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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에 관하여

작성자공감교육연구소|작성시간20.10.25|조회수687 목록 댓글 0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에 관하여

  교육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공동체 사회로 나누어서 설정하고 있다. 예컨대 성실이 목표라면 개인은 성실한 사람이고, 성실한 공동체, 공동체가 성실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직책에 따른 책임 등. 어떻게 말하든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지 않은 목표이다. 겉으로 보는 인간의 모습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나온 '성실한 사람 기르기'를 보면, 성실한 사람이란 '이러 이러한 사람이다'란 정의가 나와 있다. 그리고 이어서 성실한 사람이 될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예컨대 규칙적으로 꾸준히 노력,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바깥에서 본 성실의 모습이다. 인간이 성실할려면 먼저 의지가 나와서 꾸준히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겉으로 보면 실천만 보이지만, 마음 속에서 의지란 준비단계가 있는 것이다. 의지는 인간의 정신세계의 요소로, 즉 성실의 바탕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있다. 현재 아이들이 성실하지 않은 것은 마음 속의 준비단계가 무시되어서, 성실이 지식으로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마음 속의 의지는 '이럴 때 나온단다'라고 하면 금방 이해하고, 어려우면 그렇게 할려고 노력할 것이고, 작게 보아도 다른 사람 탓은 하지 않을 듯하다. 즉 어떻게 하면 의지가 나와서 성실할 수가 있을까. 그 방법에 대하여 안내가 있어야 한다. 현재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렵고, 교육은 길을 잃었는데 어디쯤에서 잃은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결하는데 그 지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계속해서 바깥에서 바깥으로 처방한 결과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면 아이들의 내부는 도대체 알아듣지 못하는 해독하지 못하는 암호만 계속해서 들려주고 있다. 

 

  만약 아이들의 자아가 알아들을 수 있게 교육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더불어 지금까지 오랜 세월동안 교육을 해 온 만큼 그 방법이 쌓여서 인간의 진화도 앞당겼을 것이다란 생각이 든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무시한다는 것은 인간의 자아를 배제한 것과 같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근간은 자아이다. 깨어있는 의식에서는 상이지만, 자아를 파악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상 속의 자아가 아닌 본질의 자아를 찾을 것이다. 

 

  필자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합창을 듣고 느낀 점이다. 합창 중간에 오페라의 주인공이 서로 주고 받으면서 노래를 하는데, 남자 주인공의 노래가 본질의 자아가 부르지 않고 상 속의 자아가 부른다는 것을 느꼈다. 겉으로 보면, 고음에서 과다하게 힘이 들어가고 부르면서 짜증을 낸다는 사실이다. 짐작컨대 상 속에서 노래를 부르니 힘이 들고 당연히 짜증이 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노래가 자연스럽지 않고, 듣는 사람도 편하지가 않았다. 물론 남자 주인공이 짜증을 내는 역할일 수는 있지만, 짜증을 내는 것과 짜증을 표현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본질의 자아가 부르면 어떻게 될까? 본질의 자아는 원래 정신세계에 연결된 상태이므로, 본질의 자아가 노래를 하면 저절로 정신세계의 음악이 연주된다. 아랫배에만 가볍게 힘을 주고 다른 부분의 모든 부분에 힘이 빠진 상태로. 마치 우주에 계단이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있는듯, 그 계단을 가볍게 오르내리면 된다. 인간의 입은 통로로 우주의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야든 본질의 자아가 할려면 가장 먼저 몸의 힘을 빼야 한다. 힘을 빼는데 몇 년이 걸린다는 속설도 전해 들은 바가 있다. 운동, 악기 연주 등등. 

 

  안타까운 것은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른 남자 주인공도 오랜 세월 노래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고, 결국 둘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 원인이다. 자아가 정신세계에 연결되어 있고, 그 자아가 노래를 부르면 그냥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온다는 사실을.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세계에서 상 속 자아가 아닌 본질의 자아를 깨달아야 하고, 또 그 자아가 노래를 해야 하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성악가 반열에 오른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본질의 자아가 활동할까'가 질문이다. 인간이 현실세계에서 어떤 일을 하면 상 속의 자아가 하는 것이다. 상 속의 자아가 하는 활동을 본질의 자아가 파악해서 할려면 반복해서 꾸준히 오랜시간을 해야 한다. 그 시간을 과학에서는 '10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집중과 몰입의 정도, 같은 시간에 같은 동작을 꾸준히 반복할 것, 자아가 즐겁고 행복하게 흥미를 갖는 정도 등이다. 덧붙이면, 상 속에서 본질의 자아를 찾을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 본질의 자아가 노래를 부르도록 연구하는 일 등이다. 

