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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속에 있는 자아와 상을 벗어난 자아(본질자아)에 관하여

작성자공감교육연구소|작성시간22.04.02|조회수121 목록 댓글 0

  상 속에 있는 자아와 상을 벗어난 자아(본질자아)에 관하여

  자아는 '나'를 말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시기 이 나를 경험한다. 3세 이후 어느 시기에 '아! 나는 나구나'하는 것을 불현듯 느낀다. 그러나 보이지 않고 또 현대 인류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슈타이너가 분류하는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의 하나이다. 그가 분류한 정신과학적 요소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나(자아)이다. 정신과학적 요소는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고 발달시킨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히 이 요소들은 각각의 속성, 그리고 속성에 따른 역할이 있다.  

 

  자아는 각 정신과학적 요소의 정보를 받아서 수합하고 또 정신과학적 요소들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독려한다. 즉 자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정신과학적 요소들이 목적을 수행하도록 할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각 정신과학적 요소(육체도 정신과학적인 부분만은 볼 수가 없다)는 우리가 눈으로 보지도 만질수도 없어서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등장하는 존재가 영혼이다. 영혼은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영혼의 활동이 육체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통해서 영혼을 파악할 수가 있다. 영혼이 육체를 통해서 드러내는 활동은 사고, 감정, 의지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또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그리고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것은 영혼이 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영혼을 감지하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영혼이 하는 활동 그 자체에 영혼이 매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기뻐한다면 영혼 자체가 기쁨인 것이다. 만약 내가 영혼을 감지하고자 한다면, 기쁨에 매몰되지 말고 기쁨을 가만히 바라보아야 한다. 결과 기쁨을 바라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가 있다. 사고도 사고에 매몰되지 말고, 사고를 하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 사고를 바라보는 존재가 있다. 의지도 마찬가지이다. 이 존재가 '나', 자아이다. 이 존재를 파악한다면, 예를 들어 나쁜 감정에 매몰되어서 오는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더불어 힘든 일에 의지를 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실에서 영혼의 활동, 사고, 감정, 의지에 우리 모두가 매몰되어있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현실에서 사고, 감정, 의지에 매몰되어 있지만 '나' 자아는 여기에 매몰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요컨대 매몰된 자아가 상 속에 있는 자아이고, 매몰되지 않는 자아가 본질자아이다. 따라서 결론은 우리는 현실에서 상 속 자아만을 만난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에서 상 속 자아와 본질자아는 같은 존재이다.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본질자아를 만날까가 질문이 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쓰인 이래로 이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자 한 것이 역사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류라고 생각된다. 

 

  여담으로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사가 하는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 목표 달성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수업주제를 받아들여서 스스로 탐구해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교사가 하는 일은 아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호기심, 흥미를 유발하는 정도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교사가 할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교사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수업에서 스스로 하도록 할까를 늘 고민한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데, 어느 날 아이들이 굉장히 흥미로워하고 즐겨 참여하는 활동을 발견하였다. 교사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은 가만히 들은 후 들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그림으로 그리는 활동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마치 손에 빛을 쥔 아이들 같았다'라는 어디에서 본 표현이 이해가 될 정도이다. 

 

  어떻게 해서 이럴 수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역시 슈타이너가 답을 알려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 영혼이 활동을 해야 한다. 초등 단계(5학년 이하 아이들이었다)는 아스트랄체가 탄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고활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감정을 통해서 의지를 불러내야 한다. 그런데 의지가 인간의 잠자는 의식에 숨어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상상을 통해서 감정을 체험하고 결과 의지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두 가지이다. 첫째, 의지를 불러내는 일이다. 의지는 잠자는 의식에 내재하므로 현실 삶에서 잠자는 의식에 연결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꿈꾸는 의식의 감정을 체험하게 해서 연결한다. 둘째, 꿈꾸는 의식의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상상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것은 아이들이 이야기의 감정을 체험(상상)해서 꿈꾸는 의식에 연결되기 위함이고, 아이들이 감정을 체험하면 -저절로- 의지는 발현된다. 예를 들어 심청전을 듣고 심청이의 감정을 체험하면 심청이에 대한 어떤 의지가 발현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의지 발현은 의지가 잠자는 의식에 내재하므로 반드시 우회로를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해라'라고 한다고 해서 의지가 발현되지는 않는다. 감정을 통해서든 반드시 우회로 방법으로 발현시켜야 한다. 

 

  이를 슈타이너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런 그림(이야기를 듣고)을 그릴 때 아이들의 의지의 힘이 활동하며 그 힘을 통해 아이들은 이야기를 소화한다(발도르프 학교의 미술수업, 2016, 62)."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의지가 발현되는 것이고, 이는 상상을 통해서 감정을 체험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듣기만 하고 다른 일은 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아이들이 상상으로 나아가도록 함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현실에서 상 속에 있는 자아가 상을 벗는 일, 본질자아에게 연결되는 일이다. -본질 자아가 의지를 발현시키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자아가 상을 벗을려면 현실을 벗어나야하고 그 방법이 상상이다. 상상을 통해서 주인공의 감정을 체험해서 주인공과 하나가 되면 본질자아가 의지를 발현시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감정이 발달하는 시기(7-14세)에 감정을 통해서 의지를 발현시키는 경험을 하지 못하면 평생에 기회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많은 청소년들의 의지가 약한 것은 이 시기에 지적교육을 너무 많이 해서 의지가 발현되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스스로 자신의 할일을 잘하는 아이들은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내부가 잘 발달한 때문이지, 다른 못하는 아이들보다 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면 현실에서 자아는 상 속에 있으며, 본질자아가 의지를 발현시킨다. 그리하여 현실에서 본질자아가 하도록 본질자아에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현실에서 본질자아가 의지를 발현시킨다면 불가능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된다. 본질자아는 인간이 아니라 신적요소를 가진 존재, 우주에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자아에 연결되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일이다. 

 

  역시 문제는 현실에서 자아가 상을 벗어나야하고,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을 만큼 노력하고 또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상속에 있는 자아가 하기 때문이다. 만약 상을 벗어난 자아가 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따라서 질문은 현실에서 상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이다. 첫째, 식상하지만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 감정을 통해서 꿈꾸는 의식에 연결되기 위함이다. 좋아하는 감정만으로는 꿈꾸는 의식에 연결되지 않는다. 둘째, 직접 그 감정을 체험해야 한다. 그것은 상상을 통해서 나아가야 한다. 책을 읽어서 다른 사람의 의식-감정에 연결되거나 직접 체험하는 방법도 있다. 셋째, 상속에서 본질자아에게 연결되어야 하고 그럴려면 상을 벗어날만큼 노력해야 한다. 즉 의식상태에서 노력하지만 잠자는 의식, 무의식상태에서도 그 일이 가능하도록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이해하면 무작정 노력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더불어 인간의 발달단계를 무시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고, 또 좋아하는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므로 그런 감정을 일으키도록 다양한 체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의식에서도 가능하도록 반복하는 경험을 하면, 인간의 정신의 속성은 확산, 전이 되므로, 노력하는 만큼 그 결과는 반드시 나온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자아는 상속에 있지만, "매 순간 영혼은 이 세가지 활동 중 어떤 것을 억제하거나 불러일으킨다(발도르프 학교의 수학, 2016, 17)." 우리는 영혼 활동 중에서 내가 필요한 활동을 선택할 수가 있다. 내가 의지, 사고 감정 중에서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쓸데없는 참견으로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그런 간섭을 받아도 쉽게 이겨낼 수가 있을 듯하다. 

 

  결론은 현실에서 자아가 상속에 있지만, 어떤 일이라도 본질자아가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인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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