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급을 운영하는데에 아이들과 래포가 형성되지 않으면 1년동안 힘들다. 어떻게 하면 래포가 형성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현장에서 10년동안 전담교사로 근무하다보니 학급별 특성이 잘 보인다. 몇가지를 예로 들면 첫째, 교사가 아이들이 원하는 상황에 마춰주는 것, 이것은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이다. 물론 공부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원하는 비중이 커져서 학습이 어려워지는 경향으로 간다. 둘째, 교사의 장기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개그, 이야기, 합창, 리코더 등이다. 이 중에서 음악이 래포형성에 가장 도움이 된다. 셋째, 아이들을 존중하면서 아이들 학습을 시키는 교사이다. 이 반은 다소 시끄럽지만 아이들이 점점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 교사는 힘이 많이 들게 된다. 넷째, 교사가 무섭게 하여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이 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초임교사가 많이 해당된다. 이 경우는 교사도 학교 생활이 힘든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늘 함께하는 교사는 아이들이 즐거워야 교사도 즐겁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교사가 아이들을 사랑해야 래포가 형성된다고 한다.
래포형성을 하는 이유가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을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래포형성은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잘 듣도록 하는 것, 결국 아이들이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위 방법 중에서 세번째 방법이 가장 좋지만 교사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므로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교사도 지치면 계속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문제는 네번째 방법인데 그 폐해가 크다. 아이들 자신은 없고 교사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결과로 간다. 교사의 말이 떨어져야 움직인다는 말은 자신의 생각이 없어서 무엇을 하지도 할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하지 않으므로 창의력도 의지도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아이들을 만든 교사는 '자기 말만 들어라. 너희들 생각은 필요없다. 이런 마음 상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현장에서 그와 같은 반을 가르치면서 '내 생각이 중요하다', '스스로 해야한다' 라고 말하니 오히려 전담교사가 문제로 돌아온 답답한 경험이 있다.
또 다른 경험을 들면 교사가 아이들을 잘 돌볼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떠든다. 여러차례 한 명 한명 상담하고 약속받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돌아서면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한다. 교사가 너무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하도록하여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사도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것인가?
무섭게 해도 그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또 하나하나 문제를 지적해서 다짐을 받아도 아이들은 긴 시간 습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고치기 어렵다. 이를 교사의 능력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 팁을 말하면, 아이들이 끊임없이 떠드는 것은 학습에 흥미는 없고 그냥 있으니 심심하기 때문이다. 심심하지 않도록 혼자서 그림을 그리게도 해보나 학습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방법이 가장 교육적이다. 학습에 흥미를 못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내 생각이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나오면 아이들은 지루해하지 않고 정말 몰입한다. 창조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이 기쁨을 느끼도록 해 주면 아이들은 저절로 조용히 몰입한다. 이것이 래포형성의 팁이다.
내 생각은 자신에게 집중해야 나온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 밖을 보도록 요구받은 상태이다. 교사에게 또는 학급에서 다른 아이들이게. 그것을 파악한 필자는 "얘들아, 조용히 생각해 봐, 자신에게 집중해' 라고 말하면서 교사가 집중했다. 달리 말하면 교사가 내 생각이 나오는 상태, 즉 생각하는 상태가 되었다. 미술로 말하면 '생각하는 조각'이 되었다라고 할 수 있다. 몇 차례 반복했더니 30명의 아이 중에서 2명정도만 끝내 집중을 하지 못했다. 집중했다는 말은 그 시간의 과제인 내 생각을 써서 제출했다는 말이다.
인간의 본성으로 이를 말하면 '의지'와 '직관'은 무의식에 내재되어있다. 의식상태에서 수업이 이루어지지지만 무의식에 연결되어야 의지와 직관- 내생각이 나오는 것이다. 인간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살고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무의식에 접근하여 연결되는 것, 이것이 래포형성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 상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육이 어려운 것이다.
내 생각이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래포형성이라고 생각하여 이루어지는 교육이 문제인 이유는 내 생각이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말을 잘 듣도록 하기 위해서 오히려 집중하지 못하도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아이들이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교사에게 집중이 된 상태인 것이다. 그럴 경우엔 교사가 교사 자신에게 집중되어서 의지와 창의력이 나오는 상태라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만약 교사가 바깥에만 의식이 집중되었을 경우가 가장 문제인 것이다. 공교육이 문제가 되는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교육으로 인하여 오히려 창의력이 말살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는 방법들이 래포형성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므로 이런 말만 해서는 여전히 반복될 수 있다.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교사 자신이 무의식에 내재된 의지와 직관을 표출시켜야 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육은 의식상태에서 이루어지나 무의식에 연결되어야 한다. 무의식은 언제나 열려있어 받아들이나 그것은 꿈꾸는 의식상태로 받아들인다. 꿈꾸는 의식이란 우리가 평소 꿈을 꾸는 의식 상태에서 체험할때의 의식이다. 그러므로 교사가 체험이 된 상태, 달리말하면 공감이 이루어진 상태가 교사의 꿈꾸는 의식이 무의식에 연결되는 상태이다. 이때 아이들도 자신의 무의식에 접근한다. 공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교사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이런 관점에서 래포형성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교사가 알려주는 것이다. 문제는 집중하는 방법으로, 의지와 직관이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교사 자신이 무의식에 연결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사가 아이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이것이 공감이다) 가르치든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무의식에 연결해야 한다. 교사가 자신의 무의식에 연결이 된 상태일때가 공감으로 아이들 역시 무의식에 연결된다. 이렇게 여러 번 이루어지면 아이들은 서서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인간의 의식: 인간의 의식은 깨어있는 의식, 꿈꾸는 의식, 무의식, 세 가지를 항상 지니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무의식에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깨어있는 의식 상태로 살지만 꿈꾸는 의식이 무의식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들이 스스로 창의력 있는 아이들로 기르고 싶다면,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꿈꾸는 의식은 꿈을 꾸듯이 흐릿하나 체험할때만 받아드리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받아들여야 교육이 이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