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세계에 있는 정신의 원형을 물질세계로 환원하기
필자가 초등 교사로 현장에서 근무할 때 늘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음악 시간에 필자가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이 따라 하지 않는 것이다. 발성이 안되서 그런가 생각해서 발성연습도 시켜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인터넷 매체를 틀어주면 따라는 부르나 많은 부분 음정이나 박자가 정확하지 않아서 교사가 들려주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따라하지 않으니 고민이 많이 되었다. 반면 악기 연주-리코더-는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였다.
여담으로 3학년 아이들과 '할아버지의 헌시계'를 연주하였는데, 연주가 끝나고 교실로 돌아간 여자 아이가 교실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놀란 담임선생님이 찾아와서 필자에게 묻기를, "아이가 왜 울었을까요?" "'할아버지의 헌 시계'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곡이라서 그럴 것이다"라고 하니,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 아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되었어요." '할아버지의 헌 시계'가 그런 감정을 표현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전달되었다는 것에 필자도 내심 무척 놀랐다. 이것이 뭘까? 감정이 전달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필자의 학창시절에 '할아버지의 헌 시계'를 연주할 때도 감정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억이 없다.
질문은 두 가지이다. 어째서 필자가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이 따라하지 않는가'와 리코더 연주를 할때 어떤 경우 감정이 전달되고, 어떤 경우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가이다. 그런데 필자가 아이들과 똑같은 경험을 하였다. 영국의 유명가수 '에드 시런'의 노래를 듣고 필자가 따라 부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노래가 어렵다고 하면 해결이 된다-. 그런데 순간 머리를 치는 생각, '아! 아이들도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따라할려고 했지만 뭔가 되지 않는 것, 이것이 뭘까? 궁금해서 에드 시런이 다른 나라에서 하는 라이브 등을 찾아서 들어보았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하는 떼창은 수준이 높아서 노래가 되지만,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는 노래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런가 '에드 시런이 "이 노래는 지금까지 부른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반응이 좋다"라고 까지 하였다(국뽕 떼창 1탄 참조). 우리나라는 수준이 높아서 그 정도 따라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따라조차 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뭘까?
두 번째 경험, 가을 연합 음악제 합창연습을 하는데, 옆 사람이 부르는 음정이 필자의 귀에 들리는 순간, 필자가 부르는 노래의 음정을 잊어버렸다. 급하게 피아노 반주를 찾아 듣고서야 다시 음정을 잡을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하고 생각해 보니, 옆 사람이 부르는 음정과 피아노 음정이 서로 차이가 있었다. 같은 음정도 피치가 서로 다르고, 음의 진동수가 달라서 조금만 차이가 나도 다른 음정이 된다. 또 발성에도 차이가 있었겠지만, 필자는 그 것보다는 '에드 시런'의 경우와 같다는 생각에 주목하였다.
아이들이 따라 부르지 못하는 경우와 에드 시런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어려운 경우가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감히 에드 시런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 이유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에드 시런의 경우로 설명하면, 첫째, 정신세계의 음악이 원형이고, 물질세계의 음악은 정신세계 음악의 모사인데, 에드 시런이 정신 세계의 원형 음악 가깝게 우리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에드 시런'은 이렇게 할 수가 있을까?
정신세계 음악의 원형에 가까울수록 인간은 감동을 받는다. 정신세계의 음악, 음악의 원형에 가까울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인간이 정신세계에 연결되어서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진동, 음정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정신세계의 음악 원형을 내가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의 차이는 음악을 들어보면 안다.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물론 둘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 수준도 있다.
결론은 정신세계의 원형을 물질세계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질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정신세계에 연결되어야 하고, 그리고 이어서 물질로 환원할 수가 있다. 음악으로 말하면 음악으로 다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정신세계에 연결하는 것은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같을 것이다. 물질로 환원되기 전에 반드시 정신세계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체험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조용한 시간에 반가부좌를 하고 외부의 모든 소리, 생각을 배제하고 눈을 감고 가만히 내 몸에 집중한다. 반가부좌를 하는 이유는, 반가부좌가 피라미드처럼 안정된 구조이기 때문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내 몸이 어떤 리듬을 타면서 저절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다. 그 리듬은 내 몸을 둥글게 원을 그리게 하거나 좌우로도 움직이게도 한다. 그 리듬이 우주에서 오는 리듬이고 진동이다. 즉 자아가 우주의 리듬을 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소리를 내는 경우나 말을 할 경우에도 자아가 이 리듬을 타게 된다. 예컨대 자아가 말을 한다면 자아가 우주 리듬을 타므로 그 말은 다른 사람을 움직인다. 더불어 자아가 이 리듬을 타고 노래를 하면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아마도 필자가 생각하기에 모든 사람의 자아가 노래를 부르지만 '에드 시런' 의 경우는, 에드 시런 자아의 진동 수가 우주의 진동수와 같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필자의 노래를 아이들이 따라부르지 못하는 것도, 필자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진동수가 아이들 의식 안에 있는 자아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이들의 의식이 상이라서 그 진동수와 괴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약하면 종교 단체에서 신도들에게 설교하는 분들도 이와 같은 경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먼저 인간의 자아가 우주에 연결되어있는 자신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통상 인간은 3세 이후 자아가 드러나서 11세가 지나 자아가 완전히 드러나면서 갖는 의식이 상이기 때문이다. 즉 상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정신세계에 연결된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초감각세계의 정신 존재에 '나'존재를 연결한 끈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가장 내적인 본질에 있어서는 절대 접촉되지 않는다(인간 자아인식으로 가는 하나의 길, 2008, 85)."
따라서 아마도 누구라도 자신이 정신세계에 연결된 끈을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진동을 음악으로 드러낼 수 있을뿐이다. -음악에는 정신세계의 원형이 존재하므로 당연히 음악을 통해서 연결된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복잡하게 이렇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런 사실을 모르면 열심히 노력했는데 '나는 왜 안 되는가'라고 생각해서 좌절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천재이고, 바보는 없다. 당연히 모든 존재는 같다. 다만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누가 좀더 이해를 하고 있느냐 문제이다.
두 번째질문, 감정은 어떻게 전달되는가이다. 감정은 정신과학적 용어로 아스트랄체이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영혼에 혼합되어있다. 영혼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아스트랄체를 통해서 느끼는 것이다. 아스트랄체는 이리 저리 내 몸을 드나들어서 움직인다. 필자가 '할아버지의 헌 시계' 에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느끼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그렇다면 왜 다른 경우에는 전달되지 않는가? 세계적인 음악가들일수록 곡의 감정이 잘 전달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곡을 잘모르면 나에게 전달되지 않기도 한다. 물론 몰라도 전달되기도 한다. 결론은 내가 그 곡을 연주할때 나의 아스트랄체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아스트랄체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전달되지 않는다.
정신세계에 있는 정신의 원형을 물질세계로 환원하기 위해서는 물질을 통해서 정신으로 들어가야 한다. 정신은 보이지 않고 물질로만 드러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특히 음악은 자아가 우주에 연결되어 있고, 자아가 드러나는 순간, 이 시기에 음악을 접하면 도움이 된다. -3세부터 5세 사이- 정신세계에 연결된 자아를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물질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요컨대 자신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서 자아가 우주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면, 물질세계에서 하는 일 대부분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자신의 정신세계 어디쯤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슈타이너의 주장에 따르면, 이 탐구는 다음 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또 이어진다고 한다. 보이지 않아서 어렵지만, 없는 것이 아닌 정신세계를 잘 파악해서 보람된 삶을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