서도 사랑이 중요하겠지만, 학교에서는 학습을 통하여 내부의식으로 들어가 정신이 전달되므로 더 중요하다. 요컨대 초등 시기는 의식의 흐름을 학습을 통해서 체험하는 시기로, 학습을 하면서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서 의식이 올바르게 흐르고 나아가 점차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정착, 완성해 나아간다. 안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정신이 보이지 않아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만, 그 폐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의 전달이란 다른 사람-부모나 교사 등을 사랑하면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전달받는 것이다.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면 어떤 경우에도 전달받지 못한다. -간접경험인 책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이 '의지'와 '창조'로 연결되어서 아이들이 전달받는 것이다. 교육이 밖에서 투입하여 외부의식만 열도록 강조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잃어버리고 인형처럼 다만 움직인다. 예컨대 지식을 투입해도 지식을 앵무새처럼 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힘들고 교사들도 어렵다.
다시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내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질만능이란 보이는 물질에 초점을 맞추어서 정신이 배제되는 상황이다. 정신이 곧 자신이며, 정신이 자신을 통제하도록 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정신이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에 앞서서 이루어지고, 보이는 것은 그 뒤를 따라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초등 시기에 이루어져야 의식의 흐름이 체험되고, 이 시기를 지날 경우, 인간의 발달단계에 의해서 내부가 닫히기 때문에 지식을 투입해도 자신의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많은 경우 부모님들은 학원에 가서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학원에 가는 경우 교사가 옆에서 하나 하나 가르쳐주는 것에 익숙해져, 학교에서 많은 수의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학교에서도 옆에 가서 이야기 해주어야 알아듣는 것이다. 초등 시기 교육은 의식의 습관을 형성하기때문에 그렇다.
여전히 문제는 정신이 보이지 않아서 배제되는 것이나, 특히 학교를 우습게 아는 요즈음 분위기가 교육을 더 어렵게 한다는 생각이다. 내부의식이 열리는 시기에 내부의식에 들어가 의식의 흐름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정말 중요하다. 교사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내부의식의 흐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내부의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일수록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교사를 공격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니 교사로서도 답답하지만 해 줄 방법 또한 마땅히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이가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내부의식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즉 자신을 망치고 학급 분위기를 망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요컨대 교육이란 정신을 전달하는 일이고, 전달받을려면 내부의식에서 의식의 흐름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정착하는 과정을 거쳐서 사고력이 완성된다. 교육이 내부의식을 봉쇄하고 외부로만 의식을 열도록 하지만, 자신이 노력하는 마음을 가져서 이러한 경험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만 외부에 흔들리는 허수아비 인생을 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이 관점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아이들이 외부의식으로만 생활하여서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쓰게 되었다.
과거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