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에게 닥아간다는 의미는, 그리고 영혼에게 닥아가는 방법과 시기는.
현재 우리는 인간을 육체와 영혼 또는 육체와 정신으로 나눈다. 즉 영혼과 정신을 포함하여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이러한 사용은 서기 869년 카톨릭 공의회에서 결정되었다. 슈타이너는 여기에서 물질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정신이 빠졌으니 물질로 가는 것이다. 영혼이 정신으로 향할 것인지 물질로 향할 것인지는 스스로 -자아-가 선택한다. 물질을 만능으로 여기면 영혼은 그에 따라서 움직이고, 반면 정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선택하면 영혼은 정신을 성장시킨다. 비약하면 현재 우리는 카톨릭 공의회 결정에 따라서 물질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러면서도 현재 우리가 하는 물질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육체와 정신은 각각 직접적으로 교류할수 없고, 영혼이 이 둘사이를 교류하며 소통한다. '나'역시 정신과 직접 만나거나 교류하기 어렵다. -정신의 속성이 영혼이 받아들여서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까닭은 정신이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본질이 아니고 상이기 때문이다. 즉 본질을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정신을 파악할려면 인간이 지니는 세 가지 의식을 보아야 한다. '깨어있는 의식', '꿈꾸는 의식', '잠자는 의식'이다. 잠자는 의식은 무의식이라서 파악할 수 없고, 꿈꾸는 의식은 꿈을 꾸듯 의식이 흐릿하므로 역시 파악하기 어렵다. 깨어있는 의식은 깨어서 사고하는 의식으로 파악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잠에서 깨는 순간 자아가 상을 만들어서 그 상 속에 자아가 들어가므로, 우리가 깨어서 사고하는 의식은 본질이 아니고 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과 직접 교류하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영혼이 모든 정보를 받아들여서 '나'에게 주면 '나'는 수합하여 지시하거나 또는 '나'가 능력을 얻어서 변한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 자아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가 어떤 상태인가는 영혼이 어떤 정보를 주는가이다. 결국 '나'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는 영혼이다. 영혼은 늘 나와 함께 하고, 또 언제나 나에게 힘을 주어서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존재이다.
내가 힘들면 정신에게 힘내라고 하면 정신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반면 영혼에게 전달하면 영혼은 알아듣는다. 문제는 영혼에게 어떻게 닥아가는가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사고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말하자면 저절로 계발되어야 합니다. 이에 반해 영혼은 생명과 자연의 비밀에 대한 비유로 그림들을 전달받아 유지해 나갑니다(루돌프 슈타이너의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2008, 64)." 이것은 7-14세 아이들 경우이지만, 인간의 본성이므로 크게 본다면 모두가 포함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자아가 심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내'가 없으므로 영혼에게 닥아가야 하고, 영혼이 정보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알아듣도록 전달하는 방법이 생명과 자연의 비밀에 대한 비유로 그림들이다. 만약 자아가 상이 아닌 상태에서 깨어있을 수 있다면, 모든 정보를 그대로 주어도 영혼이 알아들을 것이다.
인간이 육체를 입으면서 영혼과 정신이 연결된다. 육체는 자연에서 왔기 때문에 그 비밀, 생명의 비밀이 자연의 비밀과 같다. 이것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유로, 그림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정신은 비밀스럽게 전달된다. 영혼은 영혼과 영혼으로 전달된다.
정신은 표현할 수도 없고 표현되지도 않는다. 가장 좋은 전달방법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 전달되는 과정-정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교사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가 듣고 그 이야기의 상-그림을 만든다. 아이가 만든 상은 영혼이 -듣고- 만드는 상이다. 그 상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면, 아이는 그림을 그리지만 '자연의 비밀'을 영혼이 받아들였다. -자연의- 어떤 비밀인지는 영혼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슈타이너는 항상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을 파악하도록 하였다. 비유를 통해서 자연의 비밀을 전달하였다. 이것이 동화이고 우화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지식을 전달하면 영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영혼이 알아 들을 수 없는 것이다(7-14세). 동화, 우화 속에는 자연의 생명 정신이 비유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들려주면 영혼이 파악한다.
이를 슈타이너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 연령대의 관찰은 정신성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식물하나, 씨앗 한 톨, 꽃 한송이를 단순히 감각적으로 이해하는데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모든것이 정신적인 것에 대한 비유가 되어야 합니다(발도르프 아동교육, 2019, 79)."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옛 적에 스승을 찾아서 10년을 물긷고 밥하고 농사지어서 봉양했는데도 배운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정신이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기 때문이다. 정신을 얻지 못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선문답에서, '너는 피를 얻었다', 너는 뼈를 얻었다', 너는 골수를 얻었다라고 표현되는 것이 정신의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정신-골수-이 인간의 핵심이다.
슈타이너가 전달하는 제비꽃의 예
아이들과 산책을 하면서 제비꽃을 발견하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를 설정하였다. 이끼 속에 숨어있는 제비꽃을 발견하고 "얘들아,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자연에서도 자주 똑 같이 그렇단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은 자연에서도 역시 가끔은 숨겨져 있거든.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좋은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알아볼 수 없단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기 위해서는 느낌을 길러야 한단다.
"애들아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인간의 삶을 자연과 비교할 수 있단다. 아주 착한 어린이를 한번 상상해보렴. 그렇게 착한 어린이는 역시 항상 아주 착하고 건전한 말만 한다는 것을 알아볼수 있을게다. 그런데 겸손한 어린이도 있고, 겸손하지 않은 어린이도 있지. 겸손한 어린이는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없단다.
<......>
이끼들 사이에 있는 제비꽃을 잘 들여다 보면 제비꽃이 어떻게 올라오는지, 이끼에서 어떻게 전부 기어올라오는지를 바라보며, 흡사 제비꽃이 그저 바라보아 주기만 바라지는 않는듯 하단다. 그저 향기만 맡아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듯 하지. 제비꽃이 자신을 찾아보라고 말하는 듯 하구나. "얘야 얘야, 얘야, 얘야, 난 여기 숨어있어! 넌 나를 찾아야만 해!' 그 제비꽃, 그것은 흡사 별로 겸손하지 않는 어린이같단다. 그런데 역시 익살맞은 어린이 같기도 해."
"자연과 인간 존재간의 그런 유사성, 상응성을 어린이들과 함께 논의하면 아주 유익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린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느낌이 활기를 띱니다(발도르프 학교 교사를 위한 세미니 논의와 교과과정 겅의, 2011, 107-108)"
요컨대 문제는 영혼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영혼은 자연의 탄생 비밀과 같은 비밀을 지녔기때문에 그 비밀을 통해서 영혼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7-14세 사이는 대화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구성요소인 에테르체만 탄생했고, 아스트랄체는 탄생 전이다. 아스트랄체는 14세 이후 탄생하고, 이 시기에는 자아도 심화되어 드러나므로 사고도 역시 가능하다.
에테르체는 생명의 힘으로 지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에테르체는 다만 생명의 힘, 자연이 가진 그 힘이다. 그 생명의 힘이 자연의 생명의 힘과 같기 때문에 자연을 통해서 전달된다. 이 시기에 영혼이 받아들이면 그 아이는 그 부분에 능력을 가진 아이가 된다. 일반적으로 천재가 된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따라서 영혼에게 닥아가는 시기는 7-14세 사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