 

  예컨대 법륜 스님의 말씀은 '그냥 한다'이다. 그냥 하면 상 속의 자아가 본질의 자아에게로 바로 가는 지름길이다. 상 속의 자아는 생각이다. 할까, 하지 말까 등을 하면 상 속에서 계속 헤매는 것이다. 반면 그냥 하면 마음-무의식이다- 속으로 바로 들어가므로 본질의 자아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그동안의 습관-카르마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상속에서 헤매는 습관이 온통 마음을 차지하므로 그냥 하는 마음과 연결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냥 하는 마음에 연결되어야 그 길이 조금씩 뚤리고, 계속해야 길이 나서 나아갈 수있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현실세계-깨어있는 세계에서 무의식-잠자는 의식에 연결되는 것이다. 무의식은 현실의 깨어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연결되지 않지만, 꿈꾸는 의식을 통하여 잠자는 의식에 연결된다. 현실세계에서 잠자는 의식의 감성을 가지면 꿈꾸는 의식이 되고, 꿈꾸는 의식이 잠자는 의식에 연결되는 것이다.

 

  잠자는 의식의 속성은 삼라만상의 자라는 힘, 에너지 감성-사랑-이다. 현실세계에서 이러한 감성을 가지면 잠자는 의식에 연결되고 본질의 자아가 활동한다.

 

  문제는 내가 어떤 활동을 하는데 어려우면 짜증내고 소질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본질의 자아가 활동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마음을 먹고, 본질의 자아가 활동하도록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짜증내면 점점 본질의 자아가 활동하지 않고 카르마만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자기 분야에서는 본질의 자아가 활동해야 그 일이 행복하다. 성악가라면 본질의 자아가 노래부르고, 운동선수라면 본질의 자아가 뛰어야 한다. 초등교육에서 자아를 가르쳐 놓으면, 아이들은 그 자아가 활동하도록 스스로 할 것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자아의 속성이 깨달음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 깨달을려고 하는 것이다.  

 

  본질의 자아가 드러나면 , 본질의 자아가 활동하면 소위 말하는 책의 행간도 읽을 수 있다. 무슨 내용인지 본질의 자아가 파악하는 것이다. 책 속에는 글을 쓴 작가의 자아가 활동했고, 내 자아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란 현실 세계의 상 속의 자아가 맞다는 사고방식이다. 현실세계는 인간이 잠에서 깨는 순간 상을 만들어서 그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상 속의 세계이다. 절대로 맞을 수 없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그런 모순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많은 규칙과 법률, 부칙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 관점에서 현실세계가 맞다고 하면, 분명히 본질의 자아는 아니다라는 것을 아는데 맞다고 하면, 인간의 무의식이 찢기고 상처를 입는다. 현재 많은 사람들의 본질의 자아가 상처를 입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태어나서 자아가 심화되기 전까지 우주의 힘을 지닌다. 자아가 심화되면 그 영향력이 자아가 성장하는데로 전환되고 인간에게서는 잊혀진다. 이 시기는 에테르체가 탄생해서 활동하는 시기로 에테르체는 지식은 받아들이지 못하나, 대상을 상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을 기억해서 지닌다. 만약 음악공부를 상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상이 기억 속에서 평생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어릴 적 예체능을 해야 한다는 말은 에테르체가 기억을 하기 때문이다. 또 이 시기 우주의 힘이 미치므로 굉장한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세계에서 상 속의 자아가 아닌 본질의 자아가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질의 자아가 아닌 상 속의 자아를 본질이라고 믿도록 가르쳐 놓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능력이나 소질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에테르체 탄생시기에 접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우주의 힘이 작용할 때에 음악을 했더라면 본질의 자아가 우주의 계단을 훨씬 쉽고 빠르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지만. 요는 소질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본질의 자아가 활동하도록 교육이 좀더 연구해야 한다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